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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정세를 잘 살피는 것이 약소국이 살길이다.

역사 2009. 1. 14. 18:38
서양에서는 중세가 마감되는 1350년경부터 날씨는 차가와지기 시작하지만
르네상스라는 문화가 부흥하는 계기를 만나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 문화권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비잔틴 제국의 멸망에서 망명해온 인적 자원과 문화적 영향을 보강하고
몽골 제국의 탄생으로 용이하게 된 동방무역을 통해 무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임으므로서 유럽이 세계 역사를 지배할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정치적으로는 몽골의 영향력 약화, 이슬람이 강대해졌다가 다시 약화되는 시기, 유럽의 민족국가가 거의 완성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나는 가끔 우리는 이 시기에 무엇을 했던가하는 자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원나라는 물려났고, 그러나 명나라가 들어서서 조선을 지배하려고 한다.  바깥 일본 열도에서는 전국시대가 시작되어 왜구가 날뛰고, 각지의 장군들이 서로 지역을 기반으로 쟁투를 벌이게 된다.  한 일본인이 이 시기에 대해 논의하면서 한반도에는 당시에 일본의 지역의 장군들과 같은 사람이 없었느냐고 묻는다.  일본은 1600년경에 되어서야 전국이 통일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등장하지만 이는 곧 명나라에 의존하는 사대적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물론 1400년대는 한반도에서도 문예부흥, 국가의 기반을 정립하는 시기가 된다.  조선조 역사에서 조선 전기가 조선 후기에 비해 국가가 더 강했다고 평가할 정도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1500년말에 벌어진 전국 통일의 시점에서 오오다 지역(지금의 동경을 포함한 관동지역)을 공격하는 풍신수길은 10만 군인을 동원한다.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할 때에도 역시 15만 군인을 동원하므로, 그다지 특이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율곡이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다는 정도가 나온다.

임진왜란 2년전인가 조선의 사신들이 일본을 방문하고, 이들의 국력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사신들은 정파의 이익을 위해 해외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곡해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한반도가 완전히 일본에 먹히는 1910년경에도 한반도에는 2만정도의 병력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고 배길 수가 있는가?  조선 전기의 내부 상황은 내부적으로 초기의 개국공신들과 왕권, 그리고 새로운 사림 세력들, 재지 토호 세력들이 상호 각축을 벌이는 양태였다고 보여진다.  이들은 내부적인 정치적인 다툼을 위주로 인민들을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실질적인 경쟁과 다툼 보다는 정치적인 타협와 야합을 통해 인민 착취의 균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역사에서는 이 시기가 융성했던 한 시기라고 평가할 수있을지 몰라도, 세계사에서는 뒤떨어지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일본의 한 영주는 이미 1500년대 초반에 푸르투갈의 무역을 받아들였고, 일본의 왜구들은 중국 해안가에 진출하고 심지어는 동남아까지 진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은 1400년대에 정화 원정대를 아프리카 동쪽까지 보내던 시기이다.  조선은 대마도를 정벌하고, 4군 6진을 설치할 동안이다.   바깥정세를 잘 살피는 것이 약소국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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