떼 지능

교양 2008. 10. 22. 17:56

지난 촛불 집회를 겪으면서 한때 유행한 말이 떼지능 또는 집합지능이다.  개미들이나 벌들의 경우에 하나의 개미나 벌들은 특별한 지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여럿이 모이면 매우 뛰어난 집을 짓거나, 자기들이 겨울에 먹을 먹이를 저장해 두거나, 외부의 공격에 대해 집단적으로 방어하는 사회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다.  집단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하나 하나의 개미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앞에 있는 개미가 하는 행동만 따라서 해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촛불집회에서 나온 집단 지능은 온 라인 상을 통해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토론하고 대책이 나오고 시민들이 조직되어 움직이는 현상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그러나 아무튼 개인들은 전체적인 현상 파악, 그리고 효율적인 대책을 만들기 어렵지만, 집단의 토론을 통해 현상 파악과 효율적인 대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이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즉 시장에서는 각 개인들은 자기의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기 위해 행동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효율이 추구된다는 논리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러 사회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사고는 이후의 자본주의 체제의 개인들의 행동논리가 되었다.

집단이 토론을 벌이는 것은 토론의 참가 기회문제를 떠나, 토론이 갖는 소수의 사람이 주도한다거나, 듣고 말하는 기술이 없어서 논리적인 사고나 비판적인 사고가 사라져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못하는 현상을 지적하고는 한다.    즉 토론을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토론은 개별적인 의사가 표출되는 장이라기 보다는 개별적인 의사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사회에 적합하고 그 구성원들이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토론에서는 가능하면 많은 이들이 상대방의 말을 듣고, 사고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모든 참여자들에게 평등한 발표기회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청취, 사고, 표현이라는 과정을 조직하고, 허용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만일 구성원들의 표현을 막고, 사고할 기회를 주지 않거나, 사고에 대한 처벌을 하거나, 표현을 가로 막는다면 사회에서의 합의는 형식적인 합의가 되고, 이런 사회에서 만일 광우병 소고기와 같은 이슈가 터지면, 유포되는 정보의 불확실성, 사람들의 공포감이 증폭되어서 소문이 무성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닥칠 극심한 불황의 상황에서 특히 자영업자나 하청업체 등, 또는 일용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에게 가장 먼저 소문이 나돌고 그에 의해 사회적인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표현과 사고의 자유로움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소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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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부마민중항쟁에 관한 조정관 교수의 발표와 청취 소감

역사 2008. 10. 21. 11:05
지난 10월 18일(토) 오전 11시 5분, 기념식이 끝나고, 31명의 발표자, 토론자, 사회자를 포함한 청중이 3.15아트 센터 국제회의실에 모여 전남대 5.18 연구소 전담교수로 계신 조정관 교수님의 발표와 토론을 들었다.  그의 결론은 "부마항쟁이 1970년대 유신하에서의 민주화운동의 최종형태로서 한국정치사에서 4.19나 5.18과 같은 비상한 항쟁이라고 생각하며, 유신체제를 종료시키고, 1980년대 민주화의 물꼬를 튼 중대사건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1980년의 5.18 항쟁은 이미 유신체제와의 싸움이 아닌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즉 유신은 1979년의 싸움으로 사실상 종료되었고, 따라서 1980년대 전두환 정권도 유신으로의 회귀는 그들의 어젠다에 올려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때 유신이란 일인 종신독재를 의미한다.  발표자는 대개 정근식이나 임현진과 같은 사회학자들은 전두환 정권 치하를 유신체제와 일치한다고 지적하는 데 자신은 유신은 일단 1979년에 끝났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사회학자들은 일상생활의 억압성을 강조하고, 정치학자들은 정치제제의 변화에 강조점을 두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조정관 교수는 또한 마산양서조합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차성환(2004)의 분석을 인용하면서, 마산 양서조합이 부산과 마찬가지로 지식인과 청년학생 상당수를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실제로 항쟁당시에 주도적인 인사들이 다수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양서조합은 서울와 부산, 마산의 지식인을 연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마산항쟁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산과의 연계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는 외부와의 연결점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사실상 1979년 여름 이전에 중단되어 있었고, 따라서사적인 연결으로 무엇이 이루어졌는지는 몰라도, 10.18 마산항쟁과 직접 연계시키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본다.  즉 10.18의 시위는 학내 공개적인 학과 대표들의 조직과 학내 써클 조직이 연계되어서 조직적인 동원이 가능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외부와의 연계조직은 개별적으로 참여하고, 시위 과정에 거리에서 정열적으로 참여하고 조직하는 자원이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도 전 시위를 통들어보면 매우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양서조합이 이후 1980년대 전두환 정권하에서도 문화운동으로 나아간 자산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토론자로 나선 안철현 교수의 지적은 사뭇 도전적이었다.  즉 마산의 시위는 부산 시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았고, 민중항쟁적 성격을 강조한 발표자에 대해서 민주운동적 성격 즉 중산층의 운동이었다는 점에 의미부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10.18 해석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앞으로 사실에 대한 검토와 역사적인 해석에 대해 심각한 토론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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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역사/BC 2008. 10. 17. 15:26

역사라는 표현이 인간이 인간의 과거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한다고해서, 현재의 인류(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슬기슬기 인간)가 스스로 기록하지 않은 과거에 대해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인간이 동물과 아니 유사한 다른 동물과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슬기 인간 중에 현존 인류를 표현하는 슬슬기인간이 아닌 또 다른 현존 인류의 친척인 Homo sapiens idaltu (나이들은 현명한 인간)은 오래 사라졌다. 다만 현존 인류는 2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하여(화석으로는 13만년전 것이 발견되었다), 유라시아에는 4만년전에 넘어 온것으로 되어 있다.  현재의 한반도 인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지만, 우리 조상 중의 하나로 북한의 덕천군 승리산과 평야의 만달리 유적에서 발굴된 유골을 치고있다.  현재 우리의 직접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북방 몽골 인종은 약 2만 7천년전에 바이칼 호에서 사방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1만년전에 한반도로 들어와 신석기 문화를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북방 몽골족이 들어오기 전에 토착인이 이미 살았을 것이나,이들은 신석기 몽골족의 신석기 문화에 동화되어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석기 문화는 현존 인류와는 수백만년전에 이미 갈라져 나온 네안데르탈인이 발달시킨 것으로 보이고, 이들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년전에 현존 인류와의 경쟁에서 져서사라진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튼 우리는 여기에서 신석기 문화의 등장이 바로 현존 인류의 등장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현존 인류는 약 7만년전에는 물론 아직 유라시아까지 오지 않은 시절에는 지구상에 약 2천이 생존하고있었다.  1만 2천년 전에는 이미 지구상에 1백만명으로까지 개체가 늘어났다.  약 1만년전에는 약 5백만명으로 늘어나서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때 지구를 지배하였다는 말은 인간이 기본적인 특성인 뇌의 용량과 직립으로 다닌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특징은 바로 이 두가지 생물학적인 특징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불을 사용하고, 음식을 요리하며, 자신의 옷을 지어입는 유일한 동물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침팬지이다.  침팬지와 인간과의 차이는 현재 살아있는 인간간의 차이보다는 10배정도 크며, 들쥐와 생쥐와의 사이보다는 1/10정도 차이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전자는 유사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67억명의 인류는 자연 생태계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공격자이며, 인간을 먹이로 삼는 동물이 없는 상황에서 아마도 인류 생태계는 수백년 사이에 파괴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간간의 역사를 공부하기 보다는 이제는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도 살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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