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4.03.27 헤겔의 1818년 베를린 대학 철학교수 취임 연설문에서 경남대 교양을 생각한다.
  2. 2012.04.03 정약용, 1820, 通塞議
  3. 2011.02.08 박현수, "우리 이제 유명한 사람들을 찬양하자!", 2월 9일 세미나
  4. 2010.08.27 정책으로 담을 수 있는 꿈
  5. 2010.07.31 나이가 들면 1
  6. 2010.07.24 그림과 놀기, 아니면 생각하기 2
  7. 2010.05.10 우주의 팽창과 인류의 한계
  8. 2010.04.29 블로그와의 인연 1
  9. 2010.04.28 아무도 없었다. 1
  10. 2010.03.18 남파 앞 슈산 보이

헤겔의 1818년 베를린 대학 철학교수 취임 연설문에서 경남대 교양을 생각한다.

교양 2014. 3. 27. 11:09

이번 학기부터 학교에서 교양기초교육원 운영의 책임을 맡겼다. 그 동안 운영되던 교양기초교육부를 처나 단과대 수준으로 승격시키고, 교수학습센터는 독립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조치이다. 그 동안 경남대에서도 교양 기초과목을 전체 졸업 이수학점 130학점에서 30학점이 될 만큼 수량적 측면에서 증가되어 왔다. 그러나 현금의 기초교육의 내실과 교야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즉 고등학교에서 이수한 학력으로는 대학의 전공과정에 진입하기 어려운 사정에서 기초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교육에서 교양과 인성이 강조되는 사회적 수요의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제 경남대 교양기초교육의 3주 반이 지나면서, 그 동안 현황 파악, 체제 정비에 시간을 바쳤다면, 이제는 조금 큰 틀에서 과연 경남대에서 어떤 교양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서, 오늘 아침 서재에 꽂혀있는 서적 중에 헤겔(1770-1831)1818년 베를린 대학에서 행한 교수취임 연설문을 접하게 되었다. 우선 드는 의문은 우리나라의 경우에 교수 취임연설문이라는 제도적 관행도 없고, 이런 종류의 취임 연설문이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나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물론 당시에는 프러시아 제국의 대학제도에서는 대개 한 교수가 하나의 강좌를 맡고 있으며, 이는 2개 이상의 강좌를 요청하면, 거절하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물론 현재는 독일의 정교수들도 하나를 맡지는 않고, 2-3개의 강좌를 맡는 것이 관례이지만, 적어도 1970년대 대학교육이 대중 교육이 되기 전까지는 교수의 권위가 막강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사회학의 경우에도 막스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논한 것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서양의 학문 제도와 대학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하고있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고, 경남대 교양을 논하면서, 헤겔로부터 끌어 오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유쾌한 일을 아니지만, 그래도 헤겔을 읽고 보니, 교수 취임 당시에 프러시아제국이 초한 사회적 현실에서 철학이 행해야 할 일을 제시한 점에서 그냥 철학 일반을 설파한 것이 아닌,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대해 철학이 행해야 할 소명을 말하고 있어서 그것이 마치 경남, 아니 대한민국, 지구적 시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경남대 교양에서 제시해야할 목표가 있는 것으로 보여 느낀 소감을 말해 보고자 한다 (G.W.F. Hegel, 1818/2004, [교수취임 연설문], 책세상).

헤겔은 당시에 독일이 처한 상황을 반철학적 사조가 팽배한 시기로 규정한다. 물론 당시 독일은 프랑스 나폴레온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절치부심하던 상황이었다. 헤겔이 스스로 자부하듯이 독일은 사상적, 사유적, 철학의 본류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점을 간과하지는 말지만, 그렇다고 헤겔의 철학적 사유 자체를 독일 국수주의의 표현이라고 폄하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는 당시의 시대 상황(23)(1) 정신의 궁핍함과 일상의 관심사에 몰입하는 것, (2) 사건들의 공허한 자만 Eitelkeit (영어로 vanity)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신의 궁핍함에서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단순히 이성이라고 하면 규정이 어려워 진다. 사유적 이성을 조금 더 진전된 형태이다. 즉 즉자적 이성이 아닌 보다 심오한 사고의 과정과 단계를 더 나아간 이성이라는 뜻으로 일단 해석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성적인 사유이자, 감성적이고 사념적이며 주관적인 것이 섞여있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면서 스스로를 전개시켜 나가는 사유입니다” (29). 또는 반성적 사유로 규정하기도 한다. 즉 이성적 사유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반성적 사유라고 지칭한다. “인간 속에 본능적으로 있는 이성적인 면과 이것을 향하는 반성적 사유가 인간을 이 현상 세계에서 보편자와 근원자로 인도하며, 근거와 원인들, 법칙들에 대한 탐구로 인도하며, 이렇게 변화무쌍한 가운데 지속하는 것데 대한 탐구로 인도합니다” (31). 즉 정신은 바로 반성적 사유를 통해 이성적 사유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성과 이성적 사유로 나아가게 하는 반성적 사유가 당시에 궁핍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것을 바로 일상에의 몰입에 의해 더욱 조장된다는 것이다. 왜 일상에의 몰입이 이성과 반성적 사유를 방해하는 것일까? 이는 반성을 통해 이성을 작동시켜, 남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이 보편자, 근원자, 근거와 원인들, 법칙들로 나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방해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헤겔은 당시 베를린 대학에 헤겔의 철학 강의 그 중에서도 첫 개설강좌인 자연법학 Wissenschaft des Naturrecht (knowledge of natural law 자연법 학, 실증법학에 대비되는 용어)을 개설하면서,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즉 청년의 정신을 주장한다. 즉 대학에서 수강하는 청년들에게 청년의 정신을 가질 것을 주창한다. 청년이라는 존재는 시기상 아직까지 궁핍한 제한된 목적의 조직에 얽매이지도 않으면서, 사심없이 학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시기라고 규정한다(27). 여기서 학문적인 일이란 직업으로 앞으로서 학문에 종사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대학이라는 테두리에서 제공하는 학문의 맛을 들이고 수업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청년은 자만이라는 부정적인 정신에도 아직 얽매이지 않고, 단지 비판만 하려는 악착같은 노력이 지닌 몰내용성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시기라고도 규정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건강한 가슴으로 진리를 열망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청년이야말로 철학하기에, 반성적 사유로 이성적 사유를 하는데 적합한 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헤겔은 청년들인 수강생들에게 부탁하기를 학문에 대한 신뢰와 이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즉 일상적인 궁핍함에서 나와서, 이성적인 사유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면서,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 가진 위대한 힘인 이성적 사유, 반성적 사유에 대한 힘을 믿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진리에 대한 용기와 정신의 위력에 대한 신뢰는 철학 연구의 제일 조건입니다”(27-28). 믿음과 용기를 말하고 있다. 나는 항상 책을 읽는 용기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데, 영어권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즉 독서는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고, 독서는 자신을 반성하고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므로, 대단한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한다. brave라는 영어 표현이 육체적인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는 점을 전재한다면, 용기를 갖고 독서를 하자는 표현은 육체적 고통을 통해 사유적 반성과 이성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헤겔의 의도가 나타난다고 보인다.

이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반성적 사유를 행하는 것, 세계사의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고, 자신의 사유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진 자만이 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나의 반성적 사유에 대한 믿음, 이 믿음을 갖고 나의 이성적 능력을 함양시킨다면, 세계는 다르게 나에게 다가온다. “인간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주시할 경우에만, 세계는 인간에게 이성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30). 나도 경남대 교양기초교육원에서 의사소통에 기반한 기초, 전공에 앞선 학문적 기초, 자유시민적 교양, 사회생활에 앞선 도구적 교양 등을 염두에 둔다면, 주위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요청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우리 모두가 대학에서 반성적 사유에 기반한 이성의 힘을 길러 사회에 진출하는 대학의 이념을 주창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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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1820, 通塞議

교양 2012. 4. 3. 11:40

통색은 벼슬길이 막혀 있던 것을 트이게 한다는 뜻이다(다산논총, 1976, 을유문화사: 219).  통색의는 이렇게 시작한다.  "신이 엎드려서 삼가 생각컨데, 인재를 얻기가 어렵게 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온 나라의 인재를 다뽑아 올려도 오히려 부족할까 염려되인데, 하물며 그 열가운데 여덟 아홉은 버리는 것입니까?  온 나라의 백성을 다 모아 培養하여도 오히려 振興시키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그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은 내쳐 버리는 것입니까?"

지난 4월 1일자 중앙일보에 미 행정학회보 편집장 제임스 페리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미국은 인구가 3억 8천만이어서 인구선택의 폭이 넓다.  내가 연세대에서 3학기 동안 강의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은 흑백논리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거다.  진보냐 보수냐 우리편이냐 아니냐 편가르기가 심하다.  사람 쓰는 폭이 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한국사는 아직도 다산의 고민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소수의 귀족정치로 남아 있느냐, 아니면 민주주의 원래 모습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모양이다.  민주공화정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민 정치가 아닌, 대중이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치체제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즉 대중이 선거에 임해서는 후보자를 잘 알고,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물, 평상시의 인품이나 사회관계를 보고 뽑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현재의 상황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관문이 바로 민주공화정의 확립이다.  그래야 숨은 인재가 발굴되고, 국민들이 더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이 상승이동의 통로가 되고,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고, 사회정치적으로 표현과 사업기회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활력이 살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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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우리 이제 유명한 사람들을 찬양하자!", 2월 9일 세미나

교양 2011. 2. 8. 12:06

2011년 2월 9일 오후 2시 - 3시 30분,
경남발전연구원 4층 회의실
위치 안내, 용호동 5-1, 창원시 의창구 북 15로 226번지
전화번호, 239-0125
홈페이지 www.gndi.re.kr

박현수 (영남대 명예교수, 문화인류학),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을 창립하여 단장을 역임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은 경남에서는 이경미 박사가, 한국민중구술 열전 6권, 이기범 (눈빛), 22권 조풍도 (눈빛), 32권 김숙종 (눈빛)을 발간한바 있다.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은 현재는 해체되어 그 방대한 자료만 남아 있다.  바현수 교수님은 1970년대에 [산체스의 아이들]을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멕시코 민중의 삶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을 새삼 깨우쳐 주셨다.  물론 민중들의 언어가 생생하게 살아있게 번역을 하셔서, 독자들에게 한층 감동을 준 것 같다.
경남발전연구원에서는 지역의 근대 민중생활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화자원의 하나로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모시고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번 모임에는 강신표 교수님도 참석하시기로 약속하였다.  산공 강신표 교수님은 최근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그의 논문과 사진들을 모아서, 책자로 발간하였다. [배움의 길, 기록을 따라가다], [세계와 함께 나눈 한국문화]의 두권이다.  멋진 장정, 1930년대의 진동공립보통학교의 모습, 통영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외에 경남대의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의 전공자 김종덕 교수님도 참석을 예약하였다.

잠시 우리 유명하지 않은 민중들의 삶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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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으로 담을 수 있는 꿈

교양 2010. 8. 27. 17:57
어제 저녁에 문화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경남발전연구원의 강당에서 개최되었는데, 들어가자 김하경 선생님이 [아침입니다] 책을 건네 주신다.  책의 들어가는 글이, "불가능한 꿈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고, 책의 중간 내용에도 정월 초하루에 쓴"꿈과 희망", 그리고 "현실과 꿈"과 같은 무엇인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신 편이다.  나는 전에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 나온 마을백일장 입상 작품집에서 연구소를 비유하면서, 꿈을 담는 그릇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일이 있다.  현실은 꿈을 꾸기도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이를 실현시키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밤의 꿈은 낮에 일어난 일에 많이 기인한다.  낮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즐겁게 이를 위해 매진하였다면, 밤의 꿈은 악몽이 아니라, 즐거운 꿈, 더 나아가기 위한 꿈이 될 것이다.  반면에 낮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고, 남이 꿈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였다면, 밤의 꿈은 악몽으로 변하여,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를 것이다.

경남발전연구원에 오면서 또 이런 생각을 했다.  연구원이 하는 일은 결국, 도민들의 꿈을 현실의 정책으로 변화시키는 정책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 내고, 이 중에서 실현가능성이 높은 것을 찾아내어, 도청에 제시하여, 실현하게끔 하는 일일 것이다.  도민들의 꿈은 무엇일까?  그리고 도민들의 꿈이 항상 정당한 것일까?  며칠 전에 참여예산제의 전단계로 분야별 토론회를 진행한 일이 있었다. 상당수의 참여자들은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정책을 통해 이루기 위해 여러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꿈 중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아름다운 꿈도 있었고, 자신이나 단체의 주장을 하는 듯한, 제안도 있었다.  자신만의 꿈이 아닌, 모두가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것, 대동세상이 우리들의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도, 내가 남을 위하면, 남은 나를 불신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리는 선제적으로 남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정책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정책은 많은 이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 정책일 것이고, 특정인에게만 혜택이 제한적인 정책은 편협된 정책이 될 것이다.  내가 경남발전연구원장이 되면서, 필자에게 마치 모든 정책이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처럼 하소연을 늘어 놓는 분들이 많다.  한이 많다.  정부에 대한 정책에 대한 한이 정말로 많이 맺혀 있는 것 같다.  정책연구원장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아이디어를 수집하여, 정책으로 제안하는 역할을 담당하기에 상대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기에 편안하다.  편안하다고 하여,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주워 담고 있다.  꿈을 기록하고 이를 검토하고 있다. 내 방에 들어오면, 이를 정리하여 각 해당 연구원들에게 나누어 주어 검토시키고, 정책으로 전환이 가능한지 문의하고있다.  결국 나도 실없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워담다 빠진 것이 있을지도 모르고, 정책으로 현실화되지 않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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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교양 2010. 7. 31. 19:35

경남정보사회 연구소의 한마을 한책읽기에서 선정한 책 중에 하나가,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2007, 문학세계)였다.  이책을 받아든 순간, 만화책을 그것도 세권짜리 순정만화, 이런 것을 한마을 한책읽기의 선정도서로 정하다니, 그러면서도 왜 이런 책을 선정했는지 궁굼했다.  오늘 마침 더위를 식힐 책을 실피다가, 이책이 눈에 띠었다.  더우니, 그저 만화책같이 쉽게 읽을 책을 정한 것이다.  세권이다.  제목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아내를 먼저 보낸 늙은 사내가 혼자된 할머니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할 수 없어 그대로 바꾼어서 사랑을 고백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하면서도 순정을 그린 것이다.  무대는 서울의 옥수동 산동네, 주인공은 그래도 잘 사나, 우유배달을 하는 혼자된 할아버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꼬장 꼬장한 할아버지이다.  첫장면은 나이들 사람이 죽으면, 호상이라고 하는 상갓집의 장면에서 이에 호통치는 어른의 모습으로 나오고, 이날의 상갓집은 결국,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이웃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같은 자살한 부부노인의 상갓집이었던 것이 밝혀진다.

이 장면은 몇년전에 미국에서 혼자 할머니의  병간호 수발을 들던 할아버지가, 자신이 곧 죽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내를 혼자 두고 죽을 수 없어 죽인 사건이 생각나게 한다.  결국 이 할아버지도 몇달후에 죽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아내를 살인한 할아버지를 처벌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을 벌인 적이 있다.  이 만화와 다른 점은 이 때에도 미국에서 자식이 나타났지만, 전혀 죄의식을 별로 없이 다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너무도 사랑하였으므로, 선처해 달라는 정도가 기사화된 일이 있다. 이 만화는 죽어가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손을 떼어 놓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또한 자식들에게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집에서 경남대에 다닌 길에도 아침에 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댓거리 번개시장에 가는 모습을 거이 매일 보게된다.  내가 이야기를 어느 신문인가에 소개하면서, 나도 그렇게 늙으면 좋겠다고 느낌을 적었더니, 처가 그런 것은 쓰지 말라고 한다.  늙는 것이 슬픈 모양이다.

그러나 어쩌랴, 늙는 것은, 아니 나이드는 것은 어쩔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인 것을!  요즘 경남발전 연구원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커다란 조직체의 장의 한 일도 없다.  전국적인 상황을 보니, 대개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과 친한 지식인들 중의  한사람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비교적 잘 운영되는 곳은 연구원장이 자신만만한 곳이다.  대구경북연구원의 홍철원장님이 그런 분이라고 주위에서 전한다.  이분은 공무원들에게 절대로 연구원에 부당한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전한다.  이런 자신감은 내적으로는 연구원들의 연구 결과와 조직운영의 자신감, 그리고 자신이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무슨 용심이 있겠는가하면서 사심이 없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나도 경남대의 김정대 교수가 행행공무사의 교훈의 말씀을 당부한 것을 기억한다.   그런것 같기도 하다. 나이가 많으면, 상대적으로 욕심이 적을 것이라고.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들은 사람에게서 관용이나, 지혜, 어른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세태에 이 만화는 어른의 모습을 순정하게 보여준 점에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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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놀기, 아니면 생각하기

교양 2010. 7. 24. 15:43

경남정보사회연구소의 책읽기 난에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올릴 수가 없다.  무슨 시스템이 바뀐 모양이다.  여기에 올리게 되었다.  어제 연구소 이사회에 참석하니, 연구소 이사님들이 경남발전 연구원장 취임을 축하한다고, 장미꽃다발과 진행중인 한마을 한 책읽기에서 선정된 책을 선물했다.  풀어보니, 그 중의 한 책이 주득선과 차오름, 2006, [명화속에 숨겨진 사고력을 찾아라](주니어 김영사)이다.  마침 집에 큰 아이가 빌려온 책인 이명옥, 2009, [한조각의 상상력, 아침 미술관] (21세기 북스)와 선동기, 2009, [처음 만나는 그림](아트북스)가 있다.  같이 읽어보니, 명화를 소개하는 형태이나, 보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주득선과 차오름의 책은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보다 분석적이다.  그림에 나타난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를 사회현실로서 분석한다.  특히 김홍도의 씨름과 점심이라는 작품의 해석은 흥미롭다.  특히 씨름에서 경기하는 두사람의 신분이 다름을 지적하고, 이들이 같이 경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마을의 전통적인 공동체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오가 되면 평민들은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보통때는 길에서 눈만마주쳐도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양반에게 허리가 휘도록 절을 해야 했던 평민이, 이날 만큼은 양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씨름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금쪽처럼 여겨야 했던 양반의 몸을 번쩍 안아 있는 힘껏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습니다"(17쪽).  이말의 진실을 알수 없지만, 저자의 해석을 그대로 믿는다면, 단오는 마을의 축제로서 기능한 셈이다.  양반의 몸을 내동댕이 칠수 있는 기회이니까.  신분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걸수 있는 기회이니까?  일한 번 단오날의 축제를 재현해 보자.

이명옥의 책은 하루 하루 365일을 기준으로 일단 이 책은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편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에 대한 약간의 단상을 적어놓은 것이다.  해석의 재미는 조금 약한 편이나, 저자가 다음편이 나오면, 오늘과 같은 7월 24일에 보아야 할 작품과 해석이 있을 것이나, 6월의 더위에읽을 만한 것으로 보니, 감명보다는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이 흥미로운 책이라는 느낌이 난다.  반면에 선동기의 책음 작가별로 30명을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 경향을 세가지로 나눈 다음에 한 작가의 작품들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대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작가가 지적하듯이 자신의 감수성과 해석의 상상력을 드러낸 책이다.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일상을 담은 그림이라는 제목에 속한 3명의 작가의 작품 해석을 읽었다.  19세기 후반의 파리의 상류사회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 많은 앙리 제르벡스의 작품들의 소개를 흥미로왔다.  특히 <롤라>라는 작품은 창녀와 하루밤을 자고난 사내가 등장한다(172-173쪽).  당시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던 뮈세의 시 <롤라>에는 이렇게 묘사된다고 한다.  "마리안의 화대는 비쌌다.  그녀와의 하루밤을 위해 그는 모든 것을 써야했다.  롤라는 우울한 눈빛으로 지붕위로 돌렸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창문 끝으로 발길을 돌렸다. 롤라는 돌아서서 마리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피로한 상태였고 다시 잠에 떨어졌다"(173쪽). 이 글의 모습이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같은 19세기 후반의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프랑스의 어촌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쥘 파스티앵-르파주이다. 일하는 사람들, 거지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특히 거지들의 모습을 그린 것은 정말, 우리의 고민을 나타낸다.  거지들은 양반이나 귀족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세상이다.  이들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찾아가며, 동정을 구한다.  이웃들의 따스한 시선이 나타나 있다. 거지의 비참한 몰골과 따스한 시선이 아름답다. <걸인>에는 어린 아이가 늙은 걸인을 내보내는 시선이 나타나 있다(192-193쪽).  <눈먼 거지>와 이 아이를 이끌고있는 커다른 흰 색의 개가 누워 있다(194-195쪽).  프랑스 사회의 이중성을 보고 있다. 롤라와 마리안, 걸인과 아이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것이 당시의 프랑스였다.  책을 읽으면 항상 우리의 현실이 생각난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이중성은 바로 우리사회의 이중성을 암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교훈적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의 영국의 어민들의 삶을 육지에 남아 있는 여인들의 애환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한 이는 우러터 앵글러이다.  주제는 주로 남아있는 여인들, 바다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들, 바다에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들의 육지에서의 삶의 모습이 그것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의 어촌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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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팽창과 인류의 한계

교양 2010. 5. 10. 17:26
2010. 5. 10(월)
최근에 침팬지와 인간의 생물학적 유사점을 말하면서, 인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숫자가 150-230여명이라고 지적하는 방송을 들었다.  이는 이미 소크라테스가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친구 숫자는 한계가 있다는 언명으로서 이미 오래전에 친구 숫자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이 과연 현재와 같이 67억명이 모여사는 지구에서 상호간에 분쟁없이 살아갈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세상은 항상 전쟁과 갈등이 끊임없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회학자들은 여전히 지구사회라는 단일 사회의 등장을 전제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단일한 지구사회라는 것, 즉 상호의존되어 있고, 지구상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분명히 객관적인 조건에서는 지구사회의 도래를 말할만 하다.  그렇다고 인간이 이를 제대로 평화롭게 유지할 능력이 있을까?  잘 알다시피 20세기는 이미 전쟁과 살륙으로 얼룩진 세기를 살아왔고, 현대 사회도 여전히 매일 매일 테러와 전쟁, 종족간의 갈등에 의한 종족말살전쟁, 민족 독립운동 등이 심한 사회이다.  거의 매일 자연재해가 아니 인간 재해개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최근의 살륙은 각나라의 군인들에 의해 군인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아니라, 민간인들이 죄없이 살해당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는 호킨즈의 시간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지능이 발달한 것과 우주의 팽창을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있다.  즉 우주가 팽창하지 않았더라면, 인간의 지능이 팽창할 이유가 없어서 지능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세계, 끊임없이 과거와는 다른 세계의 출편은 인간에게 환경에의 적응과 동시에 도전의 과제를 안겨주었고, 이를해결하기 위해 인류의 지능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도 팽창하는 동시에 멀어짐으로써 우주의 별들간에는 너무 중력작용이 약화되어 언젠가는 아주 조용한 어느 별도 다른 별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태가 올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이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몰라도 최근의 사태를 보면, 인간 사회의 팽창도 우주의 팽창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이제 지구사회로 까지 나아 간것으로 볼수 있다.  인간의 적응 위기가 닥친 것은 아닌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일차 철학의 시기라고 불리우는 기원전 400-500년전 정도의 시기에 머무르고 있다.

철학과 종교, 그리고 법이 등장하던 기원전 4-5백년전에는 무슨일 일이 발생한 것인가?  세계적으로 인류는 지구상을 서로 오가며 물자를 교류하고,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이럴 때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 서로 의사소통을 하고, 인사하고 악수하고,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늘상 만나던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들었다.  프라톤, 소크라테스, 공장, 맹자, 순자, 노자, 묵자, 한비자, 예수, 석가모니가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제국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던 고민인 수많은 종족들을 지배할 수 있는 단일한 원리를 찾기시작하였고, 이를 종교에서 채택하였다.  그리고는 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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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와의 인연

교양 2010. 4. 29. 16:42

종은씨가 저를 지명하여 블로그와의 인연을 써보라고 말한 모양이다.
정성인 기자가 댓글을 달았다.  내블로그는 일년가야 10개정도의 댓글이 달리는 형편이므로, 하나의 댓글고 쉽게 표시가 난다.  그래서 빨리 알아보았다.

1. 언제 어떻게 블로그를 시작하셨나요?

아마도 2년전 종은씨가 나보고 블로그를 해보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고, 이 메일을 통해 비교적 전자 매체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또 구태여 새로운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경남정보사회 연구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가끔씩 나누고 싶은 글을 올리고 있었고, 내 개인 홈페이지에 학교 관련 사항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 경남도민일보도 메타 블로그를 운영했던 것 같다.

2. 블로그에 주로 다루는 주제가 무엇인가요?

나는 두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학교 강의와 강의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올리는 블로그(이은진 블로그)와 경남정보사회 연구소를 통해 교양이나 시사, 역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이런 것을 올리는 "은은하고 진지한 이야기" 두개를 운영한다.   강의는 강의와 이와 연관된 책을 읽거나 관련된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올려서 카테고리별로 분류한다.  하나의 강의 노트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여러 파일을 정리하고, 이를 노트형식으로 정리하곤 하였는데, 이제 블로그에 올려서 나의 노트 정리도 되고, 남들이 참조할 사람은 참조하게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올리고 있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강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역사, 각나라에 대한 지지사항, 시사적인 것에 대한 생각 들이 있었는데, 이를 표명할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블로그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는 대개 방학중에 내가 가진 파일을 정리하고, 추가로 자료 수집을 해서 공부겸 새로운 지식을 섭렵하는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다.

3. 하루 중 블로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계신가요?

대개 한편의 블로그를 위해 30분정도의 글쓰는 시간이 투자된다.  그러나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료수집, 사고정리 등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대개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은 나에게는 직업이자, 삶이므로 부담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재미와 향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잠자리 옆에는 오디오와 컴퓨터가 있으므로, 잠자기 전에 읽고, 잠자면서 생각하고, 일어나서 쓰는 형식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읽고 곧바로 쓰는 것은 생각이 얕아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대개는 잠, 걷기, 쉬는 것 등을 통해 잠시 수집한 자료를 읽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 시간적 정신적 공백을 둔다.

4. 블로그를 하면서 힘든 점이 있나요?

내 블로그는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 도민일보에 올라오기는 하지만, 별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 생각을 나눌 수있다는 즐거움에 한다.  도민일보에서 메타블로그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는 강의 블로그의 경우에는 10%가 안되는 것 같고, 은은하고 블로그는 하루 10명정도일 것이다.  초기에는 별로 읽는 사람이 없었는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특히 사회학강의를 듣는 학생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강의블로그에 200-300명 정도가 들어오고 있고, 읽는 것 같다.  내가 도움을 주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은은하고 블로그는 내 재미로 하고 있고, 아마도 다음의 티스토리 노출이 잘 안되는지, 독자가 한정된 것 같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노트로 기능한다고 본다.  도민일보의 대중블로거들은 대개 시사적이거나, 일상생활 주제, 그리고 사진을 곁들이는 방식을 취하는데, 내것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나 위주로 하고, 사진도 거의 없어서 일반적인 흥미를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사진도 잘찍지 않고, 휴대폰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고, 그런 것들이 나의 사고에 방해를 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기에 그냥 재미로 하고 있다.  요즘 하루에 300명이 넘는 것 같기에 광고를 붙이고 싶기도 하고, 다른 모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그리고 내 블로그는 그저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인데, 오히려 실례가 될 것 같기도 하여 망설여 지기도 한다.

5.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이 무엇인가요?

요즘 강의 블로그는 호손공장 실험, 거래비용이론, 세계체제론 등의 항목이 거의 몇달째 계속 하루에 20회정도의 조회를 보이고 있다.  이런 항목들은 6개월전쯤에 올린 것인데, 아마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이런 항목에 대해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여, 내가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은은하고 블로그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중의 하나인 역사와 국가별 지지 정리를 계속하게끔 해주어서 스스로 만족하고있다.  역사는 현재 1920년대 한국의 정치사항까지 끝내고, 아마 여름방학 되면, 계속하려고 하고 있고, 국가별 지지는 중국이 비교적 많이 진척되었는데, 나머지는 별로 진척이 안되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역사는 현재까지 오려면, 5년이상 걸릴 것 같고, 국가별 지지는 그 이상이 걸릴 것 같다.  아무튼 하루 하루 조금씩 공부하면서 정리하는 재미에 블로그를 한다.

6.  평균 방문객은 얼마나 됩니까?

강의블로그는 강의중에 하루 200-300정도
교양블로그는 10-20정도 (도민일보 메터블로그에 등장하는 것)

7.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나요?

따로 노력하기 어렵다.  사진을 많이 넣을 수 있으면 넣겠지만, 별로 그럴 처지도 아니고,
너무 시사적인 것과 일상생활적인 것은 내가 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8. 다른 블로그를 읽거나 댓글을 남기시나요?

내가 남기도 싶은 곳에는 남긴다.  그러나 이것 저것 서핑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루의 뉴스를 블로그를 통해 보는 것은 하나의 일과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마음 가는데로 한다.

9. 블로그로 돈을 벌려고 해보셨나요? 혹은 블로그로 수익이 있다면 가장 많은 수익이 생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종은씨가 노후에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하기는 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다 충실히 해서 많이 찾아오게 해서 할 수 있을 면 좋을 것이다.  나는 사회학 전공블로그를 보다 충실히 해서 나중에는 돈벌이 수단이 되면 좋겠는데.  아직 방식을 잘 모르겠다.

10. 새로 시작하는 블로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블로그는 미니 홈페이지를 하듯, 아니면 자신의 학습을 위해서 하듯, 남들과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하듯,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돈도 안들고 공짜이고,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고.  나의 공책이라서, 장소를 이동하여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인터넷을 연결하여 기록하면 되고 뭐 그런것 같다.


다음은 유장근 교수가 운영하는 yufei라는 블로그가 있을 것이다.  넘깁니다.  이 블로그도 동료 교수가 운영하는 것이라 아주 학술적이면서도, 지역역사나 중국 기행 같은 것을 올려 놓아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멋지게 꾸미신 것이라 기술도 좋고 내용도 좋고, 읽고 나면 무엇인가 얻는 것이 많은 그런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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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었다.

교양 2010. 4. 28. 10:55
지난 주는 학생들이 중간고사도 끝나고 하여, 배정된 상담학생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학년별로 나뉘어서 장소와 요일을 정하고, 각자의 휴대폰으로 통지하였다.   2,3학년의 만남에는 8명의 연락한 학생중 3명이 나왔고, 4학년은 8명중 5명이 나왔고, 1학년은 15명중 0명이 나왔다.  물론 이중에는 사전에 못나온다고 연락한 학생도 있었고, 당일 현장에서 연락을 하니, 여러 이유가 있어서 참석이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여기에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나오지 않은 학생들 만나지 않은 것인가?  연락을 받지 못해 나오지 못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므로, 연락을 받고도, 집에 가는 버스를 타는 시간과 맞지 않아서, 그리고 아파서 못나온다는 답이 있었고, 나머지 나오지 않은 학생들은 면담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참석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에, 알고는 있지만, 참석치 않은 학생들은 나를 만나지 않은 것인가?   나는 아마도 어떤 충격이라고까지 표현하기 어려워도, 압력이나 눈치를 주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면담이라는 것은 형식이 어떻든 학생들이 지금 어떻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는지, 앞으로 취업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학교에서 제시한 학생정보란에 이력서를 기입해 놓으면 여러가지로 유리할 것이라는 등의 말을 주고 받고 해야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대개 참석학생들은 분명하게 미래 직업을 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현재 어떤 상태라는 것을 말하게 된다.  분명하게 정해서 준비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큰 틀만 정해놓고 모색하는 학생도 있었고, 그저 자신의 적성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서, 아주 큰 방향의 적성에 맞는 활동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을 전제로 아니면, 만나는 현장에서 자신의 적성, 준비상태, 미래취업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나는 만나지 않은 학생을 생각하면서 수학에서의 공집합을 떠올렸다.  우리들의 만남이 공집합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만남의 집합에 포함시켤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만남의 집합은 항상 상호간에 심각한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만남, 형식적인 만남, 불발로 되어버린 만남도 포함된다.  오랜 친구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사람에 대한 것, 아니면 만날뻔하다 만나지 못한 사람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나는 만남의 집합에는 만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것도 포함시킬수 있다는 논리를 공집합의 요소에 공집합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육체적인 현존은 없었지만, 상호간의 영향은 주고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참조:John H. Conway와 Richard K. Guy, 1996/2003, 수의 바이블 The Book of Numbers (한승)의 10장에 폴란드의 수학자가 숫자를 세면서 0부터 세는 장면이 나온다.  없는 것에서부터 있는 것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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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앞 슈산 보이

교양 2010. 3. 18. 10:08

역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은 항상 나의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역사의 흐름은 항상 공평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현장의 사실이 드러날 수록 드는 생각이었다. 어제 3.15 아트 센터 대공연장에서 문종근 제작 연출의 창작 뮤지컬 “삼월이 오면이”을 관람하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오성원에 대한 기록과 후세의 평가는 그저 하나의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적극적으로 역사의 흐름에 편입시키지는 못하였다. 1960년 3월 15일 마산의 남성동 파출소, 북마산 파출소, 시청앞에서 총을 맞고 죽어간 이들 가운데에는 의외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당시 3월 16일부터 28일까지 마산에 머물면서 취재한 기록을 남긴 동아일보 이강현 기자는 “이번에 희생된 7명의 유가족집을 찾아가 보니, 공교롭게도 거의 모두가 조석을 걱정하는 빈한한 가정들이었으며, 그런 환경속에서도 부모들은 가르쳐 보겠다고 가진 고생을 무릅쓰고 피땀을 흘린 집안 뿐이었다”(1960. 4월 10일 발행한 잡지 [새벽] 5월호: 69).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어려운 집안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가장 격렬히 시위에 참여한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태룡 (1964, 3.15 마산의거의 역사적 고찰, 마산시사 사료집 제 1집, 마산시사 편찬위원회: 259)은 이렇게 기록하고있다. 3월 15일 최후까지 저항한 이들은 밤늦게 무학국민학교를 탈출한 50여명의 추산공원으로 올라가자, 창원군청을 파괴하고 돌아오는 데모대와 합류하여, 같이 화장장(자산동)을 지나 서원골을 둘러, 계곡을 따라 내려와서 마포중학교(의신 여중) 교정에 집결하니, 200여명이 남았다. 이들은 “학생과 구두닦이, 직공 등으로 구성된 정예들이다”.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하나, 열심히 살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던 이들이다. 정의가 실현되기를 가장 강렬히 희망하는 이들이 격렬히 저항하였고, 또 이들에 의해 3.15는 살아있고, 민주주의는 그 구렁텅이에서 구출된 것이다.

오성원 역시, 고은의 만인보에 등장한다(23 : 191). “살아 있을 때 국숫집 지나가면 국수가 먹고 싶었다 구름을 보면 구름이 되고 싶었다”. 어제 공연에서 오성원이 부른 노래 “빈 몸 하나”의 가사에 구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리수 다방의 서마담이 성원이에게 국수를 제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수와 구름. 먹을 것과 꿈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국수와 꿈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닐까?

오성원은 구두닦이이다. 어제의 공연에서는 주제가로 꼽을 만한 노래로 나는 ‘슈사인 보이’와 ‘구두닦이 헌장’ 중에서 고르고 싶다. 구두 닦이 경력 5년차의 21세 오성원은 “14세 되던 해에 삼촌집을 나와 구두닦이로 자립생활을 하여왔다. 이날 밤 오군도 이 대열에 참여하였다가 총탄에 쓰러진 것이다. 원래 고아이니만치 누구하나 오군의 시체를 거두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와 같은 사람을 알게 된 동료 구두닦이들이 푼돈을 모아 광목도 끊고 베도 사고 관도 가져다가 오군이 어렸을 때 뛰 놀던 산 중턱에다 장례를 치러주었다”(이강현, 1960: 70). ‘담배 파는 10대의 직업 소년 10명은 담배장수 밑천의 한귀를 짤라 관을 샀다. 그들은 경관에 사살된 동료 오성원의 상여를 메였다. 10대 소년의 장열은 눈물 바다가 된 거리를 구비쳐 흘러, ’길가는 나그네여 여기 길잃은 민주주의를 찾으려다, 3월 15일밤 무참히도 떨어진 21년의 꽃봉오리가 누워 있음을 전해다오‘라는 비문이 새겨진 비가 설 무덤을 향하여 올라갔다“(김태룡, 1964:286-287). 1939년생, 창원 팔룡동에서 출생하여 다시 팔룡동으로 돌아갔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바로 이들이 길을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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