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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깨끗하게 만든 나라는 선진국이다.

역사/19세기 2009. 6. 24. 08:02

개인이 잘 사는 나라는 많다.  설사 그 나라의 백성은 곤궁에 처해도 그 나라의 특정 개인이 잘사는 나라는 많다.  그러나 빈구격차가 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간의 적대감, 연대감과 인간성의 상실, 자연에대한 생태적관점의 부족, 신에대한 광적인 숭배가 자리를 잡고 있다.  19세기에 일본과 한국은 개인들의 삶은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즉 일본이 조금 더 잘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저 조금, 약 20%정도 더 일인당 국내 총생산이 높은 정도이다.  현재에 비해서도 오히려 더 작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현재는 화폐가치로만 보면 2배이상의 경제적 격차를 보이고 있다.  쇄국의 측면에서 본다면, 국내 총생산 대비 무역의 규모로 본다면 적어도 조선이나 일본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거나, 아니면 일본이 더 쇄국의 정도가 큰 것으로 되어 있고, 시장의 발달 수준도 비슷했다고 분석되고 있다.  현재도 일본에 비해 한국은 해외 개방의 정도가 훨씬 높다.  즉 국내 총생산 대비 무역량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한국에 비교가 되지 않ㅇ을 정도로 국내 소비의 비율이 높은 나라이다.  따라서 쇄국이나 개방이 경제발전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그러면 무엇이 조선과 일본의 미래를 가르게 되었을까?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 본다면, 국가의 대외 통제 능력, 국가내의 지방분권의 정도, 다르게 표현한다면 국민들의 활력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을 보인다.  일본의 국가는 대외적으로 매우 개방적인 지정학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쇄국을 하여도, 적어도 나가사키에서는 네덜란드와 청나라 무역선이 기항하고 있었고, 이를 철저히 관리하고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1853년에 미국과 무역을 시작한 후 부터는 매우 적극적으로 서양의 산업기술을 받아들여,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시작한다.  물론 이러한 산업화가 성공했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의지를 가지고 산업화를 시작하였고, 1840년의 중국의 아편전쟁(중-영전쟁), 1860년의 베이징 함락이라는 사건에 대해 일본은 군사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취하였다.  이어서 1868년에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여 근대국가체제로 나가는 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조선의 정한론도 이후에 적극적으로 등장한다.  반면 조선은 대외적으로 중국에 매년 조공을 보내고, 일본에 대해서는 1811년에 통신사를 마지막으로 보냈고, 대마도에는 1855년 1858년, 1860년에 걸쳐 사신을 보내나, 여기에서 별로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내적인 대처를 하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미 망해가는 청나라에 기대는 정책, 자율적으로 대외적인 대처를 하려는 의지의 부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일방적인 정보, 위기를 대처하기 보다는 모면하려는 자세가 조선정부의 능력이었다.  이는 당시에 세도정치에 의해 정부가 유지되는 정통성없는 정치인들의 한계였던 것이다.  국가의 이익보다는 몇몇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정책을 좌지 우지 했던 것이다.

대내적인 정치의 형태에서 조선은 내부의 능력을 호라용하지도 못하고, 소수가 의사결정을 장악하고, 이를 곗혹유지하기 위해 유능한 이들의 정치 진출을 막았다.  백성들의 진취성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폐색시키면서, 백성들은 국구의 정권, 왕조와 완전히 격리되거나,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에 어찌되었든, 신문을 통한 의사표현, 귀족원과 중의원의 구성, 헌법의 제정, 지방 각지의 번 세력들의 저항과 의사표출 등이 조선과는 다른 점이다.  이들 번들을 현으로 바뀌기 전까지 매우 독자적으로 대외적으로 교섭하고, 무기도 제조하고, 비공식적인 무역도 발전시키게 된다.  국가가 단일 명령체제가 아니라, 분권화된 체제에서 각자의 활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현재 우리의 상황을 보면, 지방의 활력을 살리고, 국가가 대외적으로 유연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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