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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2010. 5. 3. 09:51
2010. 5. 1(토) 오전 11시 15분 - 35분, 전북대 사회과학대, 지역사회학회 2010년 춘계학술대회, "지역사회의 재구조화; 지역개발과 공동체"에서 발표한 내용.
전체적인 주제를 설정하고, 회원들이 각자 자기 지역의 현안주제중에 선정하여 해석을 가하는 형식의 발표가 둘째날에 이루어진다. 필자는 이날 마창진 행정통합을 주제로 받아서 이에 대한 해석을 요청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현재, 드러난 사실과 내밀하게 비공식적으로 논의되는 의제가 이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겉으로는 행정효율의 문제로 논의되고, 주민들은 내면적으로 재정이나 경제활동이 앞선 창원의 것을 진해나 마산시민들이 무임승차하여 이익을 보려는 심리가 있다. 또한 정치인들의 경우에는 국회의원들이 지역장악력, 시장들, 공무원, 관변단체 등은 자신들의 자리의 보존과 자리에 대한 이해관계, 그러나 중앙정부의 입장은 중앙통치력의 강화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애초에 통합의 논의가 중앙정부에서 시작되었고, 지역민이 요청하거나, 주민투포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적어도 애초의 추진의 배경은 중앙정부나 중앙정치의 영향력과 의도가 진하게 배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마창진의 주민 여론조사와 3개의 시의회의 절차를 통해 무난하게 통합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는 다른 지역에서 보이는 시장들의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통합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점, 그리고 지역정치의 이해관계가 중앙정치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마산시장은 연임제한에 걸려 6.2선거의 출마가 불가능했다는 점, 진해시장은 식물인간으로 직무수행을 못하고있었다는 점이 특이 사안이다. 그렇다고 창원시장이 통합을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창원시는 상대적으로 재정과 경제력이 풍무한 상황에서 빼앗길 것이 많은 상황이었고, 나머지 시들의 채무나 열악한 재정과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창원시로서는 당연하게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중앙정치의 입장과 과거에 마산과 통합되어 있었던 경험, 창원의 유력한 시민들 중 상당수가 마산연고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마산과의 통합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합과정에서는 함의 삼칠지역이 사실상 마창권이었다는 점, 김해의 장유가 창원으로 출퇴근하고 있는 거주자가 많다는 점, 진해의 웅동지역은 부산권이라는 점등이 통합에 원심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아무튼 중앙정부의 의지와 이에 수동적으로 부화한 정당과 국회의원들에 의해 통합의 방향으로 방향이 잡혀졌다.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많은 이들이 강력한 시장이 등장하여 국회의원의 권력에 도전할 것이어서 소극적일 것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이는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초기에는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에 마치 정부의 적극적인 추가적인 재정적 혜택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가 뒤따르면서 여론이 조금씩 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서, 애초에는 공공재 서비스의 효율성, 무임승차, 경제에서 규모의 문제로 논리가 진행되었지만, 이를 추진한 힘은 역시 정치사업가들의 경계선의 정치를 통해 통치를 강화하고, 시민들의 자치력(민주적 제어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강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김영삼 정부시절, 김덕롱 자치부 장관시절)에도 행정구역 개편의 논의가 있었고, 이때에는 경제력을 강조하면서, 행정계층을 단축하는 문제로 나아갔다. 이때도역시 자치력의 훼손이 효과로 나타나지만, 논리는 규모의 경제과 계층의 다단계로 인한 행정비효율의 제거였다. 그러나 실제로 생활에서 보면, 자치는 작은 단위를 요하고, 경제는 광역정도의 단위를 요하고, 행정은 결국 통치와 자치의 단위로 결절되는 지점이라고 한다면, 대개는 30만 이내가 좋다고 지적되고있었다. 무리한 수를 쓰면서까지 110만인구권의 통합창원시를 성립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마산이나 진해 시민들은 상당한 정도의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시청청사, 통합시 이름, 한나람당의 시장후보자 등이 모두 창원으로 정해졌기에 그렇다. 여기에 구체적으로 통합시 선거 공보에 창원시 가나다라 등은 창원시를 가리키고, 창원시 차카타파하 등은 마산시, 창원시 거너더러 등은 진해를 가리키게 되면서, 이제 마산이나 진해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동시에 순서기호에서 나타나는 창원시의 주변부로 전락되었다는 느낌을 동시에갖게 되었다. 여기에 일부 구창원 시 인근의 마산이나 진해의 지역민의 추가적인 이익을 기대하는 것에 비해서, 다른 지역의 경우에는 경제가 더욱 주변화할 것이고, 구체적으로 마산이나 진해 시청인근은 이제 상권이나 유흥음식업, 행정서비스 사업이 침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현재로서는 경계선을 확장하는 것은 결국,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울산이나, 다른 대도시와의 경계선을 새로이 긋는 작업이며, 적대적인 감정을 기반으로 통치의 권력을 넓힘으로써 중앙권력의 강화하고, 대신에 주민들의 정치적인 참여와 저항을 쉽게 진압하고, 시민들은 관료제의 더 기다란 고리에서 무력감을 맛보고, 결국은 주민들의 참여의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화의 정치가 그렇듯이, 실제로 이런 효과가 나올 지는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규모의 정치는 다른 한편 대규모의 저항을 잉태하고 있기에 그렇다.
교양 2010. 4. 29. 16:42
종은씨가 저를 지명하여 블로그와의 인연을 써보라고 말한 모양이다. 정성인 기자가 댓글을 달았다. 내블로그는 일년가야 10개정도의 댓글이 달리는 형편이므로, 하나의 댓글고 쉽게 표시가 난다. 그래서 빨리 알아보았다.
1. 언제 어떻게 블로그를 시작하셨나요?
아마도 2년전 종은씨가 나보고 블로그를 해보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고, 이 메일을 통해 비교적 전자 매체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또 구태여 새로운 것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경남정보사회 연구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가끔씩 나누고 싶은 글을 올리고 있었고, 내 개인 홈페이지에 학교 관련 사항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 경남도민일보도 메타 블로그를 운영했던 것 같다.
2. 블로그에 주로 다루는 주제가 무엇인가요?
나는 두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학교 강의와 강의를 위해 준비한 것들을 올리는 블로그(이은진 블로그)와 경남정보사회 연구소를 통해 교양이나 시사, 역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이런 것을 올리는 "은은하고 진지한 이야기" 두개를 운영한다. 강의는 강의와 이와 연관된 책을 읽거나 관련된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올려서 카테고리별로 분류한다. 하나의 강의 노트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여러 파일을 정리하고, 이를 노트형식으로 정리하곤 하였는데, 이제 블로그에 올려서 나의 노트 정리도 되고, 남들이 참조할 사람은 참조하게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 올리고 있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강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역사, 각나라에 대한 지지사항, 시사적인 것에 대한 생각 들이 있었는데, 이를 표명할 기회가 마땅치 않아서, 블로그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는 대개 방학중에 내가 가진 파일을 정리하고, 추가로 자료 수집을 해서 공부겸 새로운 지식을 섭렵하는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다.
3. 하루 중 블로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계신가요?
대개 한편의 블로그를 위해 30분정도의 글쓰는 시간이 투자된다. 그러나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료수집, 사고정리 등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대개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은 나에게는 직업이자, 삶이므로 부담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재미와 향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잠자리 옆에는 오디오와 컴퓨터가 있으므로, 잠자기 전에 읽고, 잠자면서 생각하고, 일어나서 쓰는 형식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읽고 곧바로 쓰는 것은 생각이 얕아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대개는 잠, 걷기, 쉬는 것 등을 통해 잠시 수집한 자료를 읽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 시간적 정신적 공백을 둔다.
4. 블로그를 하면서 힘든 점이 있나요?
내 블로그는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 도민일보에 올라오기는 하지만, 별로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정보나 지식, 생각을 나눌 수있다는 즐거움에 한다. 도민일보에서 메타블로그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는 강의 블로그의 경우에는 10%가 안되는 것 같고, 은은하고 블로그는 하루 10명정도일 것이다. 초기에는 별로 읽는 사람이 없었는데, 현재는 전국적으로 특히 사회학강의를 듣는 학생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강의블로그에 200-300명 정도가 들어오고 있고, 읽는 것 같다. 내가 도움을 주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은은하고 블로그는 내 재미로 하고 있고, 아마도 다음의 티스토리 노출이 잘 안되는지, 독자가 한정된 것 같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노트로 기능한다고 본다. 도민일보의 대중블로거들은 대개 시사적이거나, 일상생활 주제, 그리고 사진을 곁들이는 방식을 취하는데, 내것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나 위주로 하고, 사진도 거의 없어서 일반적인 흥미를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사진도 잘찍지 않고, 휴대폰도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고, 그런 것들이 나의 사고에 방해를 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기에 그냥 재미로 하고 있다. 요즘 하루에 300명이 넘는 것 같기에 광고를 붙이고 싶기도 하고, 다른 모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그리고 내 블로그는 그저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인데, 오히려 실례가 될 것 같기도 하여 망설여 지기도 한다.
5. 블로그를 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이 무엇인가요?
요즘 강의 블로그는 호손공장 실험, 거래비용이론, 세계체제론 등의 항목이 거의 몇달째 계속 하루에 20회정도의 조회를 보이고 있다. 이런 항목들은 6개월전쯤에 올린 것인데, 아마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이런 항목에 대해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여, 내가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은은하고 블로그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중의 하나인 역사와 국가별 지지 정리를 계속하게끔 해주어서 스스로 만족하고있다. 역사는 현재 1920년대 한국의 정치사항까지 끝내고, 아마 여름방학 되면, 계속하려고 하고 있고, 국가별 지지는 중국이 비교적 많이 진척되었는데, 나머지는 별로 진척이 안되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역사는 현재까지 오려면, 5년이상 걸릴 것 같고, 국가별 지지는 그 이상이 걸릴 것 같다. 아무튼 하루 하루 조금씩 공부하면서 정리하는 재미에 블로그를 한다.
6. 평균 방문객은 얼마나 됩니까?
강의블로그는 강의중에 하루 200-300정도 교양블로그는 10-20정도 (도민일보 메터블로그에 등장하는 것)
7.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나요?
따로 노력하기 어렵다. 사진을 많이 넣을 수 있으면 넣겠지만, 별로 그럴 처지도 아니고, 너무 시사적인 것과 일상생활적인 것은 내가 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8. 다른 블로그를 읽거나 댓글을 남기시나요?
내가 남기도 싶은 곳에는 남긴다. 그러나 이것 저것 서핑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루의 뉴스를 블로그를 통해 보는 것은 하나의 일과가 되었으므로, 이제는 마음 가는데로 한다.
9. 블로그로 돈을 벌려고 해보셨나요? 혹은 블로그로 수익이 있다면 가장 많은 수익이 생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종은씨가 노후에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귀가 솔깃하기는 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다 충실히 해서 많이 찾아오게 해서 할 수 있을 면 좋을 것이다. 나는 사회학 전공블로그를 보다 충실히 해서 나중에는 돈벌이 수단이 되면 좋겠는데. 아직 방식을 잘 모르겠다.
10. 새로 시작하는 블로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블로그는 미니 홈페이지를 하듯, 아니면 자신의 학습을 위해서 하듯, 남들과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하듯,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돈도 안들고 공짜이고,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고. 나의 공책이라서, 장소를 이동하여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인터넷을 연결하여 기록하면 되고 뭐 그런것 같다.
다음은 유장근 교수가 운영하는 yufei라는 블로그가 있을 것이다. 넘깁니다. 이 블로그도 동료 교수가 운영하는 것이라 아주 학술적이면서도, 지역역사나 중국 기행 같은 것을 올려 놓아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멋지게 꾸미신 것이라 기술도 좋고 내용도 좋고, 읽고 나면 무엇인가 얻는 것이 많은 그런 블로그입니다.
교양 2010. 4. 28. 10:55
지난 주는 학생들이 중간고사도 끝나고 하여, 배정된 상담학생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학년별로 나뉘어서 장소와 요일을 정하고, 각자의 휴대폰으로 통지하였다. 2,3학년의 만남에는 8명의 연락한 학생중 3명이 나왔고, 4학년은 8명중 5명이 나왔고, 1학년은 15명중 0명이 나왔다. 물론 이중에는 사전에 못나온다고 연락한 학생도 있었고, 당일 현장에서 연락을 하니, 여러 이유가 있어서 참석이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
여기에서 나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나오지 않은 학생들 만나지 않은 것인가? 연락을 받지 못해 나오지 못한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므로, 연락을 받고도, 집에 가는 버스를 타는 시간과 맞지 않아서, 그리고 아파서 못나온다는 답이 있었고, 나머지 나오지 않은 학생들은 면담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참석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에, 알고는 있지만, 참석치 않은 학생들은 나를 만나지 않은 것인가? 나는 아마도 어떤 충격이라고까지 표현하기 어려워도, 압력이나 눈치를 주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면담이라는 것은 형식이 어떻든 학생들이 지금 어떻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있는지, 앞으로 취업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학교에서 제시한 학생정보란에 이력서를 기입해 놓으면 여러가지로 유리할 것이라는 등의 말을 주고 받고 해야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대개 참석학생들은 분명하게 미래 직업을 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현재 어떤 상태라는 것을 말하게 된다. 분명하게 정해서 준비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큰 틀만 정해놓고 모색하는 학생도 있었고, 그저 자신의 적성이 어디로 가는 것 같아서, 아주 큰 방향의 적성에 맞는 활동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튼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을 전제로 아니면, 만나는 현장에서 자신의 적성, 준비상태, 미래취업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나는 만나지 않은 학생을 생각하면서 수학에서의 공집합을 떠올렸다. 우리들의 만남이 공집합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만남의 집합에 포함시켤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만남의 집합은 항상 상호간에 심각한 만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만남, 형식적인 만남, 불발로 되어버린 만남도 포함된다. 오랜 친구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사람에 대한 것, 아니면 만날뻔하다 만나지 못한 사람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나는 만남의 집합에는 만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것도 포함시킬수 있다는 논리를 공집합의 요소에 공집합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육체적인 현존은 없었지만, 상호간의 영향은 주고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참조:John H. Conway와 Richard K. Guy, 1996/2003, 수의 바이블 The Book of Numbers (한승)의 10장에 폴란드의 수학자가 숫자를 세면서 0부터 세는 장면이 나온다. 없는 것에서부터 있는 것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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