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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1818년 베를린 대학 철학교수 취임 연설문에서 경남대 교양을 생각한다.

교양 2014.03.27 11:09

이번 학기부터 학교에서 교양기초교육원 운영의 책임을 맡겼다. 그 동안 운영되던 교양기초교육부를 처나 단과대 수준으로 승격시키고, 교수학습센터는 독립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조치이다. 그 동안 경남대에서도 교양 기초과목을 전체 졸업 이수학점 130학점에서 30학점이 될 만큼 수량적 측면에서 증가되어 왔다. 그러나 현금의 기초교육의 내실과 교야에 대한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즉 고등학교에서 이수한 학력으로는 대학의 전공과정에 진입하기 어려운 사정에서 기초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교육에서 교양과 인성이 강조되는 사회적 수요의 측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제 경남대 교양기초교육의 3주 반이 지나면서, 그 동안 현황 파악, 체제 정비에 시간을 바쳤다면, 이제는 조금 큰 틀에서 과연 경남대에서 어떤 교양이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기가 된 것 같아서, 오늘 아침 서재에 꽂혀있는 서적 중에 헤겔(1770-1831)1818년 베를린 대학에서 행한 교수취임 연설문을 접하게 되었다. 우선 드는 의문은 우리나라의 경우에 교수 취임연설문이라는 제도적 관행도 없고, 이런 종류의 취임 연설문이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나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물론 당시에는 프러시아 제국의 대학제도에서는 대개 한 교수가 하나의 강좌를 맡고 있으며, 이는 2개 이상의 강좌를 요청하면, 거절하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물론 현재는 독일의 정교수들도 하나를 맡지는 않고, 2-3개의 강좌를 맡는 것이 관례이지만, 적어도 1970년대 대학교육이 대중 교육이 되기 전까지는 교수의 권위가 막강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사회학의 경우에도 막스베버가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논한 것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서양의 학문 제도와 대학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하고있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고, 경남대 교양을 논하면서, 헤겔로부터 끌어 오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유쾌한 일을 아니지만, 그래도 헤겔을 읽고 보니, 교수 취임 당시에 프러시아제국이 초한 사회적 현실에서 철학이 행해야 할 일을 제시한 점에서 그냥 철학 일반을 설파한 것이 아닌,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대해 철학이 행해야 할 소명을 말하고 있어서 그것이 마치 경남, 아니 대한민국, 지구적 시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경남대 교양에서 제시해야할 목표가 있는 것으로 보여 느낀 소감을 말해 보고자 한다 (G.W.F. Hegel, 1818/2004, [교수취임 연설문], 책세상).

헤겔은 당시에 독일이 처한 상황을 반철학적 사조가 팽배한 시기로 규정한다. 물론 당시 독일은 프랑스 나폴레온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절치부심하던 상황이었다. 헤겔이 스스로 자부하듯이 독일은 사상적, 사유적, 철학의 본류라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점을 간과하지는 말지만, 그렇다고 헤겔의 철학적 사유 자체를 독일 국수주의의 표현이라고 폄하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는 당시의 시대 상황(23)(1) 정신의 궁핍함과 일상의 관심사에 몰입하는 것, (2) 사건들의 공허한 자만 Eitelkeit (영어로 vanity)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신의 궁핍함에서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단순히 이성이라고 하면 규정이 어려워 진다. 사유적 이성을 조금 더 진전된 형태이다. 즉 즉자적 이성이 아닌 보다 심오한 사고의 과정과 단계를 더 나아간 이성이라는 뜻으로 일단 해석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성적인 사유이자, 감성적이고 사념적이며 주관적인 것이 섞여있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면서 스스로를 전개시켜 나가는 사유입니다” (29). 또는 반성적 사유로 규정하기도 한다. 즉 이성적 사유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반성적 사유라고 지칭한다. “인간 속에 본능적으로 있는 이성적인 면과 이것을 향하는 반성적 사유가 인간을 이 현상 세계에서 보편자와 근원자로 인도하며, 근거와 원인들, 법칙들에 대한 탐구로 인도하며, 이렇게 변화무쌍한 가운데 지속하는 것데 대한 탐구로 인도합니다” (31). 즉 정신은 바로 반성적 사유를 통해 이성적 사유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성과 이성적 사유로 나아가게 하는 반성적 사유가 당시에 궁핍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것을 바로 일상에의 몰입에 의해 더욱 조장된다는 것이다. 왜 일상에의 몰입이 이성과 반성적 사유를 방해하는 것일까? 이는 반성을 통해 이성을 작동시켜, 남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위에 인용한 바와 같이 보편자, 근원자, 근거와 원인들, 법칙들로 나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방해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 헤겔은 당시 베를린 대학에 헤겔의 철학 강의 그 중에서도 첫 개설강좌인 자연법학 Wissenschaft des Naturrecht (knowledge of natural law 자연법 학, 실증법학에 대비되는 용어)을 개설하면서,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즉 청년의 정신을 주장한다. 즉 대학에서 수강하는 청년들에게 청년의 정신을 가질 것을 주창한다. 청년이라는 존재는 시기상 아직까지 궁핍한 제한된 목적의 조직에 얽매이지도 않으면서, 사심없이 학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시기라고 규정한다(27). 여기서 학문적인 일이란 직업으로 앞으로서 학문에 종사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대학이라는 테두리에서 제공하는 학문의 맛을 들이고 수업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청년은 자만이라는 부정적인 정신에도 아직 얽매이지 않고, 단지 비판만 하려는 악착같은 노력이 지닌 몰내용성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시기라고도 규정한다. 따라서 청년들은 건강한 가슴으로 진리를 열망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청년이야말로 철학하기에, 반성적 사유로 이성적 사유를 하는데 적합한 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헤겔은 청년들인 수강생들에게 부탁하기를 학문에 대한 신뢰와 이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즉 일상적인 궁핍함에서 나와서, 이성적인 사유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면서,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 가진 위대한 힘인 이성적 사유, 반성적 사유에 대한 힘을 믿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진리에 대한 용기와 정신의 위력에 대한 신뢰는 철학 연구의 제일 조건입니다”(27-28). 믿음과 용기를 말하고 있다. 나는 항상 책을 읽는 용기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인데, 영어권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즉 독서는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고, 독서는 자신을 반성하고 새로운 사유의 세계로 나아가므로, 대단한 용기와 상상력이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한다. brave라는 영어 표현이 육체적인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는 점을 전재한다면, 용기를 갖고 독서를 하자는 표현은 육체적 고통을 통해 사유적 반성과 이성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는 헤겔의 의도가 나타난다고 보인다.

이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반성적 사유를 행하는 것, 세계사의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용기를 가진 자만이 할 수 있고, 자신의 사유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진 자만이 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나의 반성적 사유에 대한 믿음, 이 믿음을 갖고 나의 이성적 능력을 함양시킨다면, 세계는 다르게 나에게 다가온다. “인간이 세계를 이성적으로 주시할 경우에만, 세계는 인간에게 이성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30). 나도 경남대 교양기초교육원에서 의사소통에 기반한 기초, 전공에 앞선 학문적 기초, 자유시민적 교양, 사회생활에 앞선 도구적 교양 등을 염두에 둔다면, 주위의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용기와 믿음을 요청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는 우리 모두가 대학에서 반성적 사유에 기반한 이성의 힘을 길러 사회에 진출하는 대학의 이념을 주창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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