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세계는 무너졌다.

역사/17-18세기 2009. 2. 13. 16:47
유럽 역사와 조선의 역사를 비교하면, 특히 근세의 경우에 유럽에는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했다는 점과 조선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다는 점이다.  물론 조선의 1400-1500년대에는 왜구의 침입, 1500년말의 일본, 1600년대초중의 후금과 청의 침입이 있었지만, 실은 상대적으로 해외에서의 침략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혹자는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하는 상호 강화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본다는 전쟁이 적었다는 것이 백성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편안하였을 지도 모르지만, 국가 능력의 측면에서는 국가 능력의 약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아무튼 1600년대 중반 조선의 국가는 몰락하였다.  과세자료와 신분자료의 망실은 국가를 유지시키는 세금부과와 군역과 부역을 부과하는 능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게 된다.  물론 양반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스스로 의병을 일으키거나 하면서 자신들의 실질적인 지배를 강화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몰락은 신분질서의 몰락일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질서, 자신들이 경제력을 궁극적으로 보호해 줄수 있는 세력의 몰락을 의미하므로, 양반들도 과거의 국가질서로의 복귀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질서는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이미 백성들은 국왕과 그의 신하들이 백성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먼저 도망쳤으며, 위기에 그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시에 왜, 명나라, 후금과 청나라 군대의 장기간 백성들과 접촉하므로써 조선의 국왕이 아닌 다른 세력들의 국가 능력을 경험하게 된 상황이다.  왜군은 마치 자신들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처럼 조선의 인민들을 애초에는 돌보는 정치를 하기도 하였고, 명나라는 은을 이용한 화폐를 사용하고, 명나라 상인들이 들어와 명나라 군인들을 위해 물건을 팔고, 이에 더해 조선에서도 은광산을 발굴하여 은을 이용하여 장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발달된 명나라의 옷감이나 지식이 넘처 들어오게 된다.  이후 후금과 청나라를 통해 임금이 무릎을 꿇는 장면을 목격한 백성들은 이제 조선의 백성을 우습게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자신의 국왕에 의지할수 없는 백성들은 자신들의 능력, 아니면 가족, 아니면 해외 강대국의 세력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이미 중국과 일본은 서구와 접촉하고 있었으므로, 천주교나 과학적인 지식과 지도, 문물이 들어와 있었고, 이것이 해외와의 접촉을 통해 조선조 사회에 유입되게 된다.  국제무역을 위해 청나라 말이나, 일본말, 여진의 말을 배우는 자는 쉽게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글을 좀 알아서 일찍 의학이나 약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제 의사나 약사가 되어 돈을 벌 기회가 생긴 것이다.  강이나, 도로가에서 일을 하는 상대적으로 상업에 일찍 눈을 뜨게 된 사람들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이들은 이제 새로운 사업기회와 생존 양식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게 된것이다.  개인들의 인격 양성을 위한 4서 3경을 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잘 알 수 있는 지식, 해외의 문물이 돌아가는 것을 알려 줄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양반은 돈을 주고 사면 되므로 돈을 버는 것이 우선인 계층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들은 상대적으로 몰락한 양반층이나 중인 계급(기술, 하위 관료층)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들을 서구에서 말하는 부르주아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국가를 장악하려는 시도, 아니면 적어도 국왕이나 양반신분세력에 의한 자의적인 법률 집행이나 부분적인 자산 독점을 넘어설 수있는 정치적인 힘을 가졌느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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