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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역사/1930- 2013. 2. 20. 10:20

 독일인들이 1920-30년대에 나치즘에 흡수된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집합심성때문인가? 이에 대한 확정된 답을제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치 지도자들은 대중들의 피학 증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는 점, 그리고 스스로 가학을 선호하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나치 지도자들은 때로는 지배받는 것이야말로 대중의 소망이다” (Fromm, 1941/2012: 232)라고 주장하였다.

 Zevedei Barbu, 1956, Democracy and Dictatorship: Their Psychology and Patterns of Life (New York, The Grove Press)도 같은 맥락에서 이를 설명한다. 즉 민주주의를 생성하는 조건과 전체주의를 생성하는 조건을 매울 다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독일인들이 민주주의적 상황에서 전체주의를 수용하는 상황으로 전환되는 사회심리적 조건을 분석한다. 즉 나치즘이라는 정치문화적 수준에서의 표현은 실은 당시 독일 국민들의 사회심리적 상태에서 드러난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심리적 해석이 경제적, 정치적 해석을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수용한 국민들의 집합심리적 상태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연 현재 우리의 집합심리상태가 향후 민주주의 또는 전체주의적 정체와 어떤 상호 선호성이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고찰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민족 사회주의적 (나치즘) 사고 경향, 통제된 경제, 군사주의에 대한 선호 등은 나치즘으로 나아간 조건이 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사회심리적 성격의 깊은 현실의 한 증후로 볼 수 있다.

 만일 이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나치즘은 독일만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아니라, 적어도 특정한 사회 경제적 조건아래에서는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아니 물음을 현재 우리의 상황에 대입하면, 현재 대한민국은 나치즘을 견딜만한 수준인가로 질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서의 도피에 일단의 암시가 나와 있다. (1) 민주주의 상태에서도 심리적으로 피곤하고 내적으로 체념한 상태에서는 나치즘이 수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이처럼 쉽게 나치정권에 굴복한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주로 그들이 내적으로 피곤하고 체념한 상태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는,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개인의 특징이다” (Erich Fromm, 1941/2012, Escape from Freedom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217).

 (2) 두 번째로, 개인들의 상승이동의 가능성이 막히고, 사업기회가 제한되고, 부익부 빈익빈이 가속화되는 희망없는 사회에서는 나치즘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는 우리가 앞에서 일반적인 독점자본주의의 전형적 특징으로 설명한 개인적 허무감과 무력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Fromm, 1941/2012: 225). “나치는 보수적인 견해이든, 진보적인 견해이든 일치하는 것이 있다. 즉 나치는 일자리와 생존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다수의 인민들이 바라던 연대감을 제공하였다” (Robert H. Lowie, 1954, Toward Understanding German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 마지막으로 개인들이 가족이나, 이웃, 동료 등의 일차적 공동체에 소속되지 않을 경우에는 나치즘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학적 경향과 피학적 경향은 둘 다 고립된 개인이 고독을 참지 못하고, 그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 공생관계를 필요로 하는 데에서 생겨 난다” (Fromm, 1941/2012: 229). “일반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 개인이 더 큰 집단과 하나가 아니라는 느낌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Fromm, 1941/2012: 218). 나치는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공동체로의 귀속감을 제공하였다. 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 따른 심리적인 굴욕감과 공격적인 성향에 대해 나치는 민족공동체의 이름으로 대외적인 위상을 공격적으로 높이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당한 수치를 회복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는 미래에 대한 안전감도 동시에 주는 것이었다. 나치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와는 달리, 굴욕을 당한 독일 국민들에게 자존심을, 패배자들에게 권력을 주었고, 구제도의 몰락과 파괴이후의 국민들에게 인간사회의 유기적 안정감을 제공하였다. 물론 이는 민족 공동체의 이름으로 제공하였다. 물론 이 민족공동체는 열등한자들을 배제하는 배타적 민족 공동체였지만, 적어도 공동체 내에 포섭된 이들에 대해서는 심리적인 위안을 제공하였다.

 3가지 측면만 고찰해 보아도 현재의 우리사회에서 과연 나치즘을 버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나치즘의 새로운 이념에 깊이 매료되어, 그 이념을 주창한 자들을 열광적으로 추종한 사람들은 바로, 소상인, 장인, 화이트칼라로 이루어진 하류 중산층이었다. “그들의 인생관은 아주 편협했고, 낯선 사람을 의심하고 미워한 반면, 아는 사람에 대해서는 호기심과 질투심을 불태우면서 자신의 질투심을 도덕적 분노로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결핍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Fromm, 1941/2012: 220). 사회적 연대감의 폭이 좁고, 깊이가 없을 경우에는 편협한 사고의 틀에 잡혀서 적대감과 질투심에 불타 결국은 민족 공동체와 같은 보다 폭이 넓으면서도 귀속적인 속성에 의존하여 귀속될 수 있는 배타적 공동체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프롬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지만 이 문제는 교묘한 선전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모든 나라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진리가 승리를 거두었을 때 해결될 수 있다. 그 진리란 윤리적 원칙이 국가의 존재보다 위에 있으며, 개인은 이 원칙을 지킴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이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Fromm, 1941/2012: 219). 좁은 공동체를 포괄하는 윤리적 원칙이 아니라, 바로 시공간적으로 폭과 깊이를 가질 수 있는 공동체의 구성이 나치즘을 이겨낼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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