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적 자본축적

시사/중국 2009. 8. 25. 07:48
중국에서 사영기업이 발전하기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이런 자본들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누가 공장을 소유하고 설립하고 운영하게 되었을까?  오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 러시아의 경우에는 자본이 없었고, 독자적인 경영능력과 운영경험이 없었으므로, 초기에 경쟁적 시장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생소한 그래서 카오스적인 상황이 출현하였다.  반면에 중국의 경우에는 현재까지 알려지기는 매우 순조롭게 자본주의체제로 진입하고있는 것으로 판단되고있다.  그러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본이 형성되고, 경영능력과 훈련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 사회주의 역사를 보면, 지주들, 공장의 주인인 자본가들, 그리고 독자적인 노동조직을 당이나 국가 체제에 두려는 시도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얼룩져 있다.  물론 여기에 지식인들과 학생들의 부패한 관료나, 정치인에 대한 저항의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1949년직전과 직후에 일어난 노동자들의 저항, 1956년에 발생한 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이어진 대약진 운동에서의 우익에 대한 척결운동, 백화... 운동,  문화혁명, 문화혁명 기간중에 발생한 노동자들의 저항(1966-69), 주은래의 서거후에 발생한 1976년 천안문 시위, 1979-80년의 민주의 벽 사건, 1980-81년의 노동조합의 독립화 운동,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 사건 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건의 배후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노동자, 지식인, 학생들의 저항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1980년대의 중국은 기존의 협동 농장을 가족단위의 토지책임제로바꾸었고, 이에 따른 잉여노동력은 농촌에 기업을 개인이든, 집체형태, 또는 주식이나, 마을 정부와 협력하여 공장을 짓게하여 고용하게 하였다.  이 공장들은 일차적으로 농산물 가공, 그리고 도시 부근에서는 도시의 공장들에 납품하는 부품이나 재료 공장, 하청공장으로 기능하였고, 해안지대의 특수경제구 부근에서는 이 곳에 투자한 기업에 납품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당시에 국영기업들은 노동계약제, 경영자 책임제, 해고제도가 도입되어 사실상 운영이 국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서, 적자에 시달리고, 국가의 보조금에 유지되는 형태에 있었다. 또한 경영자들의 독단이 심해지고, 경영자들은 인펠레이션하에서 독점적인 정보를 이용해 사재기를 통해 투기적 이익을 보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에 대한 혜택을 높이는 각종 수당이나 물질적 공급을 인상시키는 방식을 취하였다.  기본급은 국가가 정하므로 인상시키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경영자에게 부여된 노동자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하여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시키는 정책을 취하였다.  상대적으로 국영기업의 노동자들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총공회(노동조합)에 의해 보호되는 형태였으나, 그럼에도 하강(해고)에 대한 불안이 심하였다.  그러나 직접적인 소요의 원인은 농민공과 같은 불안정한 노동계층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결국은 도시지역의 경영자들이 일차적으로 그들의 지위와 정보를 이용한 자본축적(공적 지위를 이용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아마도 관료나, 당의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국영기업의 자율화, 인플레이션, 국가의 보조금 등의 형식이 많았으므로, 정치적인 방식의 부의 축적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형태는 중국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나, 이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짐으로써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는 다른 형태의 민족 자본가의 발생이 가능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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