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놀기, 아니면 생각하기

교양 2010. 7. 24. 15:43

경남정보사회연구소의 책읽기 난에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올릴 수가 없다.  무슨 시스템이 바뀐 모양이다.  여기에 올리게 되었다.  어제 연구소 이사회에 참석하니, 연구소 이사님들이 경남발전 연구원장 취임을 축하한다고, 장미꽃다발과 진행중인 한마을 한 책읽기에서 선정된 책을 선물했다.  풀어보니, 그 중의 한 책이 주득선과 차오름, 2006, [명화속에 숨겨진 사고력을 찾아라](주니어 김영사)이다.  마침 집에 큰 아이가 빌려온 책인 이명옥, 2009, [한조각의 상상력, 아침 미술관] (21세기 북스)와 선동기, 2009, [처음 만나는 그림](아트북스)가 있다.  같이 읽어보니, 명화를 소개하는 형태이나, 보다 대중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주득선과 차오름의 책은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보다 분석적이다.  그림에 나타난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를 사회현실로서 분석한다.  특히 김홍도의 씨름과 점심이라는 작품의 해석은 흥미롭다.  특히 씨름에서 경기하는 두사람의 신분이 다름을 지적하고, 이들이 같이 경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마을의 전통적인 공동체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오가 되면 평민들은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보통때는 길에서 눈만마주쳐도 나이에 상관없이 무조건 양반에게 허리가 휘도록 절을 해야 했던 평민이, 이날 만큼은 양반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씨름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금쪽처럼 여겨야 했던 양반의 몸을 번쩍 안아 있는 힘껏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한풀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습니다"(17쪽).  이말의 진실을 알수 없지만, 저자의 해석을 그대로 믿는다면, 단오는 마을의 축제로서 기능한 셈이다.  양반의 몸을 내동댕이 칠수 있는 기회이니까.  신분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를 걸수 있는 기회이니까?  일한 번 단오날의 축제를 재현해 보자.

이명옥의 책은 하루 하루 365일을 기준으로 일단 이 책은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한편의 작품을 감상하고, 이에 대한 약간의 단상을 적어놓은 것이다.  해석의 재미는 조금 약한 편이나, 저자가 다음편이 나오면, 오늘과 같은 7월 24일에 보아야 할 작품과 해석이 있을 것이나, 6월의 더위에읽을 만한 것으로 보니, 감명보다는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이 흥미로운 책이라는 느낌이 난다.  반면에 선동기의 책음 작가별로 30명을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 경향을 세가지로 나눈 다음에 한 작가의 작품들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대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작가가 지적하듯이 자신의 감수성과 해석의 상상력을 드러낸 책이다.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그 중에서도 일상을 담은 그림이라는 제목에 속한 3명의 작가의 작품 해석을 읽었다.  19세기 후반의 파리의 상류사회의 애환을 그린 작품이 많은 앙리 제르벡스의 작품들의 소개를 흥미로왔다.  특히 <롤라>라는 작품은 창녀와 하루밤을 자고난 사내가 등장한다(172-173쪽).  당시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던 뮈세의 시 <롤라>에는 이렇게 묘사된다고 한다.  "마리안의 화대는 비쌌다.  그녀와의 하루밤을 위해 그는 모든 것을 써야했다.  롤라는 우울한 눈빛으로 지붕위로 돌렸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창문 끝으로 발길을 돌렸다. 롤라는 돌아서서 마리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피로한 상태였고 다시 잠에 떨어졌다"(173쪽). 이 글의 모습이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같은 19세기 후반의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프랑스의 어촌을 배경으로 그린 것이 쥘 파스티앵-르파주이다. 일하는 사람들, 거지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특히 거지들의 모습을 그린 것은 정말, 우리의 고민을 나타낸다.  거지들은 양반이나 귀족에게 다가갈 수는 없는 세상이다.  이들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찾아가며, 동정을 구한다.  이웃들의 따스한 시선이 나타나 있다. 거지의 비참한 몰골과 따스한 시선이 아름답다. <걸인>에는 어린 아이가 늙은 걸인을 내보내는 시선이 나타나 있다(192-193쪽).  <눈먼 거지>와 이 아이를 이끌고있는 커다른 흰 색의 개가 누워 있다(194-195쪽).  프랑스 사회의 이중성을 보고 있다. 롤라와 마리안, 걸인과 아이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것이 당시의 프랑스였다.  책을 읽으면 항상 우리의 현실이 생각난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이중성은 바로 우리사회의 이중성을 암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고, 교훈적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의 영국의 어민들의 삶을 육지에 남아 있는 여인들의 애환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한 이는 우러터 앵글러이다.  주제는 주로 남아있는 여인들, 바다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들, 바다에 남편을 잃어버린 여인들의 육지에서의 삶의 모습이 그것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의 어촌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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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론에 나타난 민주주의

역사/BC 2010. 7. 2. 10:29

1차세계대전후의 서구에서는 민주주의가 꽃피는가 했더니, 전체주의 파시즘 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도 대부분, 명백하지는 않지만, 민중들의 암묵적 승인과 가장 광기어린 방식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논하면서 위기의 징후는 항상적으로 있어왔다.  아니 민주주의란 위기를 내포한 제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 제어하는 방식으로 숙의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내실화를 주장한다.  아무튼 민주주의는 그 제도자체만으로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BC 4-5세기 경, 인구 50만명 규모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다양한 정치체제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민주주의를 겪은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데마고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사형에 처하게 된다.  소위 다수의 횡포에 의해 소크라테스의, 아니 다양한 의사표현이 억제당하게 된다.  이를 기록한 것이 국가론 8장이다.  물론 이 장에서는 유능하자들에 의한 지배체제인 아리스토클라시, 명예를 존중하는 정치체제인 Timocracy (물론 이제도는 스파르타를 염두에 두고 용기와 재산을 명예로 규정하고 있다), 과두제(금권정치), 민주제, 독재(전제)를 들고 있다.  이중 흥미를 끄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와 평가이다.

"민주제란 빈민들이 승리하여 반대파의 일부는 처형하고 일부는 추방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시민권과 통치권을 평등하게 분배해줄 때 생긴다.  따라서 민주제의 국가에서는 추첨에 의하여 치자들이 선출되는 것이다"(557a).  이런 제도에서는 "교만을 교양이라고 부르고, 무질서는 자유라고 부르고, 파렴치는 용기라고 부르면서 찬사와 아첨의 말을 퍼부우는"(561a) 사람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는 다시 참주제, 독재체제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자유로움은 불필요한 욕심을 낳고 이러한 욕심에 의한 경쟁은 다시 부와 재산, 탐욕의 경쟁이 나타나서, 오히려 독재 등장의 토대가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중 스스로 독재를 원하고, 독재자는 민중을 이끌기 위해 전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567a).

 철학은 지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철학의 등장이 결국, 우매한 민중을 깨우치는 수단으로 나왔다는 점, 그리고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을 취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 철학이 등장하였다는 점은 현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민주주의의 제도만이 최선의 제도는 아니고, 민중이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을 때에는 결국 스스로 독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교시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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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땅이 일본 땅으로 바뀌었다.

역사/1920-29 2010. 6. 26. 20:14
국가가 멸망했다는 것은 자연이나 공간이 그대로 있는데, 사람들만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산천도 인걸도 바뀐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나라를 잃어버렸다는 것, 나라를 잃어버린 것은 역사와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라는 것, 우리나라사람들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으로 바뀐다는 점을 의미한다.

식민이라는 한자의 의미이든. 영어의 의미이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몰려 사는 곳을 colony, 또는 식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가 한국을 병탐한 후에 일본인들이 몰려 들어와서 한국의 영토에 살기시작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주거지와 상가와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남산아래, 현재의 충무로, 명동을 중심으로 상가를 형성하였고, 용산에서도 거주하였으며, 마산에서는 주로 혼마치라고 불리우는 현재의 반월동 통술집 거리에서 상가를 형성하고 살면서 상가를 형성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징수체계, 신문발간, 종교(신사) 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형성한 서울을 현재 서울의 기본 구도가 되었고, 이를 이어받은 대한민국은 현재에도 일본이 만든 도시계획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이 파괴한 종로상가, 덕수궁,, 세종로를 그대로 유비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본이 그들의 상가유흥지역으로 개발한 명동(메이지 마치)은 이제 다시 일본인들의 관광유흥지로 거듭나고 있다.  독립한 한국인들은 일제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아 일제의 근대화를 그대로 이어받아 지속시키고  있는 셈이다.  독립은 했으돼, 도시는 독립하지 아니한 셈이다.  일제는 1920년경까지 개별건축물별로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웠고, 1920년대들어서는 일본인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구역별 도시계획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마산의 경우에도 일본은 자신들의 폐쇠적인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일상적인 생활에서 한국인들과의 접촉을 끊고 거류지역을 형성하고, 교육과 종교, 유흥, 언론활동을 하였다.  당시에 살았던 마산거주 일본인들은 거의 한국인과 접촉없이도, 영화를 관람하고, 목욕탕을 갔으며, 요정에서 술을 먹고,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신사에 가서 자신들의 행운을 빌었고 병의원을 설립하여 치료를 받았고, 우체국에서 전신을 이용하였다.  이것이 바로 본래 의미의 식민지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 자신들의 상설시장을 건축하고, 한국인의 재래 정기시장을 억제하였다.  마산의 경우에도 재래시장의 규모는 팽창하기는 하였어도, 일본인들의 상설시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재래 정기시장은 한국인들이 모이는 규모가 너무 크고, 공식적으로 일본식민당국은 자주 열리므로 농민들의 유휴시간이 늘어나서 농업생산에 투입하는 인력의 손실이 크므로, 정기시장을 장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겉으로는 소비의 활성화가 오히려 농민들을 나태하게 만든다는 이유이나, 숨겨진 이유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모이는 (적어도 정기시장에세는 5천명내지 2만여명이 모이는 것으로 추정) 기회를 봉쇄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적인 소요의 불안감이 1919년 독립운동이 이들 재래 정기시장을 중심으로 발생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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