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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7 중국 공산당 지배력의 원천
  2. 2009.07.08 선출되지 않은 인민 대표

중국 공산당 지배력의 원천

시사/중국 2009. 7. 17. 06:05
중국이라는 영토상 매우 광활하고, 인종이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인구로 구성된 국가를 하나의 국가체제 속에서 1949년 공산당이 지배한 이후에 성공적으로 지배해 왔다.  많은 서구의 학자들은 그들의 바람도 섞어가면서,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와해될 것으로 예언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중국이 내부에서 독립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요없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체제전환을 하면서 공산당 일당 독재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를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삼고 있다.  즉 중국의 대학에서는 철학과에서 맑스와 레닌의 공산주의 이념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이 듣지 않고 교수들에게 조차 인기가 없을 지라고 국가의 공식이념을 공산주의라라는 것으 분명하다.  그리고 중국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중국 고유의 정치적인 구호들도 여전히 국민들에게 광범위하게 바람직한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에는 물론 호금도 총서기를 화해사회 -> 화평굴기로 정했다가 반발이 심해서 접었지만, 아무튼 중국의 민족주의, 중국 공민들(시민)의 국가의존적 성향에 기대고, 한편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도덕성을 어느정도는 믿고 있다.  호금도 총리는 공산당의 대중조직인 청년단출신이라고 하고, 이를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중과의 접촉과 대중의 불만을 많이 완화시키려는 정책을 많이 내어 놓았다.  이에 반해 전임 공산당 총서기였던 강택민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등장한 인물답게 어느정도 강경한 노선을 유지하는 것 같다.  중국 내에서도 모택동 이후에 문화혁명의 상처를 딪고 등장한 등소평은 서민적인 인기가 높았으나, 강택민은 강경론자인 것으로 비춰지느지, 인기가 별로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 국민들은 구체적인 정책이나,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중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경우는 많아지고 있으나, 전체적인 국가 체제 자체를 넘어서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최근 일어나는 티베트와 위그르의 분리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한 중국 이론가는 "들어올 때는 맘대로 들어왔어도, 나갈 때는 맘대로 못나간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듣기에 상당히 섬뜩한 느낌을 받게 했다.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되면, 경제적인 보상에 대한 분석을 보면, 1990년대 후반에 북경의 거주자를 대상으로 했을때 대개 10%정도 보상이 높다고는결과가 나온바 있다(홍콩의 한 대학에서 나온 연구 결과).  물론 여기에는 공식적인 보상외의 것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비공식적인 물질적 보상(부정 부패)은 포함되지 않았다.  혹자는 농촌의 경우에는 공산당원들이 더 많은 정치적인 이익을 갖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튼 이런 결과조차도 만일 자신의 능력과 경제적인 배경을 고려에 넣는다면, 공산당의 경제적 잇점은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즉 공산당원이 갖는 경제적인 잇점은 자신의 능력과 사회경제적 배경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점이다.  실은 공산당원이 되는 것은 단순하지는 않다. 즉 3년간 공산당에 대한 헌신, 직장에서의 능력, 타인과의 관계등을 관찰하고, 이를 다시 비공산당원이 포함된 회의에서 검토하고 수습공산당원이 된 다음에 1년간의 실적을 판단하여 공산당원이 되는 절차를 거치므로, 일단 공산당원이 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스크린 과정을 거쳤다고 보면된다.  물론 최근에는 기업가들, 촌민위원, 거민위원들을 대상으로 공산당원을 만드는 운동을 펼치기도 하고, 더욱 선진적인 사람들을 공산당원으로 가입시키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공산당원을 만드는지에 대해서 밝혀진 것은 없다.  과거에 비해서는 공산당 되는 절차가 약화된 것 같고, 과거에 비해서 공산당원이 되려는 자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중국에서 공산당원의 수는 전체 인구로 보면 5-7%수준이고 만일 하나의 조직 수준에서 보면 10%를 넘어서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직에는 공산당 서기가 있다.  이는 말단 촌이나 가도의 경우에도 공산당 조직이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공산당 조직은 단순히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다시 이 내부에 각종 위원회, 감찰위, 방계조직으로 부녀회, 청년단, 방어조직 등이 존재한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보면 기층까지내려가 있고, 복합적으로 연령별, 기능별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수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과거에 박정희의 민주공화당과 전두환의 민정당이 북한의 공산당에 맞서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시도한 일이 있다.  아마도 이런 전체주의적인 조직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공산당원은 하나의 정치이념적 조직이지만(국민을 영도하는 조직. 영도란 국민들의 행동과 생각을 지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계급성, 이념성과 동시에 신분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계급성은 이제 노동자를 넘어서는 중국의 경제적 지배층도 포함하는 조직이고, 신분성은 과거를 기반으로 공산당원을 입당시키므로, 그 기준에서 부모가 공산당원일 경우, 입당될 가능성이 높은 조직이다.  신분성은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이룰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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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은 인민 대표

시사/중국 2009. 7. 8. 14:38

세계 여러나라의 통치구조를 보면, 나라마다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보게 된다. 중국의 경우는 공산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특성을 지닌 일당 독재의 스타일이다.  즉 공산당 주석(현재는 공산당 총서기)가 매 5년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와 같은 해의 10월) 열리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공산당 총서기, 공산당 정치국상무위원 (9명), 공산당 정치국원 (25명)의  순서로 위로부터아래까지의 조직의 위 아래가 정해진다.  그리고 나서, 정부에 해당하는 곳의 국가 대표 주석직과 군을 장악하는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직을 장악하게 된다.  현재는 이 세가지 직책을 장악한 사람이 호금도(후진타오)이다.  후진타오는 2002년-2004년에 걸쳐 차례로 세가지 직책을 장악하고 지난 2007년에 다시 재선에 성공하여 현재 2기 5년을 이끌고 있다.  대개 중국은 70세 이전에 정년이 되기전에 자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번 2012년의 전당대회(18차)에는 물러 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중국은 5년단위로 최고지도부가 정해지면, 이전의 강택민, 등소평 등의 예에서 보듯이 대개 10년정도 통치한다고 보면된다.

공산당 총서기는 실질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고 보면된다.  따라서 이번 위구르 시위와 뒤이은 한족과 회족 사이의 폭력 대결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취소하고 국내로 들어온다고 보도되었다.  즉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위구르 사태는 국가 대표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와 정치국을 소집할 정도의 중대 사태로 보고 있다.  이는 아마도 호금도 총서기가 중국 정치의 취약점인 통일과 통합을 유지하게 위해 노력해 왔지만, 현재 고위급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개는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국무원 총리가 담당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기 때문이다.  즉 공산당 총서기는 국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할 권한이  별로 없어서 기껏해야, 상징적인 도덕적인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위그루 사태는 국무원 총리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권력체제의 특성은 또한 미국의 한 학자가 표현했듯이 "분절적 권위주의"로 특징지어 진다.  즉 호금도 총서기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정군간, 그리고 지방과 정부, 그리고 내부 파벌간의 분절적인 권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듯보면, 분절적이라는 것은 업무 분장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말로 하면 상호간에 업무 조정이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대개 각 부서별로 위원회 격인 소조가 구성되어 업무를 처리하는 특성이 있고, 공산당 내부에는 정치적인 파벌들이 형성되어 있어 이들간의 철저한 집단지도체제 또는 나뉘기에 의한 분담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는 전총서기였던 강택민의 상해파, 그리고 현 총서기인 호금도의 공청단파, 그리고 과거 혁명 선세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태자당의 3개 파가 균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는 일반적인 원칙만 중앙에서 내리면, 지방은 구체적을 집행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하다고 보면된다.

그러나 파벌의 형성을 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즉 상해파라 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상해출신, 상해에 소재한 곳의 학교를 나왔을 것으로 예상하나, 중국에서 상해파란 연줄관계가 아니라, 강택민이 상해에서 근무할 당시에 맺은 업무상의 연줄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연줄이란 우리가 보기보다는 연고보다는 업무상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연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차이를 중국과 한국의 가족구조의 차이에서 보는 학자도 있다.  즉 한국은 장자 상속제, 혈연 입장제도가 발달되어 있으나, 중국은 모든 자식들이 균등하게 분배받는다는 점, 그리고 입앵할 때에도 혈연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인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꽌시(관계)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연고에 의존한 사회관계의 특혜로 해석하면 잘못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꽌시는 개인 사이에 오랜 기간 동안 맺은 업무상의 관계에서 형성된 평가와 신용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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