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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포섭되는 군중들

역사 2009. 3. 26. 18:05
19세기 서양사는 대체로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도시와 시장경제라는 무대에 등장하면서, 착취와  저항, 은폐와 드러내기, 즐기기와 억압이 뒤얽히면서 정치적인 타협과 대결, 그리고 자유와 탄압이 지속된다.  물론 그 중심적인 영역은 개인들이면서, 동시에 한 가족의 적응, 그리고 이웃과의 연대전략이 동원되었다.  이러한 해석의 뒷받침에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의 영국의 노동자 생활을 연구한 톰슨에 의해 분석되는 것을 차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와 같이 임노동자라기 보다는 양반계층, 귀족 계층, 상인층, 장인(제조업자), 공장노동자, 자유로운 노동자 들이 얽혀 있었던 시기의 일반 평민들의 삶을 분석하는데에는 한층 더 유용한 것이다.

개인들의 처지 역시, 임노동자라는 표현보다는 무산자 계층들, 즉 점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제조업자들의 힘에 눌린 장인층들(소규모 자영적인 성격을 가진 제조업자들), 장인층의 아래에서 기술을 배운 숙련노동자들, 또는 이미 기계가 들어오기 전의 공장에서 숙련을 가지고 있었다가 기계가 등장하면서 어린이와 부녀자들에게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숙련노동자들, 단순한 저임 노동자들, 도시에 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비공식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자유노동자들 모두가 아니, 농촌에서 도시로 가기위해 대기하고 있는 소농 소작자들 역시 무산자 층에 속할 것이다.  이들 모두는 19세기의 산업혁명이 가져다준 시장경제체제에서 그 고통에 적응하고, 타협하고, 저항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개인에게 결혼은 과거의 농촌시절과는 달리 어느정도의 사회적응과 돈벌이가 가능해야 혼사문제를 풀수 있기에 결혼연령은 늦어 질 수 밖에 없다.  또한 결혼 역시 하나의 가족 생계전략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키가 크고 영양이 풍부하다고 인정되는 여성은 일찍 좋은 조건에서 결혼 기회를 가질 수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결혼기회가 협소하였다.  여성의 신체와 결혼을 연구한 논문(영국의 사례)에 따르면, 신체의 크기는 과거의 영양상태를 표시해주고, 또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결혼한 후에도 공장에서 채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시의 일이 그래도 어느 정도의 육체적인 강인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허약한 육체 보다는 강한 육체조건을 선호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증거를 임금이나 채용가능성과 연관시키고 있다.

가족은 아직도 말이 부인들이 노동한다고 하였지만, 부인들이 노동에 나서는 것은 거의 최후에야 나서는 것이었고(미국의 사례), 우선적으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노동에 나서서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어야 했다.  우리의 1960년대에 농촌의 처녀들이, 그리고 소년들이 중학교와 일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태와 유사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도시에서는 자기 집이 있는 경우에는 대부분 하숙을 통해서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려는 전략이 우세하였다.  부인들이 노동에 나가는 것은 거의 최후의 수단이었고, 이런 관행도 19세기 후반이 되어어야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인이 공장이나 노동에 나서는 경우에는 주위의 온갖 멸시에 시달려야 되는 상황이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들이다.

군중들은 산업화가 본격화되기 이전에는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놀이를 조직하고, 공동체에서 지주(젠트리)나 자본가(제조업자나 상공인들)을 야유하는 축제가 발달하였지만, 19세기 중반이후에 접어들면, 노동자들의 놀이는 이제 자본가의 상품 영역속으로 편입되게 된다.  즉 개별화되고, 상품화되고, 조직화된다.  따라서 개인간의 사적인 상호작용은 줄어들고, 영화나 프로 스포츠를 즐기게 됨으로써 활동적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여가를 즐기기는 어렵게 되었다.  즉 노동자는 오히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다시 노동을 더 해야하고, 이웃들보다는 고립된 상태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단축을 논의할 때 왜 사람들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려 하지 않고, 더욱 많은 노동을 통해 화폐임금을 획득하려 하나고 질문하면, 대개는 쉬는 시간에 돈이 없으므로 할일이 없다고 한다.  바로 서구로 따지면, 19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공동체적인 놀이가 사라지고, 돈에 의해 여가가 향유되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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