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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칭이 나오기 위해서는 100년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19세기 2009. 6. 29. 10:53

일인칭과 이인칭의 세상에서 3인칭의 세상으로의 변화는 객관적인 세계관의 변화에 훨씬 뒤늦게 나타났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그리고 나와 이웃하고 있는 면접적으로 또는 열연과 지연과 같은 아주 친밀한 이들과 같이 살아가던 세상에서 천하의 대국이라고 믿었고, 우리가 그토록 작은 중화라고 자처하면서까지 중국화되었던 그러한 이념과 세계가 무너지는 사건은 이미 1840년에 결정적으로 발생하였다.  실은 그 이전에 이미 발생하였다.  우리의 경우에도, 임진왜란을 통해 우리가 무시하였던 왜에 의해 굴욕과 멸시를 당했고, 서학이나 가톨릭을 통해 혼란을 겪었고, 19세기 접어들면, 서양의 무력 함대들에 의해 굴욕이 예정되어 있었다.  서적을 통해, 여행을 통해 서양의 사정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조선의 조정정치는 세도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그저 남을 탓하기에 급급하고, 세계의 변화를 쭟지는 못했다.

내부적으로도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백성들 내부의 평등의식을 높아졌고, 기득권층이 외부 세력에 의해 힘없이 무너지자, 이들의 권위는 사라져갔다.  전쟁기에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도망가기에 바쁜 이들이 사회적인 존경과 지배의 정당성을 유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경제적인 부와 이를 이용한 관직의 매입이 가능해진 시기였다.  백성만이 아니라, 조선의 지배층 역시 정당성 보다는 이기적인 부의 축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이시기는 다른 면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이 돈앞에서 평등해진 시기였다.  신분의식은 사라져갔고, 그저 재화, 그리고 재화를 벌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재화는 한편으로 매우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모든 실력이 간단한 원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화의 범위가 넓어지고, 재화를 벌기 위해서는 다양사람들이 연결되어야 하는 시기, 객관적인 세상도 상품의 고리를 통해 확산되는 시기가 되자, 세계관 자체의 확산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되었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도 알아야 되는 시기, 즉 주체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과거에는 그저 누구의 자손, 어느 마을 사람이었으면 되었으나, 이제는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 어느 정도의 돈벌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시공간이 확산되고 압축되는 시기, 그리고 한반도의 왕조가 멸망한 시기에서야 비로서 자아와 주체의 싹이 텄다고 말하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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