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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중성

역사/1900-1919 2010. 2. 13. 21:19
최근에 토요타 사태를 바라보면서 나는 일본인들을 특징짓는 이중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일본의 기업들은 소비자가 흠이 있다고 가져온 물건에 대해 절대로 안된다고 거절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곧 고쳐주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대개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고치게 된다.  그리고 하나 하나 비용을 받거나, 따져서 고쳐주게 된다.  일본인을 말할 때에는 인간은 누구나 그런 면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는 것과 안에서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말한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가서 겪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친절한 미소이면서 동시에 돌아서면 아주 차거운 표정들이다.  아무도 걸들떠 보지도 않으면서도, 직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일본의 근대사중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건을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 만몽, 그리고 시베리아 연해주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벌린 시베리아 출병이다.  이는 1918년에 이루어지는데 중요한 것은 외교에서의 이중전략이 시작된 시점으로 친다는 점이다.  이때 이중전략이라는 것은 이미 한국의 경우에는 1904-5년의 러일전쟁시기에 일본이 대한제국에 대해 취했던 이중적인 정책에서 드러난 것이기는 하지만, 서구 열강들에게는 1918년 러시아 출병을 통해 드러난다.  즉 미국의 랜싱국무부 장관과 미국 주재일 일본대사 사이에 체결된 중국 문제에 대한 일본의 이권보장을 보호받는 조약(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문호개방 조약이라고도 표현한다)을 말한다.  러시아와는 이미 1908년에 만몽지역에서의 일본의 이권을 보장받았고, 러시아 혁명중에는 러시아 주재 일본 대사와 만주철도회사를 통해서 러시아 혁명상황의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통해 1918년의 러시아 출병, 그리고 다른 서구열강들은 모두 러시아에서 철수한 후에도 남아서 (약 7만명) 거의 1923년정도까지 싸우다가, 곧바로 다른 나라에 앞서서 소련을 인정하는 조약을 맺는다(1926년).  이때부터 일본은 미국과도 갈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일본이 1차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에는 일본인들이 스스로 일컫듯이 일등국가가 되었다.  즉 1차세계대전후에 해군 군축을 논의하면서 미국, 영국의 톤수가 5, 그리고 일본이 3의 비율로 세번째로 강한 해군을 보유하게 된다.  이로서 일본은 소위 일등국가가 되는 것이다.

결국은 미국은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을 당하면서, 바로 그 전날에는 미국과 평화를 논하던 일본에게 당하게 된다.  이로서 일본의 이중성은 세계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일본은 대개 전쟁을 일으킨 후에 선전포고를 감행하는 관행을 지닌 것 같다.

일본의 내부를 보면 이러한 이중성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1910년대의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한 것을 보면, 일본은 처음부터 국가 지상주의를 가르치는 흔적이 역력하다.  이에 더하여 가족과 친척, 마을 사람을 가르친다.  따라서 사회성을 기를 수가 없게 된다.  이는 일본의 교육에서도 경제학이나 국제관계학 같은 것을 배우지 못함으로써,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오로지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식으로 배우게 된다.  물론 이와 배치되는 경향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설사 해외에서 배운 사람들도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는 대개 국가의 중요성을 개인보다 더 강조하고, 사회성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이 소위 일등국민이 된 후에도 바뀌지 않은 채 지금껏 내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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