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80 부산, 서울, 광주

역사/20세기 2013. 10. 17. 10:52

어제 부산 민주공원에서 "부마에서 광주로"라는 부마항쟁 34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필자는 토론자로  참석하였다.  부마의 1979년 10월 16-20일 사건 -> 1980년 4-5월의 서울의 봄 -> 1980년 5월 18-27일 광주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선을 가정한 학술대회였다.  역사적 의의와 연관성을 찾는 학술대회였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 영향을 준 사람, 받은 사람, 영향을 주고 받은 매체들, 그리고 내용에 대한 대한 논의가 포괄적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다. 만일 항쟁의 지도부 내지 조직음모자들의 경우에는 어느정도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증거가 나왔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또는 받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서는 실제와 이를 표현하는 것이 다른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즉 적어도, 영향을 받았다, 주었다는 것은 금기시 되는 표현이다. 시위의 조직자들이 영향을 주거나 받는 것은 범죄행위로 처벌받는 상황에서 실제로 주고 받은 것을 잘 표현하지 않았고, 가능하면 이러한 일을 스스로 금지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범죄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영호남의 관계라는 것이 어느 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수수할 수있는 그런 표현문화적 허용을 용납치 않고 있다는 점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정치권이나 지역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권이나 심지어는 학술연구자들도 지역 상황의 영향을 받기에 그렇 실증적 분석이나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손쉽게 등장한 것이 서울 우회론이다.  서울 우회론에 대해서는 부산과 광주가 합의하기가 용이한 부분이기에 그렇다.  서울은 지역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시장을 이루어서 누구나 참요하여 경쟁하는 장소이기에 부산이나 광주도 그들의 구성인자들이 서울에서 자라고 논의하는 장이 마련된 곳이어서 서울의 영향을 그곳에 있는 재향 인사들로 받았다면 쉽게 용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서울 우회론은 실은 실제의 여부에 관계없이 쉽게 합의 할 수 있는 가설이다.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직접적인 의사소통으로 파악한다면, 여러가지 경로를 복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1) 인적 교류: 당시에 부산과 마산은 하루에도 거의 10-20분간격으로 시외버스가 다녔고, 따라서 부산의 소식은 쉽게 마산에 전파되었으며, 또한 통학내지 통근권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경남의 여러 공장지역에서는 호남 출신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물론 주로 전남 동부쪽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친인척을 통해 광주의 소식을 쉽게 경남으로 흘러 들어올수 있는 인적 교류의 통로는 있었다는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 당시에 정확하게 며칠까지 광주와 연락이 가능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5월 18일, 19일, 20일정도까지는 광주의 교통편과 통신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으므로, 광주의 소식이 외부로 전해질수 있는 통로는 열려있었다.  언론의 보도도 일단 정부측의 발표이기는 하지만, 인쇄되어 나왔고, 따라서 무엇인가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가톨릭조직이나 기업 조직 등도 정보 소통이 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언론도 초기에 보도팀을 파견한 경우에는 이들이 어느정도 보도를 하고 있었다.

어제 논의에서는 광주와 부산이 다루어졌지만, 대구의 장세룡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님은 두가지 지적을 하셨다. (1) 사실은 1979년 10월 16-20일 부마항쟁이 발생하였을 때 대구에서는 민주화운동 전통이 미약한 지역에서 저렇게 커다란 저항 시위가 발생한 것에 대해 놀랐다고 한다.  (2) 1980년 서울의 봄시기에도 대구에서는 영남대 등이 적극적으로 시위를 전개하였고, 실제로 골목까지 따라들어와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였고, 포항에서 해병대가 온다는 소문도 돌아서 상당히 치열한 시위가 전개되고 있었다고 한다.  반면에 부산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느 점을 지적하였다.

아울로 방청석에서도 두분이 마산과의 연관성을 가지셔서 흥미로왔다.  (1) 한분은 윤미숙 (현재 73세로 추정, 1980년 당시 40세로 소개, 부산민주당 고문) 할머님으로 1960년 마산 3.15의거에 참여하신 분이라고 소개하였다.  (2) 또 한분은 경남대 78학번이라고만 소개하신 분이다.  따라서 1979년 10월 18일 마산 민주 항쟁에 참여하신 분이라고 소개하였다.  1981년에 군사훈련단에 있었고, 80년이후 상무대에서 보수교육을 받았다고 표현하였다.  정확한 의미는 필자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발언 내용을 소개하기는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