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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14 인접 국가와 사이 좋은 나라는 없는가?

공산당지배와 강남지배

시사/베트남 2009. 9. 15. 22:07

필자가 1997년 7월에 베트남 호지민 시 근교의 송베에 소재한 open university의 캠퍼스에 한달간 머무르는 기간중인 7월 20일에 베트남의 국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당시 선거는 아마도 조국인민전선에서 후보자를 국회의원 정수의 1.5배를 내놓고, 이를 대상으로 주민들이 중선거구제 정도의 투표를 실시하는 형태이었다.  투표권자는 18세이상이고, 피선거권은 21세였다.  물론 스스로 후보자가 되는 방법도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국에서 아마도 5명미만이 당선된다고 한다.  조국인민전선은 공산당이 주도하면, 대중조직들(여성동맹, 노동조합 등)이 공동으로운영하는 조직이다.  이들 조직은 물론 공산당원 뿐만 아니라, 비공산당원들의 후보자 추천도 받아서 후보자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역시 공산당원이 아닌 사람이 당선될 비율은 전체 국회의원 중에 10% 미만이다.  1997년에 당시의 국회의장은 비공산당원의 비율을 20%정도까지높이는 방안을 강구한다고 말했지만, 그후 5년마다 실시되느 선거를 보면(2002년, 2007년 5월 20일) 오히려 비공산당원의 비율은 줄어들었다.  공산당원들의 국회의원 진출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전체 인구의 3% 만이 공산당원이면서, 이들이 나머지 97%에 해당하는 비공산당원들에게 국회의원자리를 주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북한이 전 인구의 10% 정도, 중국이 7% 정도가 공산당원이라고 한다면,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다. 그 대신, 제도상으로는 조국인민전선이 추천하지 않고 스스로 자천하여 후보자가 되어 유권자가 선출한 국회의원이 1명이 있고, 비공산당원의 비율도 7%정도는 되므로, 한편으로는 중국보다는 개방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원의 비율은 더 높고, 그 대신 공산당원 끼리의 경쟁을 강화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 같다.  베트남은 또한 국회, 그리고 성단위, 그리고 아래도 2개의 하부 지방단위에서도 선거를 통해 의원을 선출하고 이들이 다시 인민위원회( 즉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제도이므로, 중국보다는 더 민주적인 선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도 끝자리가 2. 7자가 들어가는 해 12월에 대통령선거가 행해진다.  중국도 바로그해에 아마도 10월경에 공산당의 정권교체가 발생한다.  베트남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된다.  한국, 중국, 베트남 모두 5년마다 선거가 행해지는 주기를 갖고 있다.  시기는 베트남이 5월 또는 7월에 중국이 10월에 한국이 12월에 선거가 행해진다.  국제적인 선거를 통한 정권의 교체가 강대국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나라로 성향이 바뀌는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한국의 선거는 중국의 영향을 받을 가능서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2007년 12월 선거가 미국 부시의 강경노선을 본받은 정당한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선되었지만, 미국의 2008년 하반기의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당선되어 한국인이 선택한 정당의 성향과 어긋나 버렸다.  이어서 일본은 최근에 민주당으로 정권을 바꿈으로써 미국의 정권교체와 보조를 맞추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경우에 시장사회주의 체제로 넘어가면서도, 정치면에서는 끝까지 공산주의 일당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공산당 간부들이 그 혜택을 독점하고있다고 학자들은 분석하고있다.  따라서 사실상, 공산주의 시러이나, 그 이후의 시기에 지속적으로 국가 지배체제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국회의원이나 정부의 관료들을 보면, 대개 강남거주자들이 많고, 대통령을 비롯하여 위장전입을 통하여 강남으로 몰려 들었다.  강남의 인구의 대한민국 전체인구의 1%정도가 된다면(48만명정도?), 나는 대한 민국이 사실상 1%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 살든, 살지 않든, 실제로거주하든 위장으로 거주하든 강남에서 살아야만 지배층이 될수가 있기에 그렇다.  독일이나, 영국의 경우에는 부자는 경제를 지배하고 운영하고, 경제적 약자는 정치를 지배하고 운영하고 하는 분업체제를 통해서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보면, 어느 나라의 정치가 더 사회통합과 안정에 유리한가를 판정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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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역사는 애초에 베트남 북부가 중국의 남부지역과 통합된 역사를 지녔다가 10세기 경에 중국에 대해 하롱베이 지역에서 격퇴한 후에 독립을 쟁취한다.  그러나 이후 원나라의 침입, 그리고 다시 명나라 초기에 침입을 당하고 이를 격퇴한 후에 계속하여 독립을 유지한 나라를 갖고 있다.  물론 프랑스에 의해 19세기 중반에 식민지로 떨어지고, 이후 2차 세계대전중에 일시적으로 일본에 의해 침입을 당하고 2차대전 후에는 독자적으로 프랑스에 대항하여 독립을 당성한다.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곧 1955년부터 남부 베트남에서는 미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자체적으로 독립운동이 발생하고, 이를 북베트남이 도우면서 소위 베트남 전쟁이 벌어진다.  이는 결국 1973년의 미국 닉슨대통령의 휴전협정 조인, 그리고 미군의 철수, 이에 더하여, 1975년에는 북부 베트남 군에 의해 결국 남부 베트님은 함락되고 만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을 이긴 것이다.  이후에도 남베트남 측의 주장에 의하면 남부 베트남에 대해 보복조치가 없었고, 단 한명도 전범으로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전쟁 종사자들에(경찰과 군인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 대해서는 어느 섬이나, 산 속으로 보내 강제 노동을 통해 교화작업을 벌인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3-4년정도씩을 일을 한 것 같다. 이 와중에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에 중국인들이 탈출하고, 이것이 중국측과 외교적인 문제를 야기하여 결국 중국은 분베트남을 침략하게 된다.  당시 중국은 모택동이 1976년에 죽고, 등소평이 개혁정책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와중에 있었다.  아마도 대외적인 유화정책을 취하기에는 내부적으로 너무 취약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략하여 친 베트남 정부를 세우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중국은 베트남을 침략하게된다.

베트남은 한편으로 중국의 영향을 깊게 받아서, 베트남의 왕조들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통치체제를 정비해 나간 나라이고, 과거시험을 치뤄 관료를 등장시킨 나라이며,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지금도 베트남 문자는 프랑스 선교사가 19시기후반에 만들었다는 알파벳을 이용한 문자를 사용하지만, 상당수의 문자를 읽는 언어는 한자음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북부 베트남의 경우에는 민족주의적 의식이 강한 것이 중국의 유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남부 베트남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캄보디아, 남방계의 계통을 이어서인지 개방적이고, 열대지방 사람들의 형태가 많이 나타난다.  지도를  보념 중국의 하이난 섬은 바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나, 하노이의 직접 연결되는 항구인 하이퐁을 가로 막고 있다.  그리고 서사군도와 남사군도가 바로 베트남의 앞바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지도에는 베트남 영토로 중국의 지도에는 중국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그럴 정도로 지금도 베트남과 중국은 서로 앙숙인 관계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에서는 항상 베트남이 약자로서 당하는 입장에 있었고, 중국을 격퇴하면, 대국을 격퇴했다는 자부심을 니끼고 있지만, 반면에 베트남은 인접국인 라오스나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강대국의 역할을 한다.  베트남은 인구 87백만 정도의 인구 강국이다. 남북한을 합친 인구보다도 많은 강국이다.  현재 순수 소비 능력을 기준으로 한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3천불을 넘어섰다.  물론 순수 국내 총생산은 1천불 미만이지만, 실질적인 삶의 경제적 수준으 높다는 말이다.  1979년에 베트남은 인근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군사를 파견하여 준둔시키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만들어 냈다. 결국 동구권과 러시아의 몰락,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의 추세에 맞추어 1986년에 개혁정책을 시작하였고, 이어서 캄보디아에서도 군대를 철수하게된다,  이는 소련이 그들의 연방해체국에서,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시점과 같은 시기이다.

베트남의 인구는 베트남 전쟁을 반영하고있다.  기본적으로는 후진국 스타일인 피라밋 형태이나, 이중에서 50-70년대에 전쟁으로 군인으로 차출된 세대, 그리고 이들이 아이를 낳은 세대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승리한 후에 제대군인들이 고향에 돌아오고, 1980년대 후반에 동구와 러시아에 파견되었던 노동자들이 귀환되고, 이어서 중동지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1991년의 걸프전때 베트남에 돌아옮으로써 베트남 인구는 급속한 증가를 기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높은 실업율을 야기하고 정치 경제적인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베트남은 높은 경제성장율을 기록하여 성공적인 개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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