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의 현장

역사/1900-1919 2010. 2. 11. 10:23
1982년 초에 미국 LA의  Westwood(그곳 한인들은 西林이라고 부른다)에서 처음 본 영화가 Reds이다.  이 영화는 "세계를 뒤흔든 10일: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의 현장기록"(1919/1986, 두레)의 저자 John Reed 개인에 대한 영화이다.  그는 미국 오레곤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하바드대를 나와, 언론인을 하면서 멕시코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현장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리드가 1917년 2월혁명이후에 러시아의 뻬뜨로 그라드에서 혁명의 현장을 보도하고, 결국에는 참여하고, 방어하고, 미국에 돌아와서는 미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굼꾸다가, 다시 러시아로 가서는 혁명의 배반을 관찰하고는 절망하면서 33살의 나이로 1920년에 죽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서는 여러기록들이 있지만, 현장성의 측면에서는 이 책이 단연 압도적인 것 같다.  당시의 혁명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움직였는가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감동적이다.  감동적이라는 표현은 혁명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그렇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2월 혁명의 발생, 그리고 혁명의 성공 직후부터는 혁명의 배반으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혁명을 폄하하는 책들은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의 순간에 그들의 행동, 생각, 이념, 동지애를 보여주는 것은 드문 편인데, 이 책의 저자는 당시에 돌아다니던, 팜프렛, 벽보를 수집하고, 기자신분으로 자유롭게 이쪽 저쪽 편을 넘나들면서, 풍경을 관찰하고, 인터뷰를 하고, 나중에는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직접 총을 들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그와 그의 부인 (아니 애인)의 이야기가 감동깊게 묘사된다. 러사이아에서의 활약보다는 미국에서의 탄압이 더욱 리드의 고립감이나, 인간적인 무력감을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글이 미국에서 반미국적이고 반역에 해당하고, 선동죄에 해당하여, 기소당하고, 모멸당하고, 실패하고, 결국,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서 러시아로 다시 건너가는 과정을 겪는다.  돌아올 때도 핀란드에서 검거당하자, 미국 정부는 이를 기뻐하고, 리드를 구출해 주려 하지 않는다.

책은 결국, 10월 혁명을 다루고 있다. 1, 2장은 배경, 3장은 10월 21-24일, 4장은 혁명의 성공이라고 일컬어지는 임정부가 붕괴된 10월 25일, 5장 10월 26일, 6장 10월 27일, 7장 10월 28일, 8장 10월 29일-30일, 9장 10월 31일, 10장 11월 1일, 11장 그 이후를 다루고 있다.  만일 책 제목에 나온 10일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10월 23일-11월 1일까지를 다룬 것으로 보면 된다.  당시 볼세빅은 왕조와 이후에 수립된 케렌스키 정부로부터 만이 아니라, 관료, 군대, 동료 온건 사회주의자들, 농민사회주의자들, 심지어는 낭만적인 안정을 바라는 노동자들까지도 볼세비키의 혁명을 적대적으로 보거나, 적어도 협력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에는 결국 방해하는 과정까지 나아간다.  볼세비키를 뭉치게 한 것은 전선에서 죽어가는 병사들과 이들의 가족들, 그리고 노동자 소비에트 조직이었고, 이것도 주로 러시아의 수도인 뻬떼스그라드에서 고립된 채였다.

"유산계급의 대부분은 혁명보다는 차라리 독일군을 더 좋아했으며, 또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의 러시아인의 가정에서는 거의 언제나 저녁 식탁의 화제가 법과 질서를 가져다 주는 독일군의 진격이었다"(37쪽).
"전화국을 방어하던 융커들에게, 대부분이 귀족의 자제로 그들의 사랑하는 짜르체제를 회복하기위해 싸우고 있던 젊은 융커들에게 탄약상자를 날라주고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던 이 여자들(교환양들)의 경험은 얼마나 낭만적이었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 그들 앞에 있는 이들은 평범한 노동자, 농민들이며 '무지한 사람들'일 뿐이었다"(177쪽).

그러나 리드는 혁명이 왜 성공했는지, 그  진행과정을 명확하게 현장에서 판단한다. 

"극장에서, 광장에서, 학교에서, 클럽에서, 소비에트 집회장에서, 조합본부에서, 병영에서, 전선의 참호속에서, 마을 광장에서, 공장에서의 무수한 집회에서 강연과 논쟁과 연설이 있었다.  푸찔로프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4만의 노동자들이, 그가 사회민주당이든, 사회혁명당이든 무정부주의자이든 누구든지 간에 무엇인가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얼마나 경이로운 광경인가!  몇달동안 뻬뜨로그라드에서, 또한 러시아 전역에서 모든 길모퉁이는 공공의 연단이 되었다"(42쪽).

전선에서 돌아온 병사의 발언:
"병사들은 말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알려달라.  콘스탄티노플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러시아를 위해서인가?  민주주의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본가라는 도둑을 위해서인가?  내가 혁명을 수호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내게 증명해 줄 수 있다면 극형으로 위협하지 않아도 나는 자발적으로 나가 싸울 것이다"(49쪽).

"광대한 러시아의 도처에서 수많은 노동자, 농민, 병사, 수병들이 현명하게 사태를 이해하고 선택하려고 애쓰며, 그리하여 만장일치로 경의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러시아혁명이었다"(150쪽).

"볼셰비키가 성공한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기층민중의 거대하고도 단순한 욕구를 현실화하고 구체제를 산산히 파괴하는 일에 민중을 끌여들여 무너져 내리는 폐허와 연기 속에서 새로운 것의 뼈대를 민중과 일치협력하여 구축했던 데 있었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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