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기, 회상하기, 평가하기

역사 2008. 10. 14. 13:49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초등학교 카페를 만들었다.  나는 고향에서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아직 직접 만나지는 않고 있다.  몇몇 친구들은 직접 만나자고 야단이다.  그러나 실은 400여명의 졸업 동창들 중에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있었다.  다만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명칭된 일반화된 모임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자주는 아니지만, 일년에 한 두차레 정도 세네명씩 만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고 이 얘기 저애기 나누는 동창모임은 있었다.

그러나 곧 이 공식적이 카페 모임과 여기에 모이자라는 광고에 대해 주의를 주는 친구가 생겼다.  즉 모임의 성격, 식사하고 난 다음의 식비 문제, 모임이 정기적으로 회비를 걷는 문제, 동창들의 상조 범위와 상조비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능한한 편안한 모임을 가지려고 하나, 조금이라도 공식화하는 순간이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몇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사는 동네를 가 본일이 있다.  내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동네이다.  아니 내가 초등하교시절에 가본이 없던 동데를 가보았다. 

실은 누구나 자기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자기의 조그만 범위를 넘어서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공식적인 기억과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즉 남의 기억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를 서술할 경우에는 특히 심하다.  요즘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거나, 돌아아가신 아버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역사, 또는 세계사와의 흐름 속에 어디에 위치시키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 부딪치게 된다.

요즘 대학에 90년에 출생한 세대가 들어와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이 배운 한국사와 내가 배운 한국사는 방향이 일치하지않는다.  또한 사실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다.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겁이 많이 난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나의 과거를 정리해본 일도 없고, 나의 과거를 한국사나 세계사에 연결시켜 본 일도 없고, 더구나 평가해본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어느정도 사회의 프레임에 맞추어서 스스로의 행적을 고백한 것은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사의 넥스크라는 월간지에 게재된 '50대 진보의 이야기'는 내가 왜 남들의 눈에 진보의 경향을 띠게되는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한 것이고, 경남대학교에서 간행한 공부하는 이야기 중에 '삐딱 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 사회학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의 역정을 기록한 일이 있고, 영남노동운동 연구소의 잡지 연대와 실천이라는 잡지에서 1980년대 미국 LA에서 있었던 한인노동운동에 관여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왜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게 되었나를 다룬 마산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의 1시간 이상 대담 프로그램도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나의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너무 현재의 그들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시각에 부딪쳐서 내가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의 역사, 나의 역사를 융합시켜 정리해보는 시도를 해보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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