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10.03.16 살인의 추억
  2. 2010.03.16 다방 내 담론의 특징
  3. 2010.03.15 만인보에 나타난 마산의거
  4. 2010.03.03 걷기의 행복
  5. 2010.02.17 간 밤에 비가 왔는데 여기는 눈이 쌓였네 1
  6. 2010.02.08 김소운의 "창원장날",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
  7. 2010.01.27 평일 아침 무학산 둘레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8. 2009.04.29 기술 농사꾼 조용두에게 생태농업을 들어 봅시다.
  9. 2009.03.19 개같은 사람이 나쁜 말인가?
  10. 2008.11.14 이자를 받는 것은 사회관계를 표현한다.

살인의 추억

교양 2010. 3. 16. 09:57

최근 슈피겔지의 기사(Spiegel, 2010, "Interview with Defense Expert P.W. Singer, The Soldiers call ite war porn, Mar. 12)에 따르면, 미국이 아프키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는 방식 중에 하나는 무인 비행기를 이용하여 폭격을 하고, 저격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무인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은 미국의 한 사무실에 출퇴근하는 직원들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매일 출퇴근하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대해,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전쟁터의 피비린내를 맡지 않고 전쟁을 벌이므로, 이들은 마치 디비털 게임을 하듯이 별로 죄의식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한다고 믿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육체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은 사격이나 폭격의 목표물은 보다 상세히 보면서 죽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일 사람들이 모습을 확인하고, 죽이고, 그리고 다시 죽었는지 얼굴을 확인하면서, 살인을 하는 것은 설사 피냄새를 맡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폭력의 사회학에서 랜달 콜린스가 관료제적인 폭력을 말하면서, 비행기에서의 폭격, 멀리 버턴을 눌러서 폭탄을 투하하는 것은 직접 죽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므로, 죄책감이 줄어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익숙해진 컴퓨터 게임에 의한 살인이라고 해도,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상황은 우리가 윤리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아직 익숙해진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이제 우리는 인류가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인류애를 최고의 도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박경리의 1959년도 작, [표류도]를 읽으면서, 주인공 마돈나 다방의 마담 현희가, 결국 애인 찬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을 보면서, 살인의 기억은 얼마나, 개인의 삶에 각인되어 있는가를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애인 찬수는 1950년 9월 서울이 수복되기 직전 인민군 치하에서 서울대 의과대 정문 앞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나는 내 얼굴에 핏기아 걷히는 것을 느끼며 정문을 향하여 달음질 쳤다. 정문을 나서는 동시에 나는 찬수가 걸어갔을 왼편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골목길로 H의 옆모습이 막 사라졌다. 나는 황급히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이마 위에 피를 흘리고 가로수 밑에 쓰러져 있는 찬수, 찬수를 안아 일으켰을때 그의 머리는 내무릎 위에 푹 떨어졌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손, 길바닥에 부딪쳐서 산산이 바스라진 시체. 일식처럼 태양은 내 視界에서 꺼져가는 것이다“(6장).

 결국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다방안에서 미국인에게 어떤 다방 손님이 희롱하고 거래하는 말을 듣는 순간이다. 표현은 현희의 관점에서 마치 실존주의 문학에서 처럼 표현되어 있다.
“빈 청동 꽃병을 와락 잡아 당겼다. 오직 최강사의 뒤통수만이 흑점이 되어 뚜렷하게 나타난다.
순간 마돈나의 창문들이 모두 뒤틀리어 공중에서 교차했고, 막막한 속에 시뻘건 불덩어리가 출출 쏟아진다. 뒤통수, 까만 점이 흔들리며 앞으로 넘어진다. 보이지 않는다“(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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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내 담론의 특징

교양 2010. 3. 16. 07:13

1950년대 후반 서울 중심지의 다방 모습에 대해서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묘사를 볼 수 있다. “정치를 장사하고 다니는 무리들의 수작이나, 예술가라는 골패를 앞가슴에 달고서 한밑천 잡아보자고 드는 족속들이나, 서커스의 재주부리는 원숭이 처럼 정의나 이념같은 것을 붓대로 재주부리는 것 쯤으로 알고 있는 지식인들이 협잡, 국록을 먹는 관공리들의 의자를 싸고 도는 장사 수법, 심지어 똥차에서 쏟아지는 폭리를 노리고 이권을 쟁탈하는 데도 점찮은 무슨 단체의 인사나 무슨 유명인들의 귀부인(?)들이 돈보따리를 안고 다방에서 면담을 하는 것이다”(박경리, 1959/1980, “표류도”, 13장, 박경리 문학전집 12권, 지식산업사).

1960년 마산 남성동 부근의 보리수 다방 부근에서 오상원 이라는 구두닦이를 소개하는 글 속에서 우무석은 다음과 같이 다방을 평가한다.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우리 사회의 문화적 표상에서 다방이라는 장소이미지는 유달리 남다르다. 다방의 풍경에서 시대별 정서를 찾을 수 있고 특정한 한 세대의 감수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방은 단순한 약속과 만남의 공간만이 아니라 정보교환과 상호소통의 담론구조를 지닌 일종의 아고라였다. 다방이란 공간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사회적 관심에 대한 비판적 담론이 잠재했기에 사회혁명의 바탕이 만들어졌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다방은 신산스러운 현실 앞에 놓인 절망과 고통에 찬 삶을 정신적으로 서로 위무해주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다방에서 죽치고 있었을 터”(우무석, 2010, “마산의 다방문화사”, 2. 17일자, 도민일보).

1970년대 후반 마산에는 약 150여개의 다방이 산재해 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마산시 통계연보, 1979). 이 당시의 다방에 대해 평가하면서 필자는 1979년의 마산민중항쟁을 기록하면서 “적어도 다방이라는 곳이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쉽게 사회적인 정보를 교환하면서 비판적인 사고를 기르는 장소인 것 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다”고 평가하였다(이은진, 2008, 1979년 마산의 부마민주항쟁, 불휘: 85).

최근에 한 사회학자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다방에 대한 평가를 보면, 프랑스나 영국과 같이 비판적인 공론이 형성되기 보다는 쾌락적인 장소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글을 본 것 같다. 그러나 서양이나, 우리나라라 공통점은 전적으로 공적인 장소도 아니고, 사적인 장소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회색지대는 완전히 공적 지대로 아니고 작은 폐쇄적 공동체도 아닌 전이지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가족을 만나는 장소도 아니며, 그렇다고 직장의 상사와 공적인 일을 의논하는 장소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보완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즉 다방은 집안일의 공적인 행사는 치르기도 한다. 먼 친척이 오거나, 아니면 상견례를 할 때, 아니면 회사에서 직적 상의하기 어려운 것들은 다방에서 협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보완적인 기능은 달리 표현하면, 기존 질서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해결을 모색하는 싹이 트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시대의 고민이 모두 모이고, 아이디어가 창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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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에 나타난 마산의거

교양 2010. 3. 15. 16:08
2006년 3월에 출간된 고은, 만인보 21-23권은 1960년대 전후의 혁명 상황을 다루고 있다.  이때 혁명이라 함은 아마도, 1960년 3-4월 혁명과 1961년의 군사 쿠데타를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고은 시인께서 그리 생각하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시집 3권에는 반복적으로 쪼는 지속적으로 마산의 열사들을 다루고 있다.
우선  김주열과 그 일가를 그리고 있다.  시는 대개 당시 살던 사람들의 감정을 표출하는 형식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김주열에 대해서는  21: 28-30, " 이제 마산은 전국 방방곡곡이었다".
김주열의 형인 김광렬 21: 238-239, "경찰의 총사격이 이어졌다.  뒷산으로 흩어졌다.  주열은 없고, 광열은 있다."
김주열의 모친인 권찬주 여사 22: 28-29, "그 뒤 죽은 아들이 바다 및 홍합대신 떠 올랐다.  그 어머니에게 죽은 아들도 산 아들이었다."
김주열의 시체를 낚는 모습 21: 276-277, "김주열의 시체였다.  경찰이 던져버린 시체가 26일만에 밀려왔다.  26일만에 떠올랐다.  쇳조각이 박혀 있었다".
어부 김기돈, 22: 26-27, "거룻배가 기우뚱 거렸다".

때로는 시나 문학이 사회과학이상으로 현실을 잘 표현한다고 느낄때가 있다. 역사적 감수성이란 오랜 정신적인 수양이 있어야만 되는 것 같다.  아마 고은 시인은 1960년 3-4월 마산의거를 시대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개인들의 이력을 많이 들여다 보신 것 같다.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열사들은 사후에 너무 우상화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도 사람이었고, 무서웠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부모님들이 그냥 데모를 나가면 나가지 말라고 말리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데모도 하지 않으면, 비겁자가 되는 것이다.  아니 우리의 이웃들이 그렇게 고생하고, 우리를 저렇게 무시하는 데 사내자식이 배운 놈이, 아니 이 시대에서 두발 걷고, 눈을 뜨고 사는 놈이 그러면 안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서 만인보에는 김효덕의 아버지, 21: 40-41,
김효덕의 어머니, 21: 214-215
김영호의 부친인 김위술, 21: 42-43
김영호(3.15에 사망), 21: 216-217
김영호 (마산 중앙중 3년)의 친구, 22: 25
의규군의 아버지, 21: 62-63
아버지의 염불 (전의규의 부), 21: 224-225
영준의 어머니 "그 어머니 주경옥 여사", 21: 220-221
김영준, 22: 103-105
용실이가 죽어서 왔어, 21:60-61
김용실, 22: 66, 23: 168-169
김영길, 22: 77
효덕이, 22: 82-83, 90-91
마산공고 2학년 이종모, 21: 76-78
노원자 (마산 제일여고), 21: 80-81
김종술 (마산 동중 3년), 22: 19
김용준, 23: 64-65
구두닦이 오성원, 21: 46-47
오성원, 23: 191
박철수 (국민학생 사망), 21: 310-311
유대수, 22: 201-203
두 혼백, 21: 222-223
두 주검, 22: 119
화물차 감옥 (유병호의 경험), 21: 252-254
김평도 (총상), 22: 42-43
옥채금 (김평도의 부인), 23: 289-291

신형사 (마산경찰서 사찰계), 21: 245-246
박종표, 23: 80-81
등 이상이 마산의거와 관련된 인물들을 만인보에 실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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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행복

교양 2010. 3. 3. 13:00

2월말에 마산 문화방송으로부터 행복에 관한 캠페인성 광고에 한 꼭지 나올 것을 부탁받았다. 내가 별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무엇으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 나의 하루 일과중 가장 그래도 만족스러운 상태, 아니 무엇인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아 그래, 내가 움직일 때야! 나는 생각이 잘 나지 않을 때, 움직인다. 다래(애완견)을 데리고 동네의 골목을 다니건, 아니면 목욕탕을 가거나, 무학산에 오르거나 아니면 그냥 집안에서 아이들 방이나 부엌이나를 지나치면서 말을 걸고,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열어보고, 하는 식으로 반응한다. 규칙적으로는 학교를 오가면서 걸어다닌다. 학교 내에서도 도서관을 뒷길을 통해 가거나, 점심을 먹으로 멀리 낮선 곳을 찾아다니거나, 그런 식이다. 이럴 때에는 가능하면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나를 아는 이들이 있으면 천천히 걷는 것은 어색하다. 그래서 낯선 곳을 찾는다.

그래서 일단 주제를 길을 걷기로 정했다. 그렇다고 행복이 생기는 것은 아닌데, 그것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행복은 무엇인가? 그저 우연히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인가? 그냥 만족스러운 상태, 무엇인가? 만족스럽다고, 그것은 허위의식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돈많이 버세요가 우리의 인사가 되더니, 이제는 행복하세요가 인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고 사회가 행복을 그리 중하게 여긴다거나 이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찌 보면 사회적인 행복의 조건을 망각시키는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학회가 지난해 9월에 행복한 관한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이를 탐구한 일이 있다. 사회적인 행복의 조건을 탐구하는 자리였다. 그리 쉬운 얘기는 아니다. 아래의 행복에 대한 몇가지 정의를 참조하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의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에게 행복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주는 그것 나름의 고유한 가치를 가진“ 것이다(김우창, 2009).
루소에게는 행복의 상태는 “생의 充溢感, 절대적인 내적 일체감, 함께하는 친밀감, 근접한 주위 환경과의 조화되고 막힘없는 연결감, 생생하고 직접적인 체험으로 모든 가능한 욕망의 자연스러운 실현”을 포함한다(김우창, 2009).
"이제 경주에서 주어지는 포상은 지구의 아름다움, 측정할 수 없는 충만함, 또한 생물권이 만들고 우리 고유의 것이기도 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 속에 구현된 감정“을 행복의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Weber, 2009: 129).

마산 문화방송 FM 98.9의 오전 8시 57분에 한 40초 가량 가량 방송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김우창, 2009, “행복의 이념: 사적 행복과 공적 행복”, 한국사회학회 주최, 행복사회와 문화정책의 방향, 서울 프레스 센터, 9월 29일에 발표된 글
Andreas Weber, 2008/2009, 자연이 경제다 (프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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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밤에 비가 왔는데 여기는 눈이 쌓였네

교양 2010. 2. 17. 17:33

설전날,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 다래와 같이 완월폭포 방향에서 만날재 고개로 넘어가는 데
둘레길에 눈이 쌓였다.
완월동 집에서는 그냥 비가 왔나보다 했는데, 눈이 쌓여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그냥 즐기시기 바란다.

블로그 스타 이윤기님께서 진지하기만 하고, 은은한 맛은 없다고 내 블로그를 평하셨는데
가끔 이런 사진도 올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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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운의 "창원장날",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

교양 2010. 2. 8. 14:59
어제 최헌섭 박사님이 이끌어주는 동행이라는 제목의 옛 길 걷기 모임에 참여하였다.  진해 웅동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나라 근대 유산의 한나로서, 수원지에 대해 책을 쓰고 싶다고 최헌섭 박사님이 말한다.   수원지는 대개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식수로 공급하기 위해 축조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산에도 추산동, 팔룡산 등지에 수원지가 있었던 것으로, 그리고 아마도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 들은 지는 몰라도, 산호동 뒷산에도 있었던 것으로 얘기한 것 같다.
진해에도, 웅동 수원지가 있고, 여좌동에도 수원지가 지금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원에는 지금도 진해시민들이 사용하는 성주 수원지, 그리고 또 하나의 성주 수원지는 수자원공사에서 창원공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려오다가, 김소운이 1950년 한국전쟁 직전에 "창원 장날"을 묘사한 수필에 군인(아니 경찰인가, 아무튼 수원지를 경비서는 사람)이 경화역에 쌀을 사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진해에도 수원지가 내가 위해 서술한 것 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김소운이 지적한 수원지가 어디인가를 다시 살펴보니, 이것은 규모 면에서 제법 큰 성주수원지를 가리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걷기 모임을 하다보면, 본인들이 기억하는 것과 실제와 혼동되는 현상이 가끔 발생한다.  점심을 먹으러 삼포로 향했다.  이곳이 삼포로 가는 길의 소재가 되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 그리고 영화를 떠올렸고, 사람들은 삼포로 가는 길의 노래를 떠올렸다.  내가 대학시절에 읽은 소설이고, 영화이기에 깊게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다.  물론 노래도 좋아하지만, 이는 나중에 나왔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설을 연상하면서 노래를 지은 것으로 추측했었다.  아직도 확실히 모르겠다.  그러나 노랫말을 지은이는 진해의 삼포를 생각하면 삼로로 가는 길의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아마도 황석영의 소설에 감천, 기차역, 삼포 등이 등장하여, 혹시 마산 내서읍의 감천, 중간의 기차역, 마산이나 창원, 그리고 진해의 삼포로 연상은 하였으나, 황석영이 마산에 온 사실을 들은 적이 없어서, 잘못된 상상일 것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튼 진해의 삼포는 바닷가이기는 하지만, 산을 넘어서서 들어가야 되는 곳이므로, 노랫말의 삼포와는 어울리고, 이곳은 어업을 주로 하여 경제생활을 하므로, 이곳에 가서 살 궁리를 하는 것도 이치에 닿는 것 같다.  황석영의 소설에서는 삼포로 가면, 건설공사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 데 내가 가본 삼포는 1960-70년에 공사가 있었을 지는 몰라도, 그리 큰 공사가 있을 곳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노랫말과 소설이나 영화와는 다른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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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아침 무학산 둘레길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교양 2010. 1. 27. 11:01
완월동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둘레길로 가보기로 했다.  전에 능선으로 다닐 때에 2시간 가까이 거렸으니, 둘레길로 다니면 한시간 정도면 되지 싶다.  일단 길을 나섰다.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수선정사방향이다.  곧바로 둘레길로 들어서니, 바다에 운무가 껴 있다.  자세히 보니,창원 방향의 하늘이 그다지 아름다운 운무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오염되어서 도시 전체가 낮은 구름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닌가 싶다(두번째 사진).  올라설 때 시간이 8시 48분이다.  이것은 산복도로와 완월폭포 올라가는 길의 차길 육교에 시계를 설치해 놓은 것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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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산 방향을 보니, 구름이 멋있다.  이것이 세번째 사진이다.  길이 메마르다.  다른 지방은 금년에 눈이 많이 왔다는 데 우리는 수량이 적은 것 같다.  걷는 길이 푸석푸석하여, 먼지가 인다. 만날재로 넘어가는 길에 중간에 대곡산 방향에서 내려오는 길하고 만나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만날재로 넘어가는 길은 약간 내리막길이다.  수선정사방향보다는 길을 정비 놓지는 않았지만, 운치는 있다.  이곳에서 보인 경치를 촬영한 것이 두번째 사진이다.  낮이라 휴대폰 사진기를 촬영하는 데 역광이라 잘 보이지 않아 대강 방향을 잡았다.
만날재가 금방 나온다.  원래 산 등성이를 통해서 수선정사 방향으로 가려면 올라가느라 고생하는데, 너무 쉽다.  시간도 9시 30분이다.  둘레길로만 치면, 40분정도 걸린 셈이다.  학교 사무실에 오니 9시 40분경, 집에서 출발한 것 까지 치면, 1시간정도 걸린 셈이다.  보통 길로 걷는 것보다 30-35분정도 더 걸린 셈이다.  한번 걸을 만하다.

출퇴근을 가끔 둘레길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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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농사꾼 조용두에게 생태농업을 들어 봅시다.

교양 2009. 4. 29. 14:36
5월 8일 (금) 오후 7-9시, 시와 자작나무 (마산시 구 중앙극장 맞은 편 김형준 치과 옆 건물 1층)에서
조용두 (녹색대학 교수)로부터 생태 농업에 대한 강좌를 들을 예정입니다.

조용두 강사는 NGO 협동과정에서 함안군 지역의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연구하여 석사학위를 받았고, 경상대 교수님과 공동으로 신기술 토마토를 개발하였으며, 지금은 함양에서 녹색대학(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고, 학원 단체에서 돈을 받고 하는 교육에 대해 항의하여,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나, 바뀐 이름을 잘 알지 못하여 일단 과거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에서 생태 농업 실습과 강의를 하고 하고 계신 분입니다.  와서 들으시고, 조용두와 그의 이웃들이 운영하는 생태 농산물들에 대한 소개도 들으실 수있습니다.

 이 모임의 주최는 경남대학교 NGO 협동과정 동문회 (대표 이정국)과 협동과정 (전공주임 이은진)이 공동으로 주최합니다.  따로 돈을 받지는 않지만, 시와 자작나무에 오시면 차 정도는 시켜야 하므로 3천-5천원 정도는 준비하셔야 합니다.  끝나고 대개는 근처 창동의 삼도정을 가서 삼겹살에 밥먹고, 해오름에서 맥주 한잔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경남대 NGO협동과정은 원래는 지역 시민사회 단체의 실무자들을 위해서 개설하였는데, 현재 입학자가 많지 않아 유지가 어려워 지고있습니다. 5월에도 2학기에 들어올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아오니, 김은경 조교(249-2179)로 연락하시면 정보를 구하실 수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다음 강좌 예고
6월 12일(금) 이은진, 현대 마산의 4대 민중항쟁 (1949년 10월, 1960년 3-4월, 1979년 10월, 1987년 6월)
7월 10일(금) 조병옥, 벌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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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사람이 나쁜 말인가?

교양 2009. 3. 19. 14:01
며칠전에 동료 교수님들과 같이 모인 자리에서 디오게네스가 개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는 실은 코스모폴리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을 언급한 일이 있다.  그냥 재미로 한말이었는데, 곧 이어서 비슷한 시기의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에 양자라는 사람이 사람과 개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말을 했다는 것을 들었다.  양자는 개가 사람을 알아보지않는다고 투덜대는 사람에서, 사람이 바뀌었으니, 알아보지 않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개도 모습이 바뀌면 사람이 알아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디오게네스와 양자가 꼭 같은 맥락에서 얘기했다고 볼수는 없으나, 아무튼 사람들은 예전에 사람과 개를 가까이 살면서 서로간에 비교를 많이 했다는 점을 알수 있다.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을 불신하여 시니시즘을 원류로 분류되는 사람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로 말을 통해 사람들의 편견을 깨닫게 하려고 시도한 사람이다.  시니는 개라는 뜻을 갖고있다.  그럴정도로 개와 사람의 비교를 매우 중요한 사유방식의 하나로 삼은 사람이라고 볼수 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며, 진실된 (또는 제대로 된) 사람을 찾으려고 한 모양이다.

전에 학교 동료교수님이 번역하신 개의 문화사에 대한 서양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서는 주로 사냥개를 통한 귀족층이 자신들의 위상을 어떻게 제고시켰는가를 분석한 책으로 기억한다.  유럽에서는 귀족만이 사냥할 권리를 가졌고, 이때 사냥개를 데리고 다녔으므로 이런 분석이 나왔을 것 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내가 2002-3년에 독일 오스나부룩에 머물렀을 때에 관찰한 바에 따르면, 독일인들이 기르는개는 우리가 애완용을 기르는 것과는 달리 사냥개 스타일을 많이 기르는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서양의 전통에서 해석한 개를 기르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귀족의 상징이었던 개를 이제는 일반사람들도 기를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

2003년에 우연한 이웃에서 개를 낳았다고 맡겨서 애완용 개를 기르게 되었는데, 실은 전에는 애완용 개를 기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주로 인간적인 접촉이 미숙한 사람들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개보다는 사람을 더돌보는 것이 좋지, 돈있는 사람들의 사치라고 생각하였다.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애완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과연 사람도 사랑할 수있을까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기르려고 보니, 난감하였다.  내가 과연 개와 어떻게 한집에서 같이 자고 먹고, 얘기하며 지낼 수있을까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도움말을 해주기를 그냥 사람들에게 말하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지내라고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정신병자도 아닌데 사람이 아닌 개에게 사람을 대하듯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과연 개가 내 말을 알아들을까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지내놓고 보니, 개와 사람사이에 상당한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이에 따라 서로 이해하면 지낼 수 있다는 점을 많이 깨닫고 있다. 또 오줌 가리는 것, 밥을 주는 것, 바깥에 산책나가는 것, 아픈 것, 배고픈 것,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잘해주는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마치 어린 아이를 기르는 것 같과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말을 정확하게 알듣지는 못해도, 말의 결을 알아듣는지, 자신에 대해 기분 나쁜 얘기를 하면 곧 숨어버리려고 한다.  또 누구에게 잘못해서 혼 날것 같으면,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가서 안길려고 한다(보호받으려고 한다).  어찌 보면 사람보다도 더 정답게 의사소통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은 여러가지 위선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지능이 낮고 힘이 약한 개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때로는 자신의 불만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도 하여 아무튼 의사소통을 비교적 순진하게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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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를 받는 것은 사회관계를 표현한다.

교양 2008. 11. 14. 11:04
옛날 사람들은 이자를 받았을까?
친한 사람들끼리는 이자를 받지 않았고, 잘 모르르는 사람에게서는 이자를 받았다.  물론 아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국가가 법률적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면 돈을 빌려 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이자를 받는 것이 적정한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분명한 개념은 없다.  물론 경제학에서는 돈의 수요 공급과, 미래에의 위험 정도에 따라 이자율이 결정된다고 한다.  즉 돈을 쓸 사람과 빌려줄 돈이 대기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상대방의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BC3000-BC2000년경에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에는 1/6을 이자로 주라고 했으므로 따진다면 연 17%정도의 이자율이다.  이 정도의 이자가 낮은 수준인가 아니면 높은 수준인가는 당시의 물건이 대개 자연물이거나, 노동집약적인 물건일 가능성 따라서 자본을 가지고도 몫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 그리고 당시 바빌론의 국가가 신용보증을 제대로 해줄 수 있어 위험 발생 가능성이 낮았자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채대부가 연간 60%로 묶어 놓은 것을 놓고 높으니, 낮으니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돈이 궁한 사람들이 많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은 적고, 또한 돈이 떼일 염려가 높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10월 26일(일)에 성당에 가서 독서를 들으니, 탈출기22:20-26에서 "너희가 나의 백성에게, 너희곁에 사는 가난한 이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그에게 채권을자처럼 행세해서도 안되고, 이자를 물려서도 안된다.  너희가 이웃의 겉옷을 담보로 잡았으면, 해가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금융위기가 진행중이고, 점차 이자율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새롭게 들렸다.  탈출기의 시기와 장소는 함무라비의 법전이 나온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상호간에 이자를 받지 않는가?  정답은 받지 않는다고 맞다.  유대인들은 상호간에는 이자를 받지 않고,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고리의 이자를 받는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 유대인의 모습은 외부인에 대한 것에서 나오는 문제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즉 외부인과 내부인의 구분이 분명한 것이 이자제도이다.  내부인은 믿을 수 있고, 설사 이자를 갚지 못해도, 이웃이나 가족이 갚아주든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궁극적으로 갚을 것을 전제하고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상호간에 이자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인들에 대해서는 단기간의 관계만이 형성되고, 믿을 수 없기때문에 엄격한 이자를 적용하였을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나의 뿌리가 되므로, 이곳에서는 상호간의 의존이 아주 심하고, 설사 화폐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형태로서 묶여있고(사회적 존경, 정치적 권위, 만남), 이 속에서는 다른것에 손실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화폐적인 손실은 감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일 우리사회가 이자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1) 돈의 수급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 외에도, (2) 신용관계를 국가가 보증하는 제도, (3) 한국내의 거주자들간의 공동체적인 의존을 높이고, (4) 화폐적인 거래 외에도 거래의 방식(존경, 만남, 권위)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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