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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사회의 견실함을 시험한다.

역사/1920-29 2010. 3. 4. 07:39

아이티와 칠레에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나 지진의 강도 면에서는 칠레가 강했고, 피해면에서는 아이티가 심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나, 간과하고 있는 점은 지진은 자연재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능력을 시험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필자는 마산의 2003년 태퐁 매미가 덮쳐서 8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해였을 때 공동체의 위기를 거론하였다.  즉 피해자체도 문제지만, 피해에 대처하는 공무원(당시의 마산시 시장의 행적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마을조직(공식적으로는 수방단이라는 것이 조직되어 있고, 아마도 민방위조직기 가동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이 일차적으로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고, 이어서 동네 자체에서도 자발적인 대처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사후의 대처방식은 이후의 재해와 재난과 같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의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문제는 다시 발생할 가능성만 높여 놓았다.

1923년 9월 1일 정오의 2분전에 일본의 동경 인근에 발생한 규모 7.9 규모의 지진은 사회가 지닌 죄의식, 피해의식, 가해의식 등 무의식적 역사에서의 죄가 무엇이었는지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이때의 지진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 약 13만명 정도이 죽음, 이후의 화재, 쓰나미 등의 피해로 이어졌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1) 해일의 위험, 후지산의 폭발가능성 등 자연재해의 후속타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 (2) 1910년대 이후에 생겨난 호황과 자유주의적 사회풍토로 사람들의 생활이 방탕해져서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는 생각, (3) 교도소에 갖힌 사람들이 풀려나와서 약탈과 강도를 일삼고 있다는 소문, (4) 1923년 6월경에 적발한 사회주의자 음모 사건과 연결시켜서, 이들 사회주의자들이 소란을 여기할 것이라는 소문, (5) 조선인들에 대한 가해, 1918년 쌀 소동사건, 1919년의 독립운동, 이미 일본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10만여명에 달하는 한국인(당시 일본 당국자들은 조선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일합방전에는 한국인이라고 불렀었다), 특히 관동지역인근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2만여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공포감 등으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게 된다.

즉 조선인의 약탈에 대해서는 지진발생후 3시간만에 동경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선인과 손잡고 공격한다" 내용이었고, 이어서 요코하마 지역에서는 당일 오후 7시경부터 "조선인들이 떼를 지어 공격한다"는 각종 내용이 누군가의 공개적인 소문 살포와 입소문으로 삽시간에 퍼지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인근의 조선인들이 공사장에서 다이너마이트를 가져온다, 무기를 들었다, 떼를 지어서 몰려 다닌다, 강도, 약탈, 강간, 투독(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등의 소문으로 처져나갔다.  이에 대해서는 사후적으로 신문에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라는 식으로 보도되었다.  대개는 2-3일동안에 이 소문에 의해 약 6천여명이 살해당했다고 추정되고 있다.  누가 한국인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일본어 발음을 시키거나, 수염을 기른 사람, 키가 크고, 광대뼈가 나온 사람, 쌍꺼풀이 지지 않은 사람 등을 골랐다고 한다.  죽인 당사자들은 자경단이라고 하여, 마을 자체적으로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죽여졌다고 하나, 이당시는 이미 군대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계엄시기였으므로, 군인과 헌병, 경찰이 동조하거나 방치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실상이다.

아무튼 역사에서 6천여명이상의 사람이 2-3일 사이에 소문에 의거하여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평상시에 지니고있는 사회의 원죄를 떠올린다.  즉 비상시에는 사람들이 이런정도 잔인할 수 있는 사회관계가 평상시에는 사회적 틀(facade)에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티의 지진에 이은 무권력상태, 대통령니 도망가고, 약탈이 일어나고 하는 상황을 보면, 정상적인 사회에서 사회적인 연대나 공동체의식의 정도를 판가름 할 수 있다. 마산에서 2003년에 희생당한 8명의 매미 피해자들은 마산시민들이 대하는 태도를 보면, 마산사람들의 공동체 의식과 연대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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