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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0 동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왜 이리 비슷할까?
  2. 2009.07.09 독점되고 조직화된 폭력
  3. 2009.07.08 선출되지 않은 인민 대표
  4. 2009.07.07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
  5. 2009.07.06 중화는 패권과 제국으로 유지된다.
  6. 2009.07.05 사는 곳이 중국으로 바뀐 조선족 1
  7. 2009.07.03 화교 꽌시(관계) 힘의 근원
  8. 2009.07.02 중화는 누구를 가리키고, 어디에 있는가?
  9. 2009.02.07 미국 달러의 운명
  10. 2008.12.26 장사익의 소리

동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왜 이리 비슷할까?

시사/중국 2009. 7. 10. 21:12

중국에서의 공무원들의 비리나 부패 현상을 보도하거나, 그 이면을 분석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큰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비슷하다.  우선 공무원 개인들이 점심시간에 술먹는 현상이 지적되었고, 이에 대해 중앙 공산당의 규율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색출을 나섰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공무원들이 다치게 된다.  대개는 점심 시간에 술을 먹고는 늦게 집무실에 등장한다.  점심시간에 음주를 단속하지 인근의 매출이 20% 정도 줄었다고 한다. 혹자는 이들이 낮에 음주를 못하므로, 밤에 더 많이 하거나, 아니면 주말에 더 많이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여 매출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공무원들의 음주 비용은 대개 국가의 세금에서 나가는 돈이다.  이러한 공무원들이 접대비로 또는 식당이나 주점에서 지출하는 비용은 엄청나다.  실제로 중국에 가서 상대편 초청자와 식사를 할라치면 거창한 식사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식사시간에 자신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불러들이며 같이 식사하느데 다시한번 놀라게 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비용을 사용할 경우에는 아주 검소한 식당으로 초청하는 것을 알 수있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승용차, 그리고 지방 기관장들이 사용하는 관청의 규모, 그리고 이들이 사용하는 사무실의 규모는 엄청나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러한 것을 사용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를 우리가 남의 이야기로말하기는 쑥스럽다.  우리나라의 공무원 장급들의 사무실, 그리고 승용차의 규모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가족들이 별일 없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도 똑같다.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다잡기 시작한다.  그러나 상점 주인들은 이것이 헌법상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미난 것이다.  점심시간에 술먹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무튼 심각하게는 중국 상해의 공산당 총서기를 잡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경호원들을 통해 피하기위해 노력한다.  2006년에 진행된 이런 과정은 실은 공산당 내의 상해파를 제압하기 위한 태자당과 호금도 총서기 측이 꾸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때 상해 총서기를 최종적으로 심판할 때 강택민 전 총서기의 승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해 총서기를 잡아들인 태자당의 총책임자는 결국 2007년 공산당 17기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에서 실각하고 만다.  줄타기를 하다가 스스로 당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만 든다.

그러나 혹자는 이러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정간의 분권이 한 몫을 했다고 주장한다.  즉 중국은 아직도 일당 독재 하에서 선거도 없는 형태이므로, 사실상 견제가 없다고 보아도 되나, 일단 지방 정부간의 경쟁, 중앙정부의 감독에 의해 상당한 정도의 부패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분권에 의해 중앙정부는 어느정도 견제가 되고 있으나, 지방정부는 스스로 사업을 늘이고 있고, 지방민의 토지가 대부분 마을 공동소유인 점을 들어, 이들 토지를 지방정부가 매매를 하거나, 아니면 지방정부 주도로 조직깡패와 결탁하고 각종 독점 사업에 관료들이 개입하고 이를 옹호하고 있다.  즉 광산과 같은 이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공공연히 옹호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아직도 국가나 공공업무와 사적인 업무간의 이해관계의 상충이라는 개념이 우리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에도 아직도 공적인 정보나 권한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거래나 이권을 챙기는 것이 거의 일상화되고 좌악시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비슷한 정도의 사고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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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되고 조직화된 폭력

시사/중국 2009. 7. 9. 08:09
대개 국가를 제도적으로 정의할 때 사회과학에서 첫번째로 꼽는 특징이 바로 족점되고 조직화된 폭력이라는 것이다.  즉 국가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의 폭력을 금지하고, 국가만이 공인되고 단독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폭력이란 자신의 명령을 집행할 수 있는 능력, 또는 국가의 의사를 최종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물론 ㅎ근대 민주주의 민족국가 체제에서는 피치자의 저항권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역시 국가라는 기구 자체로서만 본다면, 국가의 명령을 실행하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주권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폭력의 독점이라는 특징이 새로울 것은 없다.  저항권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지배의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때 합의라는 것은 토의를 통한 것이라기 보다는 보다 전통적인 의미, 인간의 내재적인 심리에 근거한 것이다.  이럴 경우라고 미국의 수정헌법에 보장된 것처럼, 인민의 무기 보유를 허용하는 정도까지 나간 나라는 거의 없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도 지배자들만이 사냥의 권한, 사냥을 할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 권한을 지녔듯이, 현대에서도 피치자는 무기 보유의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중국의 경우에 내란이 발생하면 일단 경찰이 책임지고, 더 나아가면, 인민 무장 경찰이 책임진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으로만 본다면 신장, 우루무치(영어에서는 우룸키)에서의 폭동은 무장 경찰이 진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호금도 당 총서기가 귀국한 것으로 보아서는, 89년의 천안문 사태때와 비슷하게 인민해방군이 들어갈 가능성도 보인다.  그러나 인민해방군 입장에서는 이는 자신의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느끼기에 매우 주저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호금도 공산당 총서기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도 겸하고 있으므로,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호금도 총서기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이미 2002년 이후에 중국내의 모든 민간 단체에 대해 정부에 등록하고, 평상시 업무에 대해 감독을 받으며, 행정적인 감독이 아니라, 공산당의 적극적인 지도를 받도록 명문화시켜 놓았다.  이는 파룽궁 사태이후에 생긴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단체의 통제에 매우 적극적임을 알 숭 있다.  그러나 사회단체라는 것이 이러한 방식으로 통제가 될 지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통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마도 2-3천명(만명)의 정부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인터넷 통제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신장성 우루무치 폭동시에도 인터넷, 휴대전화, 통신과 교통을 금지시켰다.  이는 지난번 티베트 사태때 휴대전화가 이용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전송시켜서 곤란한 점을 당한 것에 대한 교훈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정부가 앞장서서 외신기자들을 초청하여 적극적으로 현장을 통제된 상태에서 보여주고,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점차 세련된 방식으로 정보 통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대내적 통제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처한 국가가 일상생활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상황, 시장경제체제에서 나타나는 자율성과 생활의 양극화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대외적으로 본다면, 중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미국의 1/5, 일본의 1/3정도의 군비를 사용하지만, 아무튼 중국은 세계적인 군사 강대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성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 중국 연안에 들어오는 것을 저지할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는다면, 궁극적으로 말라카 해협의 교역로를 확보하고, 인도양까지 진출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염두에 둔다면, 중국은 미국의 일본 요코스카 기지와 괌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해군 항공모함에 대항하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택과 제주(건설예정)에 공군과 해군기지에 대한 방어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중국은 폭격기 기지가 길림성, 산동반도, 상해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해안가, 그 중에서도 동북부 지역과 남부 해남지역에 군사력을 밀집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에 상대적으로 밀집된 형상이다.  이는 물론 남한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중국의 전략적 목표는 미국, 일본이 주된 타겟임을 분명하다.

그렇다고 중국이 곧바로 군사적인 힘을 과시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은 인적자원, 조직자원, 그리고 통신 능력에서 취약점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인재가 군대에 들어오지 않는문제, 군인들의 훈련 전투경험 사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군대 내의 육군,, 해군, 공군, 포병체제의 상호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아직도 탐지, 통신, 타격 등의 통신 능력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따랏허 전투력이란 것이 하드웨어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면, 우리도 이점은 명심하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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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은 인민 대표

시사/중국 2009. 7. 8. 14:38

세계 여러나라의 통치구조를 보면, 나라마다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보게 된다. 중국의 경우는 공산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특성을 지닌 일당 독재의 스타일이다.  즉 공산당 주석(현재는 공산당 총서기)가 매 5년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와 같은 해의 10월) 열리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공산당 총서기, 공산당 정치국상무위원 (9명), 공산당 정치국원 (25명)의  순서로 위로부터아래까지의 조직의 위 아래가 정해진다.  그리고 나서, 정부에 해당하는 곳의 국가 대표 주석직과 군을 장악하는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직을 장악하게 된다.  현재는 이 세가지 직책을 장악한 사람이 호금도(후진타오)이다.  후진타오는 2002년-2004년에 걸쳐 차례로 세가지 직책을 장악하고 지난 2007년에 다시 재선에 성공하여 현재 2기 5년을 이끌고 있다.  대개 중국은 70세 이전에 정년이 되기전에 자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번 2012년의 전당대회(18차)에는 물러 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중국은 5년단위로 최고지도부가 정해지면, 이전의 강택민, 등소평 등의 예에서 보듯이 대개 10년정도 통치한다고 보면된다.

공산당 총서기는 실질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고 보면된다.  따라서 이번 위구르 시위와 뒤이은 한족과 회족 사이의 폭력 대결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취소하고 국내로 들어온다고 보도되었다.  즉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위구르 사태는 국가 대표가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와 정치국을 소집할 정도의 중대 사태로 보고 있다.  이는 아마도 호금도 총서기가 중국 정치의 취약점인 통일과 통합을 유지하게 위해 노력해 왔지만, 현재 고위급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고 보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개는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국무원 총리가 담당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기 때문이다.  즉 공산당 총서기는 국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할 권한이  별로 없어서 기껏해야, 상징적인 도덕적인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 위그루 사태는 국무원 총리의 손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권력체제의 특성은 또한 미국의 한 학자가 표현했듯이 "분절적 권위주의"로 특징지어 진다.  즉 호금도 총서기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정군간, 그리고 지방과 정부, 그리고 내부 파벌간의 분절적인 권력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듯보면, 분절적이라는 것은 업무 분장이 잘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말로 하면 상호간에 업무 조정이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대개 각 부서별로 위원회 격인 소조가 구성되어 업무를 처리하는 특성이 있고, 공산당 내부에는 정치적인 파벌들이 형성되어 있어 이들간의 철저한 집단지도체제 또는 나뉘기에 의한 분담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는 전총서기였던 강택민의 상해파, 그리고 현 총서기인 호금도의 공청단파, 그리고 과거 혁명 선세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태자당의 3개 파가 균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는 일반적인 원칙만 중앙에서 내리면, 지방은 구체적을 집행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하다고 보면된다.

그러나 파벌의 형성을 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즉 상해파라 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상해출신, 상해에 소재한 곳의 학교를 나왔을 것으로 예상하나, 중국에서 상해파란 연줄관계가 아니라, 강택민이 상해에서 근무할 당시에 맺은 업무상의 연줄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에서의 연줄이란 우리가 보기보다는 연고보다는 업무상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연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차이를 중국과 한국의 가족구조의 차이에서 보는 학자도 있다.  즉 한국은 장자 상속제, 혈연 입장제도가 발달되어 있으나, 중국은 모든 자식들이 균등하게 분배받는다는 점, 그리고 입앵할 때에도 혈연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중국인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꽌시(관계)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연고에 의존한 사회관계의 특혜로 해석하면 잘못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꽌시는 개인 사이에 오랜 기간 동안 맺은 업무상의 관계에서 형성된 평가와 신용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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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

시사/중국 2009. 7. 7. 07:13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때 또는 사람들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중에는 국가가 주위의 나라들과의 관계속에서 처한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많다.  한반도에 태어 났다는 것은 한반도의 국가가 처한 주위와의 관계에서의 위치와 관련된다.  한반도는 대륙 쪽으로는 중국중원과 발해와 황해라는 바다를 통해, 그리고 만주라는 열려진 벌판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한반도 자체는 산악지대로 중국의 중원의 입장에서는 바다에서 들어오려는 세력에 대한 방어막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에 해양에서 진출하려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반도를 통해 중원으로 향하게 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와 만주 평원을 거쳐야 한다.  한반도는 장악하면 만주 평원 그리고 중국 대륙의 중원으로 향하는 길은 그다지 큰 지형적인 장애물은 없다.  바다의 방향에서 한반도를 본다면 한반도는 캄차카 반도, 쿠릴 열도, 일본, 센카쿠 열도 대만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를 감싸고 있으면서, 대륙에는 중국의 중원(대개 중원은 양자강과 황하강 사이를 일컬을수 있지만, 근세로 넘어 올수록 조금 북방으로 옮겨지면서, 현재의 북경 지역을 가리키게 된다), 북방의 유목민들, 그리고 시베리아의 해양진출 방향과 대결하게 되어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한반도는 대륙의 국가이 바다로 나가는데, 그리고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데 거쳐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남한과 북한이 나뉘어 진것은 각각 양쪽의 세력과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합쳐지지는 않는 상황을 만들기 때문에 그렇다.  한반도를 줄러싼 세력들은 한반도를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발전하기도 원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는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상호간의 의존도가 줄어들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한중일, 또는 미국과 대만과 홍콩 등을 합치면 남한으로서는 상품, 투자, 인적 교류, 정보 교류 면에서 강한 상호교류가 이루어 지고 있다.  교류가 곧 통합이나 평화스러운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아니다.  강한 교류는 항상 상대방에 대한 준거, 경쟁, 정체성의 문제, 심하게는 적대와 갈등까지도 유발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정학적으로 서로 폐쇄된 상태였을 때에는 오히려 적대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상호 교류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더 갈등이 유발된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한반도 주위 국가들은 안보면에서 모두 남한보다 강한 국가들이다.  핵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최근에는 북한, 거의 핵을 보유하지 않았어도 남한에 항시라도 위협할 수있는 일본 등이 둘러싸고 있다.  이에 남한은 미국에 의존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자국의 안보를 보호받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인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미군은 지금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개념 아래 휴전선에서 물러나 평택과 제주에 기지를 두려하고있고, 이는 명백하게 중국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은 한국에 준둔중인 미군의 근속연한을 3년으로 늘리고,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의 가족들을 모두 동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있다. 즉 이제는 마치 한반도를 영구 기지로 여기고 정책을 취하고 있다.  남북간의 긴장은 끝나고, 중국을 겨냥한 장기적인 주둔 태세로 나가는 양상이다.

남한은 중국과는 북핵문제, 북한의 개발이익을 서로 경쟁하는 관계, 황해 대륙붕의 자원 개발과 어업권, 제주도 이어도의 영유권, 대만 해협으로의 무역로, 그리고 중국이 남중국해를 장악하고, 때로는 말라카 해협과 인도양을 장악하는 경우에는 이것을 경우하는 에너지 공급로 등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남한의 이해관계는 매우 국가의 안보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결정적이라고 할 수있다.  중국과 한국은 실제로는 경제적인 의존이 매우 높고, 형식적으로는 가장 높은 단계의 협력 동반관계의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국의 발전을 바란다고 해석하면 큰 오해이다.  한국은 적당한 선에서 경제적으로 발전이 정체되기를 바라고 있는 형상이라고 보면된다. 따라서 적당한 남북한 긴장과 대국 사이의 갈등속에서 어느정도 주권이 유린되는 상황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최근에 쌍룡자동차에서 기술을 습득한 뒤에 파산으로 가는 것에서 볼 수있다.  중국에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도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술이전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에서 볼 수있다.

남한의 정책은 복합적인 게임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복합적인 상황이라는 것은 상당한 정도 단칼에 해결되거나, 한 두가지의 사건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주권의 유연성, 모호성의 외교, 중국이 채택한 바 있는 "빛을 숨기고 그림자를 드러내는"정책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실리를 취하는 정책이고, 말 보다는 행동, 그리고 국민의 복리와 경제적 이익을 우선에 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 문화적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역사적으로 다툰다는 것을 넘어서서, 민주주의, 다양성의 공존, 조정과 타협, 창발성의 고양, 사회복지와 사회적 통합을 우리들의 가치로 지향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럴 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오히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보편적으로 만들어서 지정학적 중개자, 조정자, 균형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을 구현할 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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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는 패권과 제국으로 유지된다.

시사/중국 2009. 7. 6. 07:16
중국의 대외정책은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군사와 정부의 외교분야, 그리고 이를 조정하고 최종결정을 하는 공산당의 세 군데에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일관성이 있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최고지도자란 당주석, 대통령, 군사위 주석을 동시에 한 사람이 가지고있을 때)의 일관된 의사가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의 정치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언사가 항상 중요한 정책의 징후가 된다. 중국은 수 많은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고, 이들과 끊임없이 국경선 분쟁을 야기해 왔다.  때로는 소련, 베트남, 인도, 대만 등과 전쟁을 통해 국경선 문제를 해결해 왔고, 이런 과정에서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도 전쟁을 불사했고, 공산주의에 대한 적인 미국이나 일본과도 수교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따라서 공산주의 보다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념을 이용하였다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북한이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주체 사상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중국도 모택동의 사후 등소평이 등장하면서, 경제건설을 중심에 놓고, 가능하면 국경선 분쟁을 줄이거나 연기 시키는 전략을 사용한다.  따라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공식적인 이념으로 빛을 가리고 어둠을 드러내는 전략, 또는 분쟁은 미루고, 공동으로 협력한다는 기본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전략이다.  이것이 그대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이런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 자체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이런 유연한 전략보다도 주권에 대한 강조가 더 강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의 국경선 문제나 대외적인 힘을 과시하는 전략을 주로 구사하였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와중에 1989년을 기점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중국은 일단 100년 동안은 참고 경제 건설에 몰입하지는 정책을 만들어 낸다.  당시에는 일인당 국민 소득이 1천달러 수준이 안되던 시기이다. 100년을 참자는 뜻에 조금 섬뜻한 인상이 든다.  다른한편 100년의 목표를 세운다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 국민 소득이 3천 달러 수준을 돌파하고, 미국의 경제위기가 시작되고, 세계경제에서 국가의 총생산의 수준이미국, 일본의 다음으로 3위로 떠오른 현금의 상황에서는 중국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다.  이미 화평굴기, 또는 책임 대국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중국은 이제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일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단, 중국이 지구상의 분쟁 지역에 개입하고(최근에는 수단과 버마에 언어로서라도 개입하고, 국제 평화유지군에 동참하였다), 미국도 중국에 대해 국제통화기금에 더 많이 출자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실제로는 미국에 대해서도 재정적자를 줄일 것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을 증강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에너지 통로인 남아사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물론 인도 등이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있지만, 아직은 인도는 중국에 상응한 군사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남사군도의 영유권 분쟁에 이르르면, 이미 중국은 아시아의 해양을 미국을 대신하여 장악하고 있는 보인다.  물론 현재 미국이 이 지역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고 볼수는 없다.  미국은 이미 필리핀의 수빅만에서 물러났고, 이제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있고, 한국의 제주도에 건설을 시도할 것 이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제주도 남난 이어도에 대해서도 중국 해군에서 영유권을 주장한 바 있다.  황해상에서는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해저에 뭍힌 석유 채굴권에 대해 상호 갈등의 요인이 매우 크다.   혹자는 최근에 북한이 이미 황해상에서 석유 개발에 중국과  공동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니면 해저 대륙붕과 연결된 육상에서 석유개발에 성공하여 상당량의 석유를 자체 생산으로 소비한다고 한다.  아무튼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분쟁에 의해 이락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이해한다면, 앞으로 에너지를 둘러싼 분쟁은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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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 중국으로 바뀐 조선족

시사/중국 2009. 7. 5. 14:43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을 떠나 낯선 지역에서 정착하는 것은, 유목민의 이동과는 다른 개개인들의 인생에서 중대한 결심을 요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곳이 가족과 친척, 오래사귄 이웃들이 살고 있으므로, 이런 곳을 떠난다는 것은 이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천지가 바뀌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아니면, 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 없으면 좀 처럼 떠나지는 않게 된다.  조선족이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인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역사를 보면, 그저 자발적으로 떠났다기보다는 한반도의 현 거주지보다 못한 지역이었으나, 자신이 살고 있는  19세기 조선의 상황이 핍박하기에 떠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1860년대의 중국은 이미, 중국 자체적으로 내부적인 통치체계가 와해될 지경에 이르렀고, 더구나, 동북부 지역은 중앙정부보다는 군벌에 의해 지배되는 지역이 되었다. 더구나 1880년대에 접어들면,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와 상인들, 그리고 조선에서 경제적 기회를 엿보며 대거 진출하지만, 반면에 한반도의 조선인들은 새로운 살곳을 찾아 만주와 연해주로 떠나게 된다.

조선역시 일제에 의해 강점 당한 후에는 조선의 토착 양반들의 일부는 일제에 편입되지만, 상당수는 일제에 의해 지역 지배 권한이 박탈당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만주로 찾아 나서게 된다.  경북의 북부 지역에 있던 유림들이 만주로 이동하게 된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교육, 산업진흥, 언론 등이 모두 질식되던 상황이었고, 이런 차라리, 러시아에서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새로운 기운이 싹트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였는지도 모른다.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한 상황은 이제 만주로 향하고, 만주에서는 조선인들을 만주로보내, 만주의 현지인과 한족들의 중간자로서 사용하려고한다.  마치 영국인들이 동남아에서 현지인들을 내버려 두고, 중국인들을 들여와서 이들을 중간자로 이용하였듯이.  이런 상황은 만주거주 조선인들에게 이중의 어려움을 안겨 준다.  이전에는 조선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만주에 건너와서, 항일 운동도 하던 세력이, 이제는 일본의 만주국 건설에 이용되면서 한족이나 만주족이 조선족을 공격하거나, 배척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일제가 노리는 수였을지도 모른다.  피지배의 설움과 치욕을 조선족을 통해 토로하게 유도하는 정치적인 계략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사태는 여러차레 일제 강점기에 조선족의 몰살을 가져온다.

해방후에 민주에 살던 조선족들은 한반도로 대거 이주한다.  상당수는 지주로서 살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토지개혁을 피해, 이주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현재 중국 점유 영토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200만 가까이 살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과 1950-60년대에 걸친 북한의 경제 재건 시기에는 조선족들이 대거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경제 건설의 일역을 담당하였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은 민족의 차이에 대해 매우 관대하게 대했다고 한다.  이는 한편으로 사회주의의 특성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중국과 북한의 특수한 민족관에 의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소련의 경우에는 다양한 민족들을 모두 러시아 사람으로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취했지만, 중국과 북한은 다른 민족들의 특성을 유지하고, 인정하는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혁명 기간중에는 상당수의 조선족들이 문혁의 피해를 보았다.  아무래도 혁명의 대중열기에서 가장 희생하기에 좋았던 것이 소수민족인 조선족이었을 것이고, 이들은 사회주의의 보편성, 즉 러시아 식의 동화되지 않은 사람들로 여겼을 것이다. 1992년 중국과 한국이 국교를 맺은 이후에는 중국에는 다시 동북 3성, 그리고 더 많은 숫자가 산동성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 지역은 한반도와 역사적으로 오랜 교류를 해오던 지역이어서 매우 친숙한 지역이다.  중국으로서는 더구나, 한족으로 일컬어지는 양자강과 황허강 사이의 한족의 입장에서는 동북 3성은 항상 중국의 평원을 침략하는 지역이었고, 변경으로서 완전한 통치를 하지 못했던 지역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 조선족과 이제는 한국인들이 들어서고, 최근에는 북한의 난민들이 들어서는 현상이 염려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이들 지역에 대한 동북 공정, 고구려의 역사와 몽고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의 하나로 편입시키고, 중국은 다만족 국가로서의 이미지로 세계 자체가 중국이었던 세계사를 다시 편찬하려고 하고있다.

조선족 역시, 화교와 비슷하게 밀집하여거주하고,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장사도 열심히하는 사람들이다.  그래ㅔ서 동북 삼성에서 오랜 기간 조선말을 사용하면서, 조선의 풍습을 보존하면서 살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과 화교는 많은 차이도 있는 것 같다. 조선인의 네트워크는 아직도 편협한 네트워크, 그리고네트워크의 네크워크, 또는 조직화의 기술과 확산정도가 넓지 않아 편협되어 있다.  사업과 금융의 크기도 그다지 크지 않아, 현재의 국제적 상황에 비해서는 적은 규모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의 국가나 기업과 중국내 조선족과의 관계가 지나친 기대와 의존, 그리고 이것이 결과하는 실망과 좌절과 배신의 감정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상호의존은 각자의 힘과 실력이 전제될 때 가능한 것이다.  한국은 보다 보편적인 사회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지구적인 규범을 과시하는 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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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꽌시(관계) 힘의 근원

시사/중국 2009. 7. 3. 11:40

중국인이라는 표현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를 가든 중국인들을 만난다.  물론 중국음식, 중국인 밀집지역, 중국인들이 장악한 소매상 등의 중간 유통망을 목격할 수 있다.  중국인이라는 것은 인구가 13억이나 되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때로는 전혀 다른 언어와 역사적 배경을 갖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이 뭉친다는 점은 한편으로 편협된 상태가 아니라, 적어도 세계 인구의 1/5을 뭉칠 수있게 하는 어떤 사회관계의 특이성, 아니면 보편성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관계(꽌시)는 편협성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어떤 사회관계의 특성일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인들이 모이는 양상을 보면 대개는 혈연, 지연, 업연이라는 전자 두개의 편협한 축과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업연으로 나아간 데 특성이 있다.

한반도에 들어온 중국인들은 대개 지구상에 퍼져 있는 복건성 출신도 많이 있지만, 상당수는 인접한 산동성 출신이 많다.  그러나 동남아의 중국인들은 복건성과 광동성 출신들이다.  한국의 중국인들은 대개 1882년 청나라의 구대 주둔과 더불어 들어온 경우가 많고, 동남아의 경우에는 서구 식민지 세력들이 의도적으로 노예노동을 대체하고, 피식민지층과의 직접 거래가 어려운 상황에서 들여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지구상의 중국인들을 모드 같은 틀로 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튼 중국인들이 세계에 퍼져서 사는 양상은 한편 그형태에서는 매우 같은 점이 많다.  그것이 바로 혈연, 지연, 그리고 업연을 기본을 삼아 정착한다는 점일 것이다.

과거의 중국은 서구 식민세력에 의해 잡혀가고, 속아서가고, 자기가 살던 곳이 어려워서 가고, 그리고 중국 정부도 이를 방치하던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정착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몽치면서 살아 갔다.   현재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현재는 중국 인민대표자 회의에서도 화교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상무위 정치위원회에도 화교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어, 의도적으로 해외 화교의 금융과 상업 네트워크를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 맞추어서 해외 거주 화교들도 중국 투자의 반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중국에 대해 투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투자가 모두 중국인이기 때문에 하는 자선적인 투자는 아니다.  대부분은 중국 투자에 막대한 이윤이 보장되어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하는 투자이다.  그러나 적어도 해외 거주 중국인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는 다른 외국인이 하는 투자에 비해서는 다른 점이 있다.  즉 그들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다르고, 중국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비교한다면, 중국인들은 해외에서 적어도 싱가포르와 홍콩을 통해 중국인들의 국제 금융을 장악하고있다는 점,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정착된 국가에서 상당한 정도의 금융과 상업과 무역을 장악하고있다는 점, 그리고 때로 거주국가에 동화되지 않고, 때로는 정치적 박해를 받으면서 그들의 네트워크를 유지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의 특징은 무엇일까?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들 사이의 신용, 조정, 통합 능력이 뛰어 나다는 특징을 지닌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개인적으로 사업을 하지만, 중국인들은 가족, 고향사람, 지역 사람들의 길드와 비슷한 사적이면서 공적인 모임을 통하여 사업 분야, 신용공여, 거래 등을 지원하는 체제를 갖고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해외 거주 한국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체계를 갖춘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오히려 이것이 해외거주 한국인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그곳에서 한인네트워크를 갖추는 계기가 될 가능성은 없는지 관심꺼리이기도 하다.

중국인 네트워크의 또다른 특징은 작은 단위의 화교 집단이 모여서 커다란 화교조직으로 바뀐다는 점일 것이다.  즉 화교의 대부분은 복건성과 광동성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들 지역내의 도시나 마을을 중심으로 일차적인 네트워크가 구성되고, 이러한 작은 집단이 다시 커다란 조직으로 바뀐다는 데에있다.  이점은 화교 네트워크의 개방적인 속성이라고 해석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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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는 누구를 가리키고, 어디에 있는가?

시사/중국 2009. 7. 2. 07:47
중화는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생각이다.  물론 중국이라는 표현은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일반 명사이다.  그래서 가운데 나라라고 생각하면 중국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마산에 중앙동, 중성동 등이  가운데 동네, 성의 가운데 동네라는 뜻을 지닌 것 같가.  일본의 혼슈 남쪽에도 중국이라는 지명이 있다.  나라의 지명은 대개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피치자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고안해낸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이라는 이름은 한족이 양자강과 황하강 사이를 중심에 두고 자신들의 세계를 외부에 나타내기 위해 역사적으로 형성한 용어이다.

현실 역사에서는 중국은 단일의 민족이 동일한 장소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중국이 다시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은 자신의 중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계 속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제도나 체제면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대내적 통치 이데올로기와 대외적인 국가간의 관계의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서북부의 침략을 받아왔지만, 900년경의 거란 이후에는 동북부의 침략을 받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가 들어섰다.  한민족의 중국 역사에서는 이를 침략으로 해석하고 한족의 민족 자부심에 상처를 내는 사건으로 여겼다.  그래서 항상 북방의 이민족에 의해 지배를 받았을 때에는 어김없이 양자와 황하강 주변의 한족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은 자신의 역사책을 펴 내면서 이러한 이민족의 지배를 중국의 역사 내로 편입시켰다.  이제 징기스칸의 지배도 중국이므로, 중국 역사책의 표현에 따르면, 중국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하였다고 표현한다.  2007년에 몽골 국립대학교를 방문하여 중국교수와 몽골 교수 간의 논쟁을 들은 경험이 있다.  중국 교수는 중국의 내몽골은 몽골말을 가르쳐서 몽골의 풍습을 지니고있는데, 몽골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말을 잃어버리고 러시아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징기스칸의 후예를 자처한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중국의 동북 삼성으로나아가 보면, 실은 동북 삼성은 중국의 영토라고 보기에는 제대로 통치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지금도 동북 삼성은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제가 만든 만주구 시절의 광산 개발과 중공업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이를 발전시키려는 전략은 있으나, 중국의 중심 산업화는 역시 중국의 중심 해안가에서 이루어지고있다.  동북 삼성은 서부의 발전 이후에 마지막으로 발전 계획이 세워진 정도이다.  따라서 한족의 중국 중앙정부의 사고에는 동북부는 변방에 속하는 지역이다.  다만 이 지역에서 조선인들이 항일 무장 투쟁을 벌였으므로, 중국의 공산당 입장에서는 중국을 방어해준 조선인이라는 매우 중국 중심적으로 보아서 고마운 조선인이었다.  그러나 동북부의 중국인들(아마도 만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중화중심적인 사고를 갖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항상 이곳에는 중국의 중심에서 파견된 통치자가 지배하는 인사원칙을 갖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소수민족에게도 적용되어 소수민족 자치구의 책임자는 중앙정부의 책임자이고 그 바로 아래 서열에 자치족의 대표가 자리를 잡는다.

중국은 자신의 직접 통치를 위해서도 통치영역을 넓혀 나갔다.  특히 1700년대에 서부지역과 연해주 지역을 자신의 통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180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통치 영역이 외부의 힘에 의해 짤려나가기 시작한다.  일본은 대만에 대해 중국이 아무런 통치를 하지 않으므로, 우리가가져 간다고 선언하고, 유구 열도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한 조공을 중지하라고 명령하고 점령하여 버렸다.  베트남는 프랑스가, 버마는 영국이 가져갔다.  중국은 자신의 국가 수도가 1860년 서구 제국의 군대에 의해 파괴당하고, 점령당한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1876년 강제로 독립된 국가의 지위를 확보하자 이를 막기 위해 1882년에 3천여명의 군사를 주둔시킨다.  조선에 대해서는 북경과 근거리에 위치하여 일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을 지키려고노력하였으나, 이러한 힘이 없었다.  궁극적으로 조선은 청나라와 1899년에 독립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그러나 1905년에 일본에 의해 외교권일 박탈당함으로써 청나라와의 독립적인 외교관계를 끝을 맺고 만다.  이후에 1992년이 되어서야 한국은 중국과 독자적인 외교관계를 맺는다.  한국과 중국이 독립적이고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극히 짧은 기간이었고, 대부분의 시기에는 조공관계였고, 무력관계였다. 조공관계란 중국은 조선을 무시하였으며, 조선은 외교적으로 중국에 의존하였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은 현재 남북한, 그리고 중국, 일본, 이에 더하여 미국과 러시아까지 끼어든 현금의 한반도 정세를 내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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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의 운명

시사 2009. 2. 7. 14:03
어제 비판사회학회 동계 워크샵이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유철규 교수와 정태인 경제평론가가 금융위기와 한국경제에 대해 그들의 견해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주제가 최신의 것이라 모두 조심스러워 하였다.  이미 미국의 경제학에서도 기존의 경제학 대신에 정체경제학적인 요소의 강조(이익집단이 경제현상을 좌우하는 문제), 자산경제(금융경제)와 실물경제의 작동원리의 괴리에 대한 이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점에서 경제학의 위기로 규정하고 있다. 
유철규 교수의 견해에서 특이하게 들은 점은 (1) 추가 위기의 가능성: 모기지 론의 위기에서 회사채 시장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 이는 추가 상업은행들의 위기로 이어지므로, 현재 미국정부는 이 경로를 차단하는 데 최우선의 정책를 사용하고 있다.
(2) 미국의 달러가 기축달러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 유로나 엔, 위안화가 지역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높으나, 미국의 달러를 대치할 수있을 정도의 능력은 없다.  이 때 능력이라 함은 국가가 자국 화폐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환류 메카니즘을 갖고 있어야 한다(해외로 나간 돈이 다시 국내로 되돌아 올 수 있는 능력).  현재 중국은 미국이 요구하는 달러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미국 채권을 매입하는 형태로 가겠지만, 이에 대한 댓가로 상해에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를 만드는 것을 추진하고 이에 대한 협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3) 2008년도의 국제 수지는 모든 면에서 적자를 기록하였지만, 가장 큰 몫은 은행들이 돈을 빌리지 못하고, 기존의 부채를 상환하여야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은행의 단기 부채 규제가 외환관리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4)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오로지 공공및 민간의 토목공사 발주에 의존하고있다.
(5) 한국의 과도한 해외의존형 성장 전략은 이미 2006년에 시작되었으며, 이는 현재 미국의 직접적 영향뿐만 아니라, 중국을 통한 미국의존이 동시에 나타나므로 중국수출의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6) 우리나라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장외파생상품의 거래의 도입이 늦었기에 미국발 파생상품의 위기 영향파급이 약화되었다.  앞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이점에 유의하여 금융시장 개방은 점진적으로 이루는 것이 옳다.
(7) 이미 기업들이나 투자주체들이 실물투자에서 금융투자로 많이 비중을 옮기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을 많이 보유하면서 이를 금융투자 하고 있는 형편이다.  즉 일자리가 금융과 실물 투자의 분리 현상, 일자리 증가가 둔화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투자유발효과가 적은 금융투자에 집중되고 있는 현상과 관련있다.  또한 소비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실물투자를 기피하는 있다.
(8) 국민 연기금은 물론이고,일반 가계들도 금융 투자에 참여하고 있어서 금융투자의 영향을 매우 커지고 있으며, 기업의 부채가 가계의 부채로 전이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태인 경제 평론가의 견해중에 흥미있는 내용은
(1) 미국은 이제 국제적인 협의를 통해 자신이 치루어야 하는 비용을 전가하려 시도할 것이다.  중국에게 전가하여야 하는 데 이는 쉽지 않으므로, 만만한 한국 같은 곳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시범적으로 비용 전가의 압력을 가할 것으로 생각한다(우선 자동차 분야).
(2) 한중일 경제 협력의 가능성: 중국의 패권주의적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한중일 협력하여 독자적인 지역통화를 반들어 내야하는 과제는 있지만, 기본원칙 정도에서 움직일 것이다.

다 같이 생각해야 할 내용인 것 같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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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의 소리

시사 2008. 12. 26. 12:24

지난 화요일 12월 23일 모처럼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린 장사익의 소리를 들었다.
나이 59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소리라서 음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오르지 않으면 오르지 않는데로, 젖어들게하는 목소리다.

나중에 들으니, 장사익씨가 2월 25일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의 축하공연에 등장한 모양이다.  동서양의 화합을 위하여 동양의 음을 들려주려 등장한 것으로 신문에서는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무엇인가 우리가 아는 소리와는 거리가 먼 느낌으로 토로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장사익을 소리가 끝난 후에 관객들과 같이 어울리며 막걸리를 드는 사람, 서민들의 애환을 가득 담은 그의 텁텁한 소리, 그리고 나에게는 동료 교수님이 애초에 나에게 장사익을 소개하면서 그의 웃은죄를 들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난 허허바다 음반을 하나 사서 들어보고 장사익의 소리에 빠진 사람이다.  웃은 죄의 가사는 "즈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한모금 달라기에 샘물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안뜬대두, 난모르오, 웃은 죄밖에"로 되어 있다.  아무튼 이웃에게 그냥지내듯이 지내는 사람에게 평양성에 대해서는 아무얘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면서, 이념적 억압을 지적하고 있는 가사이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이 이념대결로 몰고가면서 경제위기를 넘어가려는 상황에서 장사익의 감정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세상살이가 너무 고달프다고 답할 것이다.  거짓과 사기, 진심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탓할 수 밖에 없다고 답할 것 같다.

공연은 죽음, 삶, 희망의 3부로 되어 있다.  역시 죽음이 가장 강렬한 느낌을 주고, 희망은 가벼운 느낌을 준다.  희망을 얘기하기에는 너무너 세상이 가벼워지고, 진심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 정도에서 끝낸 것이 맞는 것 같다.  죽음에서는 아버지에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이 생각났다.  차가운 땅에 뭍어두고 나서는 심정, 뜨거운 화로에 넣고 단 한시간만에 한줌의 재로 변한 어머님의 육신이 생각났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장사익의 가사는 아버지가 찾아오는 것을 세상을 향해 문을 열어 놓는 감정으로 표현한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얘기살 수 있는 자는 이미 세상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타악기와 현악기, 그리고 재즈 피아노, 트럼펫이 어울려 울림의 공감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처음에는 재즈, 그리고 조금후에 야니의 퓨젼스타일이 떠올랐다.   소리꾼에게는 소리로 말하는 것이 감명을 주는 것 같다.  그의 말은 적은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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