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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불안이 과거를 불러온다.

역사 2008. 10. 7. 14:11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제도나 사회관계를 꼽는다. 물론 시간이란 물리학적인 기계적인 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관계가 누적된 사회적 시간을 가리킨다.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은 자신의 시간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내가 살아 왔으면서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들.  내가 살아온 세계마저도 내가 이해할 수 없다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란 어느 세계인가? 라는 의문.   현재의 삶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삶을 다시 말하고 싶고, 돌아보고 싶고, 과연 내가 현재는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해석하면서 살았는가, 아니면 세상이 변하여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아마리 우리가 시간과 역사, 지역과 공간, 사회제도와 관행들에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과거보다는 더 오랜 과거, 내가 알 소 있는 지방보다는 더 넓은 세계를 알아야 세상을 이해하면 살아 갈 수있는 세상이 되었다.  현재의 시간은 점차 불안정해지고, 자연의 섭리도, 자연의 규칙도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제도들 대부분이 흔들리는 세상이 되었다.  가족도, 직장이나 직업도, 이웃도, 고향사람들도 모두 흔들리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나를 흔들고, 영향을 주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럴때 우리의 현재는, 그리고 현재에 기반을 둔 미래는 흔들린다.  나의현재는 어떤 과거의 산물인가?  이런 질문이 고루한가?  현재의 과거의 산물이라는 물리학적 진실, 그리고 미래는 현실의 결과일 것이라는 시간의 불가역성의 진실도 흔들릴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과거를 돌아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재가 너무도 혼란스럽기에!

이런 나의 생각은 김영목, 2004, "집단적 기억과 역사: 19세기 전반의 독일 역사담론"(독어교육, 29집: 456에는 하버마스를 인용하면서, "불안의 원천으로서 미래를 목적론적 역사기획으로 다시 채워보려는" 시도라고 정하였다.  이를 따라서 김영목도 "역사는 원칙적으로 방향성 상실과 위기의식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기획되고 있다"(457)라고 진술한다.  물론 이러한 역사 서술을 인정한다면 매우 주관적인 역사 서술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점을 인정한다. 각자의입장에 따라 서술이 달라지고, 강조점이 그리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나는 역사란 하나의 역사가 아닌 각자의 입장에 따른 역사 있을 뿐이고, 중요한 것은 개인에 갖힌 역사를 통해 보편적인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같은 맥락을 Beredetto Croce(1866-1952)는 "역사상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절된다"고 주장하게 한다.  이렇게 역사가 주관적으로 해석된다는 명제, 또는 이 명제를 실제의 역사에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체주의 사회일수록, 다양한 역사 해석을 부정하고, 국가주의적인 단일한 역사 해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가족도, 하나의 인간도 마을과 이웃도 부정된다.  단지 국가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역사만이 드러난다.  다양한 역사 해석이 가능한 사회는 그 자체로서 다원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이고, 미래를 위해 다양한 가능성의 씨앗을 보유한 사회이므로 어떠한 불확실성과 위험에도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양한 역사 해석의 하나를 서술할 것이다(전제주의 사회에서는 공적인 기억을 사적인 기억으로 환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권귀숙, 2006: 12; Hosking, 1989; Marques, Paez & Serra, 1997을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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