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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5 뿌린 씨앗을 거두고 있다.
  2. 2009.03.31 생물학적 차별이 사회제도로 침투한 19세기 후반기

뿌린 씨앗을 거두고 있다.

시사 2013.09.25 12:55

시리아 사태의 역사를 탐색해 들어가면, 결국 강대국 정치의 모습이 들어난다.  1차대전을 기점으로 오스민 터키가 망하고, 이를 시리아와 레바논을 불란서가 위임통치하고, 다른 부분 즉 사우디를 포함해 동쪽의 지역을 영국이 지배한다.  이들의 지배 정책은 편의 상 지배이므로, 민족이나, 종교, 언어, 또는 민의와 무관한 행정 편의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충실한 지배 정책을 채택한다.  이때 채택된 정책은 대부분, 종교, 민족, 문화적 균령을 배경으로 상호 분열과 상호대립을 조장하고, 절대로 하나의 세력을 중심으로 통합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다.  2차대전후에 레바논은 결국 권력을 3개의 종파가 균점하고, 시리아로부터 떼어낸다. 이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직접대결의 장으로 변하지 않고,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만들어 진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시리아의 대통령은 소수민족 대표이자(인구의 12%정도를 차지), 외부에서는 시아파로 분류되나, 자신의 독자적인 종료를 갖는 종파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시아파를 이루고 있는 이란과 그리고 이락 남부 지역과 연결된 것을 이해되나 실상은 다른 종파라는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가 시리아의 군대에 주력으로 키운 세력이다.  소수민족을 군사력의 주력으로 키워놓고 이들인 결국은 시리아 정부를 장악하고 독재정치를 펴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대통령은 사회당 소속이다.  외교전에는 내부적인 이념보다는 제국주의적 이해관계가 우선되는 것 같다.  시리아의 현대통령은 사실상 프랑스의 비호아래 집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프랑스 정권과 멀리지면서 사이가 나빠졌다.  아마도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이익도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시리아는 상대적으로 아랍제국 중에서도 강경파에 속하고, 따라서 아랍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행태를 보면, 아프리카의 사태에도 종종 개입하는 것을 본다. 즉 개별 국가 차원에서 양자간의 차원에서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개는 식민지 시설 종주국의 입장에서 개입한다.  일본이 오염된 수산물을 한국이 금지시키자, 이에 대한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나 대만에 대해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면서.  아마도 과거 식민지 종주국의 입장에서 손을 보려는 것 같은 인상이다. 프랑스가 현재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에 개입하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에서, 그리고 이락에서 바로 자신들이 세운 정권에 의해 스스로 공격을 당하고 있듯이.  아마도 시리아에서도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다를 때 생기는 문제가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불거지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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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차별이 사회제도로 침투한 19세기 후반기

역사/19세기 2009.03.31 16:08

19세기 전반기가 서구 열강들이 자국내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에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어, 내부적으로 그 해결방식을 찾았다면, 19세기 후반기는 자국내의 문제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해결을 시도하던 시기였다.  즉 19세기 전반만 하여도, 식민지 제국들은 먼곳에 있었고, 그곳에서 서구 열강의 내부로 영향을 그다지 크게 미치지는 않았다.  다만, 유럽(구대륙)에서 신대륙(미국)으로의 이주, 흑인노예의 이주, 인디언 학살,인디언들과의 혼혈 정도가 인종간의 접촉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이는 사실상 내부적인 문제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국 내부에서 남북 전쟁이라는 내전이 발생하고, 뒤이어 미국은 미시시피 강을 넘어 서부로 서부로(방향이 서부라는 말이지 지형적으로 보면 현재 미국의 중부에 해당한다) 개척하는 시기였다,  철도로 대륙이 연결되고, 목화 프랜테이션, 그리고 북동부 지역(뉴 잉글랜드지역과 새로운 접경)에 신흥공업도시가 발전하면서 대규모의 이주 노동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중 플랜테이션에는 흑인 노예들이, 북동부의 지역에는 대부분 구대륙의 이주민들이, 그리고 철도 연결을 위해서는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대거로 이주하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 미국 내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게 된다.  이주민들은 이미 정착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 정치를 지배하고있는 이들에게는 이들 피지배계급이 어느정도 분열되어 있는 것이 통치에는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이미 발전한 다윈의 진화론에 빗대어, 사회적으로도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으로서 사회적인 경쟁에서의 승자를 합리화시켜주는 이론을 받아들이게 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사람들도 대부분, 흑인, 이주자, 인디언을 포함하는 민주주의를 주창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논할 때,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 노예들이 제외되었듯이, 대부분의 사회 하층민은 배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문제는 이것이 겉으로 보면 단순히 인종주의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종주의가 그 원칙대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인종주의란 사회적으로 차별을 합리화시키는 하나의 이념적 도구일뿐이지, 백인이라고 누구나 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아니었다.  즉 19세기는 미국 신대륙에는 구대륙에서 기근을 피해(아이랜드의 감자기근), 또는 1948년의 노동자 폭동을 피해 온 사람들, 또는 일확천금을 꿈꾸고 온 이들, 종교자유를 위해 온 사람들 등 수 많은 각자의 동기에 의해 피신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기존에 살던 주로 WASP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남북 전쟁후에는 남부의 사람들이 북부의 사람들에 의해 차별을 많이 받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에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물론 나중에는 중국인들이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중국인들을 철도노동자로 들여온 거의 직후부터 차별적인 법률들이 계속해서 제정되었다.  이점은 최근에도 캘리포니아에서 영어 공용화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불법으로 판정받은 것을 상기하면 알 수있다.  즉 주 정부의 차원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이 계속되었다는 점을 이해하면된다.  인종주의적 차별이 미국에서만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인종주의적인 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을 가리는 스카프를 학교에서 금지시키고 있다.  프랑스를 말할때 우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일으킨 나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민족주의적인 민주주의가 당시에도 모든 나라에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초기에 환영을 받았고, 독일에서는 처음부터 적대적이었고, 스페인에서는 초기에는 상당수의 진보적인 인사들이 환영하다고 결국은 다시 적대적으로 돌아선다. 즉 프랑스의 민주주의 역시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주주의였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1950년대, 그리고 1962년에 해결된 아프리카 알제리아 독립건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주의가 민족과 결부되고, 인종주의와 결부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를 정당화한 이념들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조선말기의 선각자들도 서구의 사회진화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부국강병론을 주창하였다.  물론 부국강병을 제대로 실행할 능력도 없었지만, 부국강병론 자체가 바로 제국주의 정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재의 우리도 역시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한 경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서 보겠지만, 경쟁은 탐욕과 차별에 근것한 경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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