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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道 西氣?

역사/1900-1919 2010. 1. 22. 10:27
서양의 물건만 사용하고, 정신은 빼앗기지 않는다.  나는 1989-90년에 국민경제제도 연구원에 근무하면서, 과소비, 금융실명제, 토지 공개념 등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한 토론회에서 젊은이들의 서양물건 소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을 소비하고 있고, 그것이 나의 취향이나, 감각에 맞기에 그런 것이지. 당위론적인 것은 아니었다.  또한 혹자는 마치 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것도 틀린 것이다.  고무신은 마산의 경우에는 개항이후에도 아직 주민들이 신지 않았고, 적어도 1910년경까지는 대개는 짚신을 신고 다녔던 점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짚신을 신으려면, 대개는 4시간 걷는 거리에 한컬레를 사용하였으니, 바깥 나들이 하지 않는 경우에는 나무신발이나, 맨발로 다녔을 것이다.  차라리 맨발로 다니는 것이 전통적이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1900년대 초반은 맥주, 커피, 설탕, 와인 등 입맛을 바꾸는 음료들이 등장하였고, 1910년경정도가 되면, 서울에서는 영화관도 등장한다.  옷감도 이제는 영국산이나 일본산 면제품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옷의 혁명이 진행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 옷감을 이용한 의복이 발달한 것은 아니었고, 더구나 속옷이나 양말은 도입은 20-30년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경험 물건들에 대해 일본은 대한제국보다는 적어도 30년가량 일찍 물건을 모방하야 제조하려 시도하였고, 이에 성공하였다.  현재 일본에 가면, 유명한 맥주, 커피, 비프스테익 등이 존재하고 그 품질도 우수하다는 점을 알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이러한 모방의 역량이 사회적으로 부족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박은식은 통사에서 사회적 활력의 부족을 탓하고 있다. 이점은 이미, 당시를 관찰한 외국인들의 기록에서도 자주 아주 기분나쁘게 등장한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 이유는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회의 활력이란 사회의 이동가능성, 자시 생애에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가 인정해 주보 보상해 줄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활력은 오로지 왕조 일가, 양반일부 세력, 그리고 상인이나 전문가 세력에게만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득권을 수호하거나, 새로운 문물의 도입에서 상인적인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뿐이었다. 따라서 진취적인 세력이나 모험적인 세력을 아니었다.  이는 일본과 다른 점이다.  일본이 봉건적인 제도였다고하지만, 적어도, 몰락하는 사무라이들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정책을 취한 점이 다르다고 볼 수있다.

물건과 정신을 구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프랑스에서는 카페에서 1789년의 혁명이 발생하였다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카페는 퇴폐의 장소로 여겨졌고, 토론의 장소로 여겨지지 않았다. 우리의 대부분의 사회운동의 발생은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그것도 전통적인 시장이다.  시장과 카페는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토론의 형식과 내용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서양의 카페에서는 토론이 이루어 졌다면, 우리의 카페에서는 마담과의 감각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인쇄술도 책자나, 신문 잡지의 발간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물론 19세기 초반까지 전통인쇄술에 의해 소설 잡지류가 발간되었다고는 하나, 19세기 말기의 신문의 발간이나, 근대적인 책자의 발간은 서구의 인쇄기기에 의해 이루어 졌다.  서구의 인쇄기기는 우선, 성경의 전파를 가져왔고, 조선정부의 정책홍보로 이어졌고, 독립협회의 신문 정도에 이르러서야, 근대적인 신문이 등장하여 개개인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물질과 형식은 긴밀히 제도나 사회적 관행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리의 토양에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서, 그대로 이식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점은 서구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중요한 가치에 합의하고, 이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항상 사회적인 의제가 발생할때마다, 우리는 서구의 예를 좇는데, 급급하다.  세종시의 행정복합 도시 문제를 위해 독일의 본을 간다고 한다.  갔다오면 분명이 보는 이마다 다른 의견을 낼 것이다.  독일은 기본적으로 수도를 통합하려했고,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본은 도시 재활성화에 성공하였다.  우리의 문제는 균형발전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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