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근원

시사 2008. 10. 14. 15:53

주위의 소문은 이제 곧 불황이 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에따라 우리의 상황을 추적해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이번의 위기는 1997년의  위기와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외환이 충분하므로 위기가 그리 크게 오지 않는다고만 말하고 있다.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말해주는 이는 없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예측은 1달이 지나지 않아 곧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이에 더해서 서서히 기업과 소비자들, 정부의 공포감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일단 안전하게 돈을 쓰지 않고, 현금을 많이 갖고있고, 최대한 절약하면서 다가올 불황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서서히 사람들 줄이고, 추가로 인원을 고용하지 않고, 기업 내에서도 비용을 줄이라고 야단을 치고, 정부는 마치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를 내면 낼 수록 국민들은 정부는 무슨 문제를 숨기니까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 것이야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정부는 은행은 외화 자산을 매각하라, 스스로 자구책을 구하라, 공적인 연기금에는 증권을 구입하라고 독촉하고, 일반 대기업에게는 보유중인 외화를 매각하라고 하고, 이들 기업은 다시 외화 채권을 발행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 소식은 다시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부가 겉으로는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 뒤로는 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느낀다.

공포감은 우리가 현실의 진행상화,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능력은 현재한 말이 앞으로 사실로 증명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정부가 부유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서민들을 우롱하는 정책을 펼치고나서는, 경제가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서민 국민들은 부자를 위한 메세지로 여기지, 서민들을 위한 메시지로 여기지 않는다.  아마도 서민들을 위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변명을 하기 위한 메세지로 여길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투자은행이 한 일에 대해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금융통합법, 금산 통합을 통해서, 미국 식을 따라 가겠다고 말하니, 진실여부는 둘째치고라도,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럴 때는 우선 미국식 투자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대비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금융 통합, 금산통합을 제시하여야 국민들이 믿지 않겠는가?

위험 평가기관, 위험평가에 대한 능력향상, 일반 예금자들의 예금을 보호해 줄 수 있는제도, 산업체소유자들이 은행 예금을 자신들의 투자원으로 쉽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증권을 시장가격에 맞추는 제도의 변경, 환매조건부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단기 자금 조달을 통한 투자)에 대한 문제를 미리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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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기, 회상하기, 평가하기

역사 2008. 10. 14. 13:49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초등학교 카페를 만들었다.  나는 고향에서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아직 직접 만나지는 않고 있다.  몇몇 친구들은 직접 만나자고 야단이다.  그러나 실은 400여명의 졸업 동창들 중에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있었다.  다만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명칭된 일반화된 모임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자주는 아니지만, 일년에 한 두차레 정도 세네명씩 만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고 이 얘기 저애기 나누는 동창모임은 있었다.

그러나 곧 이 공식적이 카페 모임과 여기에 모이자라는 광고에 대해 주의를 주는 친구가 생겼다.  즉 모임의 성격, 식사하고 난 다음의 식비 문제, 모임이 정기적으로 회비를 걷는 문제, 동창들의 상조 범위와 상조비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능한한 편안한 모임을 가지려고 하나, 조금이라도 공식화하는 순간이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몇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사는 동네를 가 본일이 있다.  내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동네이다.  아니 내가 초등하교시절에 가본이 없던 동데를 가보았다. 

실은 누구나 자기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자기의 조그만 범위를 넘어서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공식적인 기억과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즉 남의 기억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를 서술할 경우에는 특히 심하다.  요즘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거나, 돌아아가신 아버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역사, 또는 세계사와의 흐름 속에 어디에 위치시키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 부딪치게 된다.

요즘 대학에 90년에 출생한 세대가 들어와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이 배운 한국사와 내가 배운 한국사는 방향이 일치하지않는다.  또한 사실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다.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겁이 많이 난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나의 과거를 정리해본 일도 없고, 나의 과거를 한국사나 세계사에 연결시켜 본 일도 없고, 더구나 평가해본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어느정도 사회의 프레임에 맞추어서 스스로의 행적을 고백한 것은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사의 넥스크라는 월간지에 게재된 '50대 진보의 이야기'는 내가 왜 남들의 눈에 진보의 경향을 띠게되는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한 것이고, 경남대학교에서 간행한 공부하는 이야기 중에 '삐딱 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 사회학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의 역정을 기록한 일이 있고, 영남노동운동 연구소의 잡지 연대와 실천이라는 잡지에서 1980년대 미국 LA에서 있었던 한인노동운동에 관여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왜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게 되었나를 다룬 마산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의 1시간 이상 대담 프로그램도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나의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너무 현재의 그들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시각에 부딪쳐서 내가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의 역사, 나의 역사를 융합시켜 정리해보는 시도를 해보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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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불안이 과거를 불러온다.

역사 2008. 10. 7. 14:11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제도나 사회관계를 꼽는다. 물론 시간이란 물리학적인 기계적인 시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관계가 누적된 사회적 시간을 가리킨다.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은 자신의 시간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내가 살아 왔으면서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들.  내가 살아온 세계마저도 내가 이해할 수 없다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란 어느 세계인가? 라는 의문.   현재의 삶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삶을 다시 말하고 싶고, 돌아보고 싶고, 과연 내가 현재는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해석하면서 살았는가, 아니면 세상이 변하여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아마리 우리가 시간과 역사, 지역과 공간, 사회제도와 관행들에 영향을 받으면서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은 과거보다는 더 오랜 과거, 내가 알 소 있는 지방보다는 더 넓은 세계를 알아야 세상을 이해하면 살아 갈 수있는 세상이 되었다.  현재의 시간은 점차 불안정해지고, 자연의 섭리도, 자연의 규칙도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제도들 대부분이 흔들리는 세상이 되었다.  가족도, 직장이나 직업도, 이웃도, 고향사람들도 모두 흔들리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나를 흔들고, 영향을 주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럴때 우리의 현재는, 그리고 현재에 기반을 둔 미래는 흔들린다.  나의현재는 어떤 과거의 산물인가?  이런 질문이 고루한가?  현재의 과거의 산물이라는 물리학적 진실, 그리고 미래는 현실의 결과일 것이라는 시간의 불가역성의 진실도 흔들릴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 과거를 돌아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재가 너무도 혼란스럽기에!

이런 나의 생각은 김영목, 2004, "집단적 기억과 역사: 19세기 전반의 독일 역사담론"(독어교육, 29집: 456에는 하버마스를 인용하면서, "불안의 원천으로서 미래를 목적론적 역사기획으로 다시 채워보려는" 시도라고 정하였다.  이를 따라서 김영목도 "역사는 원칙적으로 방향성 상실과 위기의식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기획되고 있다"(457)라고 진술한다.  물론 이러한 역사 서술을 인정한다면 매우 주관적인 역사 서술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점을 인정한다. 각자의입장에 따라 서술이 달라지고, 강조점이 그리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나는 역사란 하나의 역사가 아닌 각자의 입장에 따른 역사 있을 뿐이고, 중요한 것은 개인에 갖힌 역사를 통해 보편적인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같은 맥락을 Beredetto Croce(1866-1952)는 "역사상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절된다"고 주장하게 한다.  이렇게 역사가 주관적으로 해석된다는 명제, 또는 이 명제를 실제의 역사에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체주의 사회일수록, 다양한 역사 해석을 부정하고, 국가주의적인 단일한 역사 해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가족도, 하나의 인간도 마을과 이웃도 부정된다.  단지 국가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역사만이 드러난다.  다양한 역사 해석이 가능한 사회는 그 자체로서 다원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이고, 미래를 위해 다양한 가능성의 씨앗을 보유한 사회이므로 어떠한 불확실성과 위험에도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양한 역사 해석의 하나를 서술할 것이다(전제주의 사회에서는 공적인 기억을 사적인 기억으로 환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권귀숙, 2006: 12; Hosking, 1989; Marques, Paez & Serra, 1997을 참조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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