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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7 대량소비를 즐기는 동안 금융자본의 사기는 배태되었다.
  2. 2010.02.25 말과 폭력이 싸울 때

대량소비를 즐기는 동안 금융자본의 사기는 배태되었다.

역사/1920-29 2010. 2. 27. 11:32

1920년대 현대인의 대량소비체제가 시작된 시기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가 만들어 지고, 서민들의 오락을 위한 영화, 라디오, 프로게임을 향유하고, 서민들을 향한 광고 공세와 노래와 춤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물론 이런 추세는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지만, 유럽의 발달된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였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군국주의적인 요소가 강하였지만, 그래도 1920년대는 소위 대정민주주의 체제를 향유하던 시기였다.

자본은 공장의 합리화과정을 통해, 표준화, 기계화, 콘베이어 벨트 라인의 도입, 분업의 발달(테일러이즘), 줄지어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방식의 도입, 과학과 기술의 도입 등이 활발하게 도입되어, 궁극적으로는 숙력공을 반 내지 저숙련공으로 대체함으로서 판매가를 낮출 수 있었다.  이느 동시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출수도 있었지만, 현재의 분석 관점에서 보면, 1차세계대전 당시의 노동자의 희생과 민족주의의 도입(민주화된 정부),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어느정도의 임금 인상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소득의 이전이 나타날 정도는 아니었고, 다만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여 소수의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보장받고, 임금의 상승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숫자로 표시하기는 어렵지만, 그저 상위 20% 이내에 속하는 노동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다고 볼수 있다.

기업간 결합과 카르텔 등으로 소수의 기업들이 경제를 장악하고, 독점적인 이윤을 누릴수 있었지만, 과잉축적된 자본은 이를 정상적으로 배출시킬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갖고 있지는 못했다.  이는 이미 초기 진입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대량생산체제에  그 원인을 찾을수도있다.  광고의 등장이나, 1930년대에 본격화된 군수산업의 발달은 하나의 자본축적의 방편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과잉축적된 자본은 결국 금융시장으로 그 출구를 찾아 자산거품이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당시에 전쟁으로 황폐화된 유럽국가들에 자본 공급을 하고, 증권시장과 같은 금융시장의 발달에 의해 탈출구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금융 공항의 싹은 이미 자라고 있었다.  금융공항은 실은 자산거품 만이 아니라, 사기에 기반하고 있었다.  최근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금융에 대한 거래 규제가 없었고, 회사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서도 대출을 하던 은행들, 투자자들은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데도, 배당만 지속적으로 지급되면 아무런 정보도 요구하지 않던 관행이 결국 금융공항을 발생시키는데 기여한다.  금융공항은 단순히 금융에서 그치는 것이 아리라, 1930년대를 일관되게 영향을 주었고, 결국은 전쟁에 의해 그 해결책을 찾게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1920년대의 공업화, 증대하는 소득, 일반 대중들의 소비 수준의 향상이 민주주의로 귀착하기 보다는 파시즘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특히 공업이 발달한 이태리에서 시작하여, 농업이 기반이나 공업이 발전하고 있던 신생국가들은 동유럽을 통해 다시 공업 선진국 독일로 이전되었다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경제성장 만으로는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될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일러준다.


참고문헌
Daniel Chirot, 1977, "파시즘과 세계경제," 서동만 편역, 1983, 파시즘 연구 (거름): 145-169
Ben S. Bernanke and Martin L. Parkinson, 1991, "Procyclical Labor Productivity and Competing Theories of the Business Cycle: Some Evidence from Interwar US Manufacturing Industrie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9, 3: 439-459
Economist, 2007, "The match King: fraud and financial innovation," Dec.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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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폭력이 싸울 때

역사/1920-29 2010. 2. 25. 18:51
1920년대는 러시아에서의 볼세비키 정권의 수립과 동시에 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진행된 공화제의 성립이 동시에 진행된 시기였다.   유럽 대륙에서는 공장소비에트에 기초한 국가체제의 수립이라는 형식과 기존의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세력간의 경쟁이 시작되었고, 보통 일반 평등 선거권의 도입에 따른 왕정의 폐지와 새로운 공화정의 수립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어느정도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움직임과 동시에 이해하기 힘든 움직임이 파시즘의 형태로 나타났다.  왕정 복고의 움직임도 아니고, 자유민주공화정 움직임도 아닌, 그러나 동시에 민족의 영광과 인종의 우세함을 강조하고, 평등과 국가에 의한 인민에 대한 보살핌을 강조하는 정치적인 세력과 이념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파시즘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따라서 파시즘에 대해서는 지금도 우리의 현실을 평가하면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  나는 파시즘에 대해 물론 이태리의 무소리니가 1919년에 시작한 것이기는 하지만, 무소리니가 가장 많이 파시즘의 전형적인 예로서 인용되고 그의 정책을 분석하기는 하지만, 파시즘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나는 무소리니 당시에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원로 사회학자가 표현한 Filippo Turati(1857-1932)의 표현이 적절한 것 같다.  "말의 혁명에 대항한 피의 혁명"이라는 것이다.  무소리니는 합법적으로 집권을 하지만, 그가 사용한 수법은 폭력단을 조직하여 노동자 파업을 파괴하고, 민주적 집회를 공격하고, 노동자 세력이 장악한 도시에서 폭력을 일삼는 방식이었다.  최후로 1922년에 나폴리에서 3만여명이 로마로 향하면서, 내전을 두려워한 당시의 국왕이 결국 무소리니를 수상으로 임명하게 하면서 정권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아무튼 합법적인 방식으로, 또는 설득을 통한 집권이라기 보다는 폭력과 위협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이다.

그러나 폭력만으로 지배를 달성하지는 않는다.  항상 당근과 채찍의 전략이 사용된다.  나치의 경우에도 채찍과 동시에 오히려 당근을 사용하느라, 전쟁준비에 소홀하게 된다.  "나치는 노동자 정책으로써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불만의 위험성을 줄이려고 소심하게 노력하였다.  오히려 사회적 매수를 통한 착취관계의 유지가 테러행위에 의한 것보다 더욱 중요성을 지녔었다"(포이케르트, 1980: 291).  파시즘은 단순히 폭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주로 이태리에서는 대토지 소유 영주계급의 불안을 이용하였고, 독일의 나치는 중산층의 불안을 이용하였다.  "간단히 말해 나치주의는 이러한 사회적 기반 위에서 특이한 시대적 흐름을 통해 혼란에 빠진 신중산층의 지위상승운동에도 의지했다"(포이키르트, 1980: 298).   노동자계급에게도 8시간 노동제나 사회복지를 약속하고 실행함으로써 상당한 정도의 물질 기여를 하게된다.  직접적인 지원을 회피하기 위해 문화시설이나 체육시설, 도서관 등을 노동자 거주지역에 광범위하게 설립하여 노동자의 환심을 사기에 노력한다.

이에 대항하여 이태리의 그람시는 젊은 나이에 하루 아침에 혁명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시민사회적 지구전으로 들어간다. 이때 지구전이란 광범위한 연합전선, 그리고 문화적인 역량을 길르는 것이었다.  각 나라의 역사적인 상황에 근거한 역사적인 블록을 형성하고, 이를 위기에 대한 대안적 프로그램 안에 포함시켜서 헤게모니를 쟁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세를 살펴보면, 국가와 그 주변에 의한 광범위한 불법적인 탄압이 지속되고, 민주적인질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파국으로 가고 있는 경제적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야 말로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고대하는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테틀레프 포이케르트, 1980/1987, "사회의 헤게모니 구조와 파시즘," 김세균 편역, 자본주의 위기와 파시즘 (동녘): 285-304
Dahlia Sabina Elazar, 2000, "Electoral democracy, revolutionary politics and political violence: the emergency of Fascism in Italy, 1920-21",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51, 3: 46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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