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개방이 발전을 가져온다

역사 2009.01.15 11:21

가톨릭이 지배했던 중세를 지내고, 1400년대에 들어서면 비잔틴(1453년 오스만 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지식인들이 이태리로 망명)과 이슬람 권의 지식과 문화가 유럽에 유입된다.  이 과정에서는 많은 과학적 지식들이 수용되고, 창작되고, 확산된다.  물론 이러한 지식의 수용과 확산에 반발하여 종교재판, 화형식, 마녀사냥, 이단서적 금지 등의 방식으로 이를 저지하려는 움직임 또한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가 앞섰다고 주장하는 금속활자보다 우수하지는 않아도 1457년에 구텐베르그는 이를 이용하여 시편을 발간하고, 이후 약 50년간에 걸쳐 유럽에서는 매년 약 2만여권의 책들이 보급되게 된다.  당시의 책은 대개 수도원에 갖혀있는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구텐베르그로 인해 비로서 지식이 일반 대중에게 쉽게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라무스는 1543년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판하는 책을 발간한 후에 파리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당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라무스가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이다.  이미 당시에는 구텐베르그의 인쇄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과학적 지식을 감추어서 사용하는 것 보다는 공개적으로 출판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문화적 인정방식의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적 기록에는 1562년경부터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이루어 진 것으로 나타난다.  마녀사냥이란 사회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회나 자연 현상이 발생했을 경우에, 이를 도저히 설명할 방식이 없으므로 이웃의 한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희생양에게 모든 잘못된 현상의 원인으로 돌리고, 이를 불에 타 죽임으로써 스스로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미신과 사회적 배쳑에 기반한 현상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브루노는 모든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592년 5월 23일에 베니스에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구속된다.  결국 1600년에 우주의 무한성을 말했던 브루노가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한다.  또한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여 종교재판을 받게 된다.

유럽 사회는 종교적으로도 1400년대에 체코에서 시작되면서 종교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유럽에서의 가톨릭은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체제이면서, 동시에 법률을 가지고 있고, 교회가 다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헌금을 받아서 사용하는 막강한 경제적 부를 동시에 노리고 있었다.  따라서 주교는 하나의 정치적인 인물로서 귀족계급에서 선출되었고, 신부들은 다만 하나의 고용인이었다.  1500년대의 프랑스에서 나타난 위그노와 가톨릭의 대결, 1600년대의 30년 종교전쟁 등은 썩은 종교 가톨릭에 대한 정화운동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계관과 조화시키려는 시도였다.  물론 모든 개신교가 모든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적인 것은 아니었다.  칼빈교는 특히 스위스에서 기독교 광신적인 독재정치를 펼쳤고, 영국에서도 1600년대에 청교도 혁명은 모든 시민들에게 청교도 윤리를 강요하였다.  따라서 한편으로 가톨릭과 비슷하게 개신교도 자신의 종교만이 최고의 종교이므로 누구나 믿어야 한다는 강한 독선에 빠진 점은 비슷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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