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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마산에서 발행된 신문들: 마산시보, 마산신보, 마산신문

역사/1900-1919 2010. 2. 4. 10:48

한반도에서 신문의 발행은 자본금, 설비, 인쇄할 수 있는 식자와 채자 기술인력의 부족, 신문에 대한 정부의 공적인 방해와 구독자의 간섭, 신문발행의 필요성을 느끼는 계층의 존재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애초에는 정부의 홍보물 성격의 신문이 발간되었고, 제대로된 신문은 아무래도 독립신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신문이라는 것은 문자화된 뉴스를 의미하였고, 지식의 습득, 정부 방침, 개인사의 안내, 상품광고 등의 목적으로 발간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마산의 경우에는 일본인들이 거류하면서 이들이 만든 신문이 마산에서 발간된 신문의 시초로 볼 수 있다.  박용규, 1998, "구한말 1881-1910 지방신문에 관한 연구"(한국언론정보학보, 가을, 11호)에 따르면 부산체류 일본인들이 발간한 신문이 1881년 12월에 [조선신보]를 발간한 것이 최초의 신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부산에는 2천여명의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이 신문을 발간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일본인의 경우에는 신문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제도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당시의 조선인들은 신문이라는 정보 매체 방식을 제대로 받아들일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산의 조선신보는 중간에 발간을 중단하고, 다시 1894년 11월에 발간되는 데, 조선시보로서 이는 일본 규슈 구마모토 현 사람들, 이들은 단지 조선반도와 가까와서 많이 이주했다기 보다는 한반도 침략을 선도했던 세력들인 낭인 침략세력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의 신문이 조선의 침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일문에서는 약간의 한인 폄하 발언이 실리지만, 한문혼용체에서는 근대화가 중요하다는 정도의 글을 싣는 것으로 근대화와 침략이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젝트임을 드러냈다.

"마산에서는 1905년 월 6회 발행의 마산시보가 창간되어, 1906년 초에는 격일간으로 발전했지만, 곧 없어지고, 결국 1908년 10월에 마산시보가 창간되게 되었다"(박용규, 1998: 125).  즉 1905년-1906년 사이에 잠시, 그리고 1908년에 마산시보가 발간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1910년도에는 841부가 발간된 것으로 조선총독부 통계년보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마산에 체류중인 일본인 거류인(민간)만 생각한다면 많은 부수를 발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마산신보로 기록되어 있다.  1909년 10월에 진주에서 창간된 경남일보 창간호(10월 15일자)에는 마산신문 사장 鳥越圓次郞이 축사를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1908년이후에 발간된 것은 사실인데, 그 제호는 마산시보, 마산신보, 마산신문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확실치 않다.

신문의 발간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재정, 구독시스템, 수금시스템, 취재 등의 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일 일본인 들이 마산에서 발간했다면, 인쇄기와 식자와 채자공, 기자, 우편배달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아쉽게도 아직 마산의 한국인들은 신문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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