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02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타난 민주주의
  2. 2009.04.07 차별사회와 시장경제
  3. 2009.03.31 생물학적 차별이 사회제도로 침투한 19세기 후반기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타난 민주주의

역사/BC 2010.07.02 10:29

1차세계대전후의 서구에서는 민주주의가 꽃피는가 했더니, 전체주의 파시즘 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도 대부분, 명백하지는 않지만, 민중들의 암묵적 승인과 가장 광기어린 방식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논하면서 위기의 징후는 항상적으로 있어왔다.  아니 민주주의란 위기를 내포한 제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숙의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주장한다.  아무튼 민주주의는 그 제도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BC 4-5세기 경, 인구 50만명 규모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다양한 정치체제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민주주의를 겪은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데마고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사형에 처하게 된다.  소위 다수의 횡포에 의해 소크라테스의, 아니 다양한 의사표현이 억제당하게 된다.  이를 기록한 것이 국가론 8장이다.  물론 이 장에서는 유능하자들에 의한 지배체제인 아리스토클라시, 명예를 존중하는 정치체제인 Timocracy (물론 이제도는 스파르타를 염두에 두고 용기와 재산을 명예로 규정하고 있다), 과두제(금권정치), 민주제, 독재(전제)를 들고 있다.  이중 흥미를 끄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와 평가이다.

"민주제란 빈민들이 승리하여 반대파의 일부는 처형하고 일부는 추방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시민권과 통치권을 평등하게 분배해줄 때 생긴다.  따라서 민주제의 국가에서는 추첨에 의하여 치자들이 선출되는 것이다"(557a).  이런 제도에서는 "교만을 교양이라고 부르고, 무질서는 자유라고 부르고, 파렴치는 용기라고 부르면서 찬사와 아첨의 말을 퍼부우는"(561a) 사람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는 다시 참주제, 독재체제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움은 불필요한 욕심을 낳고 이러한 욕심에 의한 경쟁은 다시 부와 재산, 탐욕의 경쟁이 나타나서, 오히려 독재 등장의 토대가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중 스스로 독재를 원하고, 독재자는 민중을 이끌기 위해 전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567a).

 철학은 지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철학의 등장이 결국, 우매한 민중을 깨우치는 수단으로 나왔다는 점, 그리고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을 취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 철학이 등장하였다는 점은 현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민주주의의 제도만이 최선의 제도는 아니고, 민중이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을 때에는 결국 스스로 독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교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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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사회와 시장경제

역사/19세기 2009.04.07 14:21

19세기의 서양문화사를 보면 명백하게 흐르는 두가지 갈래의 논의가 있다.   하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공정성에 대한 논의이다.  때로는 시장경제의 화폐는 신분의 구속을 타파하고 인간성을 해방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시장경제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시장의 평가기준에 의해 그 정당한 댓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가능하게 만든 공장에 대한 찬사로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즉 기계적 사고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기존의 인간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것들도 이제는 기계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기에는 바비지나 Ure같은 이들이 앞장서서 이념을 전파하고 실제로 이에 걸맞는 현재의 컴퓨터와 같은 것으로 고안해 내기도 하였다.  물론 우리가 거구 유럽의 박물관에 가보면, 이들이 사용하던, 방직기내의 종이를 이용한 연속기계동작장치, 시계가 일정시간이 되면 여러가지 장난감 같은 것들이 줄지어 나와서 쇼를 하는 모습, 간단한 음악 곡조를 연주하는 기계 등은 이미 산업혁명이전부터 등장하였던 마분지 같은 종이에 구멍을 뚫어 연속동작을 가능하게 만든 장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물론 당시에 다윈의 진화론 그 자체는 종교적인 교의에 젖어있는 이들에게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라서 이를 금지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적으로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곧 효력을 발휘한다.  진화론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유전에 대한 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우생학적으로 백인이 유색인종에 비해 우월하다는 사고를 널리 퍼뜨리고 이를 정책에 곧바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19세기 후반에 백인이 다른 유색인을 상대로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지배하게 되는 현상의 배후에 놓인 논리이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2차세계대전시에 히틀러가 우수한 아리아인이 다른 인종을 지배해야 한다는 데에까지 나아가게 만들었다.  19세기 초기에 신대륙에서는 원래의 주인인 인디언을 내쫓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민주주의는 백인들에게만 한하였고, 인디언에게는 이러한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음을 명백히 하였다.  인디언이 자율성을 갖는다고 하여도, 다만 당시의 흑인 자유인에 해당하는 자유를 인정하였고, 백인과 동등한 자유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산권, 기득권, 이주의 자유, 참정권 이 모든 것들이 인디언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왜 인종차별에 기반하여 발달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당시부터 시작된 인종차별 또는 사회적 차별은 지금도 제도로서 조직원리로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다만 사람만바뀌고 있을 뿐이다.  즉 식민지시기에는 일본인이 가장 상층의 착취자로서 기능했다면, 그 후에는 특정한 계층이 이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사회의 작동원리는 여전히 과거나 지금이나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분업의 효율성과 효과성이 사회적 차이의 포용이 아니라, 사회적 배제와 차별로 나아가는가에 대해서는 단지 체계의 작동원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역사상의 사회내의 제 세력에 의한 기득권 다툼의 논리가 더 적합할 것이다.  즉 반자본주의적 신분적 질서를 옹호하고 싶은 기득권이 자신들의 지대이익을 추구하려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진보적인 힘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의 자본주의는 신분적인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더 강함을 알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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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차별이 사회제도로 침투한 19세기 후반기

역사/19세기 2009.03.31 16:08

19세기 전반기가 서구 열강들이 자국내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에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어, 내부적으로 그 해결방식을 찾았다면, 19세기 후반기는 자국내의 문제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즉 19세기 전반만 하여도, 식민지 제국들은 먼곳에 있었고, 그곳에서 서구 열강의 내부로 영향을 그다지 크게 미치지는 않았다.  다만, 유럽(구대륙)에서 신대륙(미국)으로의 이주, 흑인노예의 이주, 인디언 학살,인디언들과의 혼혈 정도가 인종간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이는 사실상 내부적인 문제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국 내부에서 남북 전쟁이라는 내전이 발생하고, 뒤이어 미국은 미시시피 강을 넘어 서부로 서부로(방향이 서부라는 말이지 지형적으로 보면 현재 미국의 중부에 해당한다) 개척하는 시기였다,  철도로 대륙이 연결되고, 목화 프랜테이션, 그리고 북동부 지역(뉴 잉글랜드지역과 새로운 접경)에 신흥공업도시가 발전하면서 대규모의 이주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중 플랜테이션에는 흑인 노예들이, 북동부의 지역에는 대부분 구대륙의 이주민들이, 그리고 철도 연결을 위해서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대거로 이주하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 미국 내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이주민들은 이미 정착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있는 이들에게는 이들 피지배계급이 어느정도 분열되어 있는 것이 통치에는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이미 발전한 다윈의 진화론에 빗대어, 사회적으로도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으로서 사회적인 경쟁에서의 승자를 합리화시켜주는 이론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사람들도 대부분, 흑인, 이주자, 인디언을 포함하는 민주주의를 주창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논할 때,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 노예들이 제외되었듯이, 대부분의 사회 하층민은 배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문제는 이것이 겉으로 보면 단순히 인종주의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종주의가 그 원칙대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종주의란 사회적으로 차별을 합리화시키는 하나의 이념적 도구일뿐이지, 백인이라고 누구나 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19세기는 미국 신대륙에는 구대륙에서 기근을 피해(아이랜드의 감자기근), 또는 1948년의 노동자 폭동을 피해 온 사람들, 또는 일확천금을 꿈꾸고 온 이들, 종교자유를 위해 온 사람들 등 수 많은 각자의 동기에 의해 피신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기존에 살던 주로 WASP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남북 전쟁후에는 남부의 사람들이 북부의 사람들에 의해 차별을 많이 받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에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물론 나중에는 중국인들이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중국인들을 철도노동자로 들여온 거의 직후부터 차별적인 법률들이 계속해서 제정되었다.  이점은 최근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영어 공용화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불법으로 판정받은 것을 상기하면 알 수있다.  즉 주 정부의 차원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이해하면된다.  인종주의적 차별이 미국에서만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인종주의적인 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스카프를 학교에서 금지시키고 있다.  프랑스를 말할때 우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킨 나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민족주의적인 민주주의가 당시에도 모든 나라에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초기에 환영을 받았고, 독일에서는 처음부터 적대적이었고, 스페인에서는 초기에는 상당수의 진보적인 인사들이 환영하다고 결국은 다시 적대적으로 돌아선다. 즉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시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주주의였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1950년대, 그리고 1962년에 해결된 아프리카 알제리아 독립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주의가 민족과 결부되고, 인종주의와 결부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를 정당화한 이념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조선말기의 선각자들도 서구의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부국강병론을 주창하였다.  물론 부국강병을 제대로 실행할 능력도 없었지만, 부국강병론 자체가 바로 제국주의 정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의 우리도 역시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한 경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겠지만, 경쟁은 탐욕과 차별에 근것한 경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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