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군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14 인접 국가와 사이 좋은 나라는 없는가?
  2. 2009.07.06 중화는 패권과 제국으로 유지된다.

인접 국가와 사이 좋은 나라는 없는가?

시사/베트남 2009. 9. 14. 20:59
베트남의 역사는 애초에 베트남 북부가 중국의 남부지역과 통합된 역사를 지녔다가 10세기 경에 중국에 대해 하롱베이 지역에서 격퇴한 후에 독립을 쟁취한다.  그러나 이후 원나라의 침입, 그리고 다시 명나라 초기에 침입을 당하고 이를 격퇴한 후에 계속하여 독립을 유지한 나라를 갖고 있다.  물론 프랑스에 의해 19세기 중반에 식민지로 떨어지고, 이후 2차 세계대전중에 일시적으로 일본에 의해 침입을 당하고 2차대전 후에는 독자적으로 프랑스에 대항하여 독립을 당성한다.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곧 1955년부터 남부 베트남에서는 미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자체적으로 독립운동이 발생하고, 이를 북베트남이 도우면서 소위 베트남 전쟁이 벌어진다.  이는 결국 1973년의 미국 닉슨대통령의 휴전협정 조인, 그리고 미군의 철수, 이에 더하여, 1975년에는 북부 베트남 군에 의해 결국 남부 베트님은 함락되고 만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을 이긴 것이다.  이후에도 남베트남 측의 주장에 의하면 남부 베트남에 대해 보복조치가 없었고, 단 한명도 전범으로 죽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전쟁 종사자들에(경찰과 군인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 대해서는 어느 섬이나, 산 속으로 보내 강제 노동을 통해 교화작업을 벌인 것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3-4년정도씩을 일을 한 것 같다. 이 와중에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에 중국인들이 탈출하고, 이것이 중국측과 외교적인 문제를 야기하여 결국 중국은 분베트남을 침략하게 된다.  당시 중국은 모택동이 1976년에 죽고, 등소평이 개혁정책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와중에 있었다.  아마도 대외적인 유화정책을 취하기에는 내부적으로 너무 취약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략하여 친 베트남 정부를 세우고, 이를 못마땅히 여긴 중국은 베트남을 침략하게된다.

베트남은 한편으로 중국의 영향을 깊게 받아서, 베트남의 왕조들은 유교의 영향을 받아 통치체제를 정비해 나간 나라이고, 과거시험을 치뤄 관료를 등장시킨 나라이며,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이다.  지금도 베트남 문자는 프랑스 선교사가 19시기후반에 만들었다는 알파벳을 이용한 문자를 사용하지만, 상당수의 문자를 읽는 언어는 한자음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북부 베트남의 경우에는 민족주의적 의식이 강한 것이 중국의 유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남부 베트남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캄보디아, 남방계의 계통을 이어서인지 개방적이고, 열대지방 사람들의 형태가 많이 나타난다.  지도를  보념 중국의 하이난 섬은 바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나, 하노이의 직접 연결되는 항구인 하이퐁을 가로 막고 있다.  그리고 서사군도와 남사군도가 바로 베트남의 앞바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지도에는 베트남 영토로 중국의 지도에는 중국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그럴 정도로 지금도 베트남과 중국은 서로 앙숙인 관계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에서는 항상 베트남이 약자로서 당하는 입장에 있었고, 중국을 격퇴하면, 대국을 격퇴했다는 자부심을 니끼고 있지만, 반면에 베트남은 인접국인 라오스나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강대국의 역할을 한다.  베트남은 인구 87백만 정도의 인구 강국이다. 남북한을 합친 인구보다도 많은 강국이다.  현재 순수 소비 능력을 기준으로 한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3천불을 넘어섰다.  물론 순수 국내 총생산은 1천불 미만이지만, 실질적인 삶의 경제적 수준으 높다는 말이다.  1979년에 베트남은 인근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군사를 파견하여 준둔시키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만들어 냈다. 결국 동구권과 러시아의 몰락, 그리고 중국의 개혁개방의 추세에 맞추어 1986년에 개혁정책을 시작하였고, 이어서 캄보디아에서도 군대를 철수하게된다,  이는 소련이 그들의 연방해체국에서,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시점과 같은 시기이다.

베트남의 인구는 베트남 전쟁을 반영하고있다.  기본적으로는 후진국 스타일인 피라밋 형태이나, 이중에서 50-70년대에 전쟁으로 군인으로 차출된 세대, 그리고 이들이 아이를 낳은 세대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승리한 후에 제대군인들이 고향에 돌아오고, 1980년대 후반에 동구와 러시아에 파견되었던 노동자들이 귀환되고, 이어서 중동지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1991년의 걸프전때 베트남에 돌아옮으로써 베트남 인구는 급속한 증가를 기록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높은 실업율을 야기하고 정치 경제적인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베트남은 높은 경제성장율을 기록하여 성공적인 개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시사 > 베트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산당지배와 강남지배  (0) 2009.09.15
:

중화는 패권과 제국으로 유지된다.

시사/중국 2009. 7. 6. 07:16
중국의 대외정책은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군사와 정부의 외교분야, 그리고 이를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하는 공산당의 세 군데에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일관성이 있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최고지도자란 당주석, 대통령, 군사위 주석을 동시에 한 사람이 가지고있을 때)의 일관된 의사가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의 정치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언사가 항상 중요한 정책의 징후가 된다. 중국은 수 많은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고, 이들과 끊임없이 국경선 분쟁을 야기해 왔다.  때로는 소련, 베트남, 인도, 대만 등과 전쟁을 통해 국경선 문제를 해결해 왔고, 이런 과정에서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도 전쟁을 불사했고, 공산주의에 대한 적인 미국이나 일본과도 수교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따라서 공산주의 보다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념을 이용하였다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주체 사상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국도 모택동의 사후 등소평이 등장하면서, 경제건설을 중심에 놓고, 가능하면 국경선 분쟁을 줄이거나 연기 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따라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식적인 이념으로 빛을 가리고 어둠을 드러내는 전략, 또는 분쟁은 미루고, 공동으로 협력한다는 기본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전략이다.  이것이 그대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이런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이런 유연한 전략보다도 주권에 대한 강조가 더 강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의 국경선 문제나 대외적인 힘을 과시하는 전략을 주로 구사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와중에 1989년을 기점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중국은 일단 100년 동안은 참고 경제 건설에 몰입하지는 정책을 만들어 낸다.  당시에는 일인당 국민 소득이 1천달러 수준이 안되던 시기이다. 100년을 참자는 뜻에 조금 섬뜻한 인상이 든다.  다른한편 100년의 목표를 세운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 국민 소득이 3천 달러 수준을 돌파하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세계경제에서 국가의 총생산의 수준이미국, 일본의 다음으로 3위로 떠오른 현금의 상황에서는 중국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다.  이미 화평굴기, 또는 책임 대국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중국은 이제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일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단, 중국이 지구상의 분쟁 지역에 개입하고(최근에는 수단과 버마에 언어로서라도 개입하고, 국제 평화유지군에 동참하였다), 미국도 중국에 대해 국제통화기금에 더 많이 출자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실제로는 미국에 대해서도 재정적자를 줄일 것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을 증강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에너지 통로인 남아사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물론 인도 등이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있지만, 아직은 인도는 중국에 상응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남사군도의 영유권 분쟁에 이르르면, 이미 중국은 아시아의 해양을 미국을 대신하여 장악하고 있는 보인다.  물론 현재 미국이 이 지역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고 볼수는 없다.  미국은 이미 필리핀의 수빅만에서 물러났고, 이제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있고, 한국의 제주도에 건설을 시도할 것 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제주도 남난 이어도에 대해서도 중국 해군에서 영유권을 주장한 바 있다.  황해상에서는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해저에 뭍힌 석유 채굴권에 대해 상호 갈등의 요인이 매우 크다.   혹자는 최근에 북한이 이미 황해상에서 석유 개발에 중국과  공동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니면 해저 대륙붕과 연결된 육상에서 석유개발에 성공하여 상당량의 석유를 자체 생산으로 소비한다고 한다.  아무튼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분쟁에 의해 이락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이해한다면, 앞으로 에너지를 둘러싼 분쟁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