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임금노동자가 되다

역사 2009. 3. 18. 08:19
19세기 노동자들의 삶을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단축, 그리고 임금의 향상이라는 문명의 진보를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의 진보라는 것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수의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을 곧 알 수 있다.  즉 소위 자유 노동자들 또는 자유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이나, 당시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서술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귀족이나 지주계급은 아니었고, 이제 장거리 무역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기 시작한 이들, 그러면서도 봉건의 속박에서 풀려난 계층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였다.

노예들에 비해서는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일수도 있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19세기는 전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노예제도가 철폐된 시기이다.  물론 프랑스는 조금 일찍, 미국은 남북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조선은 갑오경장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예가 조선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해체되고 있었고, 미국의 경우에도 이미 19세기에 접어들면 아프리카에서 들여오는 노예의 수도 격감하고, 그 값도 비싸진 상태에 있게 된다.  따라서 노예제도의 폐지와 별도로 실질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노예제도는 존속하기 어려워진 상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사건을 이해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노동시간의 역사에서 독자들을 혼란시키는 것은 중세시대나, 원시사회가 근대 문명의 발전단계보다 훨씬 적은 시간의 노동과 풍족한 삶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것이다.  짧은 근대의 관점에서 보면 노예 상태에서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해가 뜨면 일하기 시작하고, 하가질 때까지 일하고, 겨울에는 초롱불을 켜놓고 적어도 15분씩은 추가로 일하는 상태가 근대 초기의 모습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는 19세기 초에 들어서서 하루 12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노동자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19세기 초 이전에는 12시간 노동이 대부분이었고, 19세기 초에 일부 선진적인 자각을 가진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제한을 말할 때에도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의 상태에서 표현된 바와 같이 부녀자, 아동 가릴 것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것이ㅏ.

가장 심한 착취가 일어나고, 가장 일찍 근대 공장이 발달한 영국에서 비로서 정책적으로 노동자의 재생산을 위협하는 부녀자 노동, 아동 노동에 대한 규제를 시작한 것이 12시간 노동제의 도입니다.  아이를 낳고 기를 새도 없는 부녀자, 어릴 때부터 공장에 들어와 10살이 넘으면 늙어버려 생식 능력이 사라져 버리는 아이들을 두고는 건강한 노동자를 다시 생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사실상 말로만 자유노동자이지, 실은 노예의 특징과 아주 유사한 것이었다.  노예제도가 유지될 수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도, 아무리 쾌적하고 일생이 보장되는 삶을 누린다해도 노예들은 자신들의 희망이 없었고, 결혼의 자유도 없었고, 그래서 가능하면 자신의 일대에서 이승의 고통이 종식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노동시간은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루임금제도를 채택한 곳에서는 하루에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일을 시키는 것만이 고용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태양이 오래 떠서 오랫동안 일을 시킬 수있는 여름에는 하루 임금제도를 채택하고, 낮이 짧은 겨울에는 성과급제를 실시하였다.  오늘날 5월 1일이 노동절이 된 것은 미국에서 1886년(?)에 8시간 노동제를 주창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하였다.  현대인들은 일에 중독되어 사는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주로 미국, 영국의 청교도들이 만들어낸 관습이다.  일어나서 해가 떠 있을 동안에는 일을 하는 것은 청교도들에게는 하나의 하나님의 소명처럼 여겼다.

현대인들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일을 많이 하고,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이 일을 적게하는 사회라고 미국의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사회를 관찰하고 주장한다.  아마도 미국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분명히 과거에 비해서는 노동에 대한 관념과 여가에 관념이 서로 경쟁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조선은 아직 19세기에 그다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발달되어 있지 못했다.  일본에 지난해 말에 방문해서 오오다와라 성의 박물관에 가보니, 일본인들은 에도시대에 휴대용 해시계같은 것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시간관념이 일찍 발달한 것을 알 수있다.  우리의 경우에 조선시간 조정의 시간관념은 아직 아침부터 일찍 3-4시간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오락으로 보낸 것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현재의 근무체제와 조선시대의 관료들, 아니면 공식 기관의 근무체제는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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