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이해법

역사/1900-1919 2010. 2. 18. 07:09
식민지 기간의 업적에 대해서 근대화로 보는가 아니면, 강제 수탈의 빼앗긴 40년으로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역사해석에서의 논란꺼리로 남아 있다.  식민지 근대화를 주장하는 근거는 현재의 업보는 모두 과거에 근거하므로, 우리의 현재가 잘되고 있으므로(산업화, 경제성장, 민주화), 이것의 원인은 과거로 거슬러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에 근거한다.  이럴 경우, 현재에 대한 평가, 그리고 과거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과거를 가리키는가가 논란의 핵심이 된다.  즉 현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긍정적인 것을 중심으로 이해할 것이고, 만일 현재를 부정적으로 본다면 과거도 부정적으로 볼수 밖에 없다. 

또한 과거를 조선후기, 열강의 침략이 시작되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기, 일제의 침략에 당하고 일제의 가혹한 침략이 자행된 198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 아니면 일제가 한반도를 만주와 몽고, 연해주의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고, 일본의 식량과 공업원료 생산지대로 개발한 1920년대와 30년대, 전쟁시기의 1940년대, 일제가 건설한 물적 기반이 와해되어 버린 해방이후와 한국전쟁, 거의 일제시대 수준에 머물러 정체된 시기인(미군에 의해 군정이 이루어 지고, 오직 군사적인 목적으로 생존하던 ) 1950년대-60녀대 중반, 아니면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1960년대 중반이후 등, 어느 시기를 강조하느냐에 따라 논란이 달라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또한 과거의 누적적이고 집적된 것이 현재를 이루었다고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물적 자본만 가리킬 것인가, 인적 자본(교육, 기술, 숙련, 규율적), 사회적 자본(조직력, 단력력, 사회관계능력),자연자본(한반도의 자연자원들, 광산, 수자원, 해양 수산자원 등), 자본의 형성(자본주의 경영 능력)까지 포함한다고 한다면 각 분야마다 또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대개 식민지 근대화 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물적 기반 특히 교통 수송 통신 시설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공장과 같은 산업적 물적 시설은 대개 한국전쟁을 통해서 파괴되었다.  인적 자본도 거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국인 스스로 개발하였다거나, 아니면 일본인 공장에서의 공장 경험을 가리킨다.

그런데 식민지라는 것의 요체는 식민모국, 제국과의 관계에서 항상 보조적인, 부수적인, 쉽게 희생당하는 존재라는 데 특징이 있다는 점은 별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를 물적인 표현으로 바꾸어야 하니, 불평등, 차별, 분업구조의 열등한 위치 등으로 고정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능력을 지녔느냐의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현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식민지 상태와 같은 상태에 있다고 보면된다. 우리의 군대를 우리가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의 의사를 표현할수 없다.  대통령이 잘못하고, 법을 어겨도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이런 상황은 사실상 일제하의 식민지시절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식민지는 헌병경찰제도와 동시에 군대의 주둔, 세금체제의 강화로 나타났다.  특히 1910년대에는 주세와 연초세와 같은 세금을 도입하여 일반서민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제품에 승부를 걸고, 이를 통치자금으로 사용하였다.  즉 우리가 낸 세금이 우리를 억누르는 비용으로 지출된 것이다.  주세의 아이디어는 일본에서 이미 도입되어 성공을 건두었기에 조선왕조시절의 세금을 체제를 거의 그대로 두면서, 간단하게 도입하였던 것이다.  당시 약 30만명이상의 한국인들이 술 제조허가를 얻어서 세금을 납부하고, 술을 먹는 사람들도 간접세 형태로 세금을 납부하였다.  일본제국은 한반도의 공장 건설을 저지하고, 단지 일본상품의 소비와 원료수취지역으로 운영하였다.  개발하여 수취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있는 것을 빼앗는데 열중하였다.  이리하여 관세의 수입이 늘고, 토지조사사업을 통해서는 토지세가 급증하게 된다.  그러나 1918년의 일본에서 발생한 도시에서의 쌀 부족사태는 이후에 한반도를 쌀 생산지역으로 본격적으로 개발하게 된다.  그리하여 1920년대는 쌀 생산의 전문화된 지역으로 전화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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