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지구의 역사

역사/BC 2008. 10. 17. 14:54
우주와 지구의 과거를 말하는 것에 대해 역사라는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무튼 우리는 자연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숨길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이라는 자연 피조물은 지구의 자연을 가장 잔인하게 약탈하는 종족으로 기록되어 곧 대규모의 자연변화를 야기시킬 것으로 예상하고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위스와 프랑스의 접경지역에 건설된 거대 강입자 가속기가 가동에 들어감에 따라 우주가 탄생한 최초의 1조분의 1초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재생하는 실험이 금년말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부 유럽에서는 여기에서 불랙홀이 생겨서 지구가 삼켜질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 지구 종말론이 새삼스럽게 거론되는 모양이다.  물론 과학자들은 이런 것이 나타난다고하여도 그 규모가 작아서 지구를 삼킬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하고 한다.  아무튼 우주의 탄생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도 일부가 이 실험에 참여하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주는 137억년전에 탄생한 것으로 1927년경부터 빅뱅이론에서는 주장하고있고, 이를 대부분 정설로 받아들이고있다.  물론 최근에 호킨스는 여러개의 우주를 가정하고 있지만, 아무튼 우리가 사는 우주는 137억년정에 탄생한 것은 하나의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후 대폭발후 1조분의 1초: 우주의 가장 기초적인 원소인 Quark, 이들간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Gluon, 그리고 전자와 neutrino(중성미립자)가 뒤섞인 상태.  이때의 온도는 10의 32승의 섭씨 도로 추정한다.
이후 10만분의 1초 - 3분: 우주는 식어서 1조 섭씨 도가 된다. quark가 3개씩 짝을 이루어 양성자와 중성자로 변화, 이들은 다시 서로 결합하여 원자핵을 이룬다.
38만년후: 원자핵이 전자와 합하여 원자가 되고, 수소와 헬륨 상태가 된다.
2억년후: 중력에 의해 수소와 헬륨이 뭉쳐져서 수많은 별들이 탄생한다.

45억년 전에 지구의 탄생: 별로서 탄생하고 남은 잔해들이 미쳐 별로 뭉치지 못하고, 굳어져서 행성으로서 지구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구가 현재와 같은 기온을 갖는 상태가 되기까지에는 약 5억년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즉 이때 부터 지구에는 산소를 통해 숨쉬는 생물이 만들어 진것이다.  이후 약 4억 5천만년전 부근, 3억년전 부근, 1억 5천만년전 부근부터 최근 1만년전 사이에 빙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는 대체로 현재의 기후와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바다의 깊이를 보면, 약 2만년전부터 급격히 수면이 상승한다.  즉 현재보다 120미터 정도 낮은 상태에서 약 1만 5천년전에는 2만년전보다 30미터 정도 상승하였고, 그 이후 급격한 상승이 이루어 진다. 약 8천년전에는 현재보다 14미터 정도 낮은 상태였고, 그후 1천년을 통해 급격히 수면이 상승하여 많은 땅이 침수된다.  아마도 빙하기가 끝나면서 얼음이 녹은 결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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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근원

시사 2008. 10. 14. 15:53

주위의 소문은 이제 곧 불황이 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우리는 이미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에따라 우리의 상황을 추적해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이번의 위기는 1997년의  위기와는 다르다고 말하면서, 외환이 충분하므로 위기가 그리 크게 오지 않는다고만 말하고 있다.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해 말해주는 이는 없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예측은 1달이 지나지 않아 곧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이에 더해서 서서히 기업과 소비자들, 정부의 공포감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다.  일단 안전하게 돈을 쓰지 않고, 현금을 많이 갖고있고, 최대한 절약하면서 다가올 불황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서서히 사람들 줄이고, 추가로 인원을 고용하지 않고, 기업 내에서도 비용을 줄이라고 야단을 치고, 정부는 마치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를 내면 낼 수록 국민들은 정부는 무슨 문제를 숨기니까 그렇게 좋다고 말하는 것이야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정부는 은행은 외화 자산을 매각하라, 스스로 자구책을 구하라, 공적인 연기금에는 증권을 구입하라고 독촉하고, 일반 대기업에게는 보유중인 외화를 매각하라고 하고, 이들 기업은 다시 외화 채권을 발행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 소식은 다시 국민들에게 알려진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부가 겉으로는 우리에게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 뒤로는 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느낀다.

공포감은 우리가 현실의 진행상화,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능력은 현재한 말이 앞으로 사실로 증명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그들이 한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정부가 부유한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서민들을 우롱하는 정책을 펼치고나서는, 경제가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서민 국민들은 부자를 위한 메세지로 여기지, 서민들을 위한 메시지로 여기지 않는다.  아마도 서민들을 위한 지출을 줄이기 위해 변명을 하기 위한 메세지로 여길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투자은행이 한 일에 대해 평가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금융통합법, 금산 통합을 통해서, 미국 식을 따라 가겠다고 말하니, 진실여부는 둘째치고라도, 믿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럴 때는 우선 미국식 투자은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대비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금융 통합, 금산통합을 제시하여야 국민들이 믿지 않겠는가?

위험 평가기관, 위험평가에 대한 능력향상, 일반 예금자들의 예금을 보호해 줄 수 있는제도, 산업체소유자들이 은행 예금을 자신들의 투자원으로 쉽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증권을 시장가격에 맞추는 제도의 변경, 환매조건부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단기 자금 조달을 통한 투자)에 대한 문제를 미리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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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기억하기, 회상하기, 평가하기

역사 2008. 10. 14. 13:49
초등학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초등학교 카페를 만들었다.  나는 고향에서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아직 직접 만나지는 않고 있다.  몇몇 친구들은 직접 만나자고 야단이다.  그러나 실은 400여명의 졸업 동창들 중에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고 있었다.  다만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명칭된 일반화된 모임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자주는 아니지만, 일년에 한 두차레 정도 세네명씩 만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고 이 얘기 저애기 나누는 동창모임은 있었다.

그러나 곧 이 공식적이 카페 모임과 여기에 모이자라는 광고에 대해 주의를 주는 친구가 생겼다.  즉 모임의 성격, 식사하고 난 다음의 식비 문제, 모임이 정기적으로 회비를 걷는 문제, 동창들의 상조 범위와 상조비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능한한 편안한 모임을 가지려고 하나, 조금이라도 공식화하는 순간이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안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몇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만나, 그 친구가 사는 동네를 가 본일이 있다.  내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동네이다.  아니 내가 초등하교시절에 가본이 없던 동데를 가보았다. 

실은 누구나 자기의 기억을 갖고 있지만, 자기의 조그만 범위를 넘어서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공식적인 기억과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즉 남의 기억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를 서술할 경우에는 특히 심하다.  요즘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거나, 돌아아가신 아버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역사, 또는 세계사와의 흐름 속에 어디에 위치시키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의 문제 부딪치게 된다.

요즘 대학에 90년에 출생한 세대가 들어와서 수업을 듣고 있다.  이들이 배운 한국사와 내가 배운 한국사는 방향이 일치하지않는다.  또한 사실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다.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겁이 많이 난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나의 과거를 정리해본 일도 없고, 나의 과거를 한국사나 세계사에 연결시켜 본 일도 없고, 더구나 평가해본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어느정도 사회의 프레임에 맞추어서 스스로의 행적을 고백한 것은 있는 것 같다.  중앙일보사의 넥스크라는 월간지에 게재된 '50대 진보의 이야기'는 내가 왜 남들의 눈에 진보의 경향을 띠게되는가에 대한 스스로 답을 한 것이고, 경남대학교에서 간행한 공부하는 이야기 중에 '삐딱 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 사회학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의 역정을 기록한 일이 있고, 영남노동운동 연구소의 잡지 연대와 실천이라는 잡지에서 1980년대 미국 LA에서 있었던 한인노동운동에 관여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왜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게 되었나를 다룬 마산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의 1시간 이상 대담 프로그램도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나의 과거의 생각과 행동을 너무 현재의 그들의 시각으로 재단하려는 시각에 부딪쳐서 내가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카테고리에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우리민족의 역사, 나의 역사를 융합시켜 정리해보는 시도를 해보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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