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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마산행진곡

역사/1900-1919 2010. 2. 3. 17:03
철도청 Korail 홈페이지 한국 철도 100년에 들어가 보면, 1905년에 건설된 마산포선 철도의 철도가가 수록되어 있다.

삼랑진을 갈려오는 기적 소리는
산악이 울리는 듯 강물이 요동
차례로 바퀴를 굴리울 때에
黑煙은 滿空하여 그름을 편 듯

바람같은 형세의 번개와 같이
낙동강 정거장에 得達하니
무수한 돛대는 강을 덮었고
번창한 무로하는 수륙을 잇네

넓고 넓은 鐵橋를 얼른 건너서
어언간에 한림정을 지내였고나
빨리 닿는 기차는 속력을 도해
진영역도 어언듯 넘어섰고나

창원역의 번화함을 잠시 살피고
구마산의 정거장에 당도하여서
往去의 유적을 듣고도 보며
광천의 욕장도 멀리뵈도다

기적이 해수를 놀래일듯이
진해만 鋪聲을 같이하는 듯
산악을 무늘듯 크게 울리니
어언듯 종점의 마산역이라

遠山을 굽으려 가깝게 하고
近山을 뻗치어 멀게하면서
살같이 빨리 부는 나는 새같이
어느듯 제물포에 다달았도다

이상과 같이 6개 연으로 되어있다.  각 연은 삼랑진에서 출발하여 낙동강, 한림정, 진영, 창원, 구마산, 마산역에 이르는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마지감 연에서 왜 제물포가 나와는지는 잘 모르겠다. 배를 타고 제물포에간다는 것이진, 아니면, 마산선-경부선-경인선을 타고 제물포에 간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흥미로운 점은 낙동강이 당시 아나도 1905-6년경에도 여전히 배를 통해서 운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철도와 동시에 수운을 통해 화물 운송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창원은 번화하다고, 묘사하였고, 그러나 구마산은 지나간 유적을 듣고 본다고 하여, 영화가 사라져 갔다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는 현실로서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시에 이미 국권이 빼앗긴 상황에서 일본인의 느낌을 적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무튼 구마산은 이제 신마산에 비해서 상권이 약화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곧 해수욕장을 보인다고 하여, 당시에도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에 해수욕장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모래사장의 풍경을 묘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마산은 산호동 앞부근, 여객터미날, 그리고 가포 지역에 모래사장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산호동 쪽의 모래사장을 가리킨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는 신마산역으로 가는 철로 노선은 바닷가에 면에 있기에 바닷가의 파도소리와 같이 날 수 있다.  그러나 글에서 한자의 포성은 아마도 진해만에 이미 일본 포병대대가 들어서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포사격 소리를 의미하는 것을 한자를 잘못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07년에 들어서면 고종은 물러나고, 군대가 해산되면, 완전히 일제의 손으로 넘어가고, 일본은 한반도 통치를 위해 군대를 추가로 파견하고, 한반도의 백성들의 소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이다.  1907년 7월 26일자 부산이사청 이사관 松井 茂가 이본 외무총장에게 보낸 전문에 따르면, 7월 26일부터 밀양철교와 삼랑진낙동강 철교를 지키기 위해 5명씩의 병졸을 파견하고 있고, 진영부근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자체적으로 수비대를 구성하여 자체 경비에 나서고있다.  당시의 흉흉한 민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진영지역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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